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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우석훈 교수의 <괴물의 탄생> 표지를 보면서 참 투박하게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아니 게다가, ‘괴물’의 머리와 몸통 사이에 서울, 스카이(SKY), 한나라당 그리고 조선일보가 들어가 있는 미적분 값은 또 무언가? 그런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석훈 교수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이 이미 기형이 되어버린 자본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 건전한 국민경제로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 청산되어져야 하는 요소들이 모두 예의 공식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작년 초에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불의 기억>을 읽고 나서, 미국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피폐된 중남미의 처참한 경제 사회상황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딱 일 년 만에 다시 이렇게 우리 사회를, ‘괴물’이 되어 버린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우석훈 교수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4부작 중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괴물의 탄생>을 통해 적시하게 되었다. 우석훈 교수가 그렇게 경고하고 있는, 따르지 말아야 할 중남미식 모델로 진화하고 있는 ‘괴물’의 모습은 경악, 그 자체였다.
책의 내용에 대해 말하기 전에 먼저 책의 제목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괴물’은 말할 것도 없이 17세기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홉스의 저서 <리바이어던>에 나오는 바로 그 괴물 리바이어던에서, 나머지 탄생은 프리드리히 니체가 훗날 파시즘의 도래를 경고했던 <비극의 탄생>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가 있겠다. 저자는 모두 세 개의 파트로 나눠, 먼저 세계사적 경제의 흐름을 소개하고, 두 번째로는 바로 한국식 기형적 자본주의 ‘괴물’의 탄생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괴물의 해체와 그에 따른 대안들을 각각 4장씩의 구성으로 해서 강의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우석훈 교수는 먼저 워밍업 수준으로 한국 경제학에 대한 계보 설명으로 시작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점은, 당장의 무언가 성장과 발전에 공헌을 하는 응용부분의 학문들이 아닌 순수학문들이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경제학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1930년대 <조선사회경제사>라는 걸출한 저작으로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으로 한국의 경제를 설명하려고 했던 백남운 선생과 현재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장하준 교수 정도를 저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꼽고 있다. 이 두 인물 간의 시간적 격차는 자그마치 70년이나 되고, 아쉬운 것은 장하준 교수 후에 한국 경제학을 이끌어나갈 연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고전경제학의 거장이자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1867) 그리고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였던 대공황 탈출의 신호탄이었던 존 케인스의 <일반이론>(1936)의 등장의 과정을 통해 저자는 경제학의 큰 그림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경제주체 가운데 하나인 정부를 제 1부분으로, 기업을 제 2부분으로 그리고 사회적 기업과 생활협동조합, 복지단체 등을 통칭해서 제 3부분으로 나뉘어서 균형과 견제에 따른 발전의 모델을 제시한다. 이 중에서도 3부분의 중요성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된다.
2부 괴물의 탄생을 통해 본격적으로 기형화된 한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시작한다.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근대화와 더불어 자본주의 이식이 시작된다.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따위에 대한 논의는 패스하도록 하자. 대한민국 경제의 고속성장은 다음의 두 가지 개념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이다. 소위 말하는 압축성장(condensed economic growth)과 재벌(Chaebol)이 바로 그것이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소장은 자본주의 방식이 아닌 계획경제식 방법인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중심으로 해서, 경제에 올인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매진하기에 이른다. 물론 정치적으로 유신독재틀 통해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면서, 선 성장 후 분배를 주장했는데 이 역시 재벌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대화와 동시에 경제개발이라는 두 마리의 토기를 잡기 위해선 불가피하게 해외 자본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유입된 대외차관은 수출입국을 국정의 좌표로 삼았던 유신 치하에서, 수출경쟁을 벌인 재벌들에게 우선적으로 분배가 되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정경유착의 폐단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 경제의 치명적인 요소로 잠복하게 된다.
고속의 산업화와 근대화의 과정에서 완전고용의 신화가 도래하기도 했지만, 1974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살인적인 물가상승, 그에 따른 성장률 둔화 그리고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기로 인해 불안했던 정치경제 상황들은 다시 전두환 일당의 군사 쿠데타로 개발독재 2기를 맞게 된다. 5공의 무시무시한 폭압에 의한 국가 자본의 재조정과 인플레이션 억제가 이루어지고, 저유가 엔고 등의 경제여건 호조로 인해 다시 고속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다음으로 국가 권력을 초월할 정도의 힘을 가진 재벌 삼성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줄다리기가 그려지고, 1997년 IMF 사태로 대변되는 외환위기 이래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지방권력을 행사하게 된 중앙의 경제 엘리트와 지방 토호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보수언론들의 연합으로 결국 2007년 MB정부가 들어서게 되는 과정들이 소개된다. 삼성의 이건희와 노무현은 한 때,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식 발전 모델을 고려하기도 했으나 미국식 모델로 극적인 전환을 하게 되면서 한국형 자본주의의 ‘괴물’은 더욱 더 기형적 성장을 하게 된다.
중앙의 경제 엘리트들과 지방 토호들에게 부와 토지 집중현상이 빚어지고, 김대중 정권 초기에 간신히 기초를 잡기 시작했던 사회복지정책들이 일제히 후퇴를 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말하는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은 더욱 더 심화되기 시작했다.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수도권 집중현상으로 인한 지방의 소외와 고용불안으로 인한 대량실업 사태는 지역 발전의 불균형과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 한계점에 달한 이 시점에서 모든 이들이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고용불안을 피해 공무원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저절로 설명이 되었다.
다시 여기서 우석훈 교수는 대안경제로서의 3부분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나 대기업과는 전혀 작동방식이 다른 사회적 기업, 가족형 기업, 생협 혹은 생산자협동조합들의 활동을 통해 3부분이 담당하는 경제를 활성화시켜, 장기불황과 같은 위험요소에 대비해서 국민경제를 안정시키자는 것이 저자의 핵심주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국가정책이 오직 재벌위주의 성장과 소득증가에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달성되기 어렵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앞으로 수년 안에 극적 전환점에 서게 되리라는 것이 또한 우석훈 교수의 전망인데, 1930년대 대공황 이후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걸었던 파시즘의 길을 쫓게 될 것인지 아니면 현재 몇몇 나라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3부분을 통해 균형과 조화의 방법을 택해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될 것인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거라고 전망하고 있다.
자, 이제 문제점들을 죄다 살펴보았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저자는 수년간의 연구 결과를 다음의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요약한다.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217페이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가장 먼저 지목하는 것은 거의 망국병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사교육 문제의 해결이다. 해마다 사교육비에 지출되는 비용은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경제에서 전혀 제 구실을 못하는 사교육 시장의 폐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모두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내 아니만 잘되면 장땡이다라는 사고를 버리고,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라는 것이다. 앞으로 대학은 정말 학문적으로 심층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만이 가는 그런 시스템으로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혁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의 대졸자들이 스위스의 고졸자들보다 경쟁력에서도, 소득에서도 떨어진다는 말은 더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지방 토호 세력의 타파를 위해 건전하고 상식적인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방자치의 실현이 필요하다. 우석훈 교수가 말한 대로, 지방이 한번쯤 방문하고 싶은 곳이 아닌 정주(settlement)의 개념에서 정말 살고 싶은 곳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란다.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다시 한 번 진정한 의미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저자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세 번째 경제주체로서 작용하게 될 제3부분의 육성을 주장한다. ‘삼각균형의 국민경제론’이라는 멋진 타이틀로 시작을 하고 있는데, 우선 전통적인 사회기관인 종교단체들이 그 역할을 맡아주길 주문한다. 물론 기업과 정부의 협조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국의 록펠러와 같이 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기업들이 그러하듯이 부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제3부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초기에 정부의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더 이상 나 혼자 잘살겠다는 ‘부자 되세요!’의 표어는 필요 없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이상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운명 공동체이다. 내가 아닌, 우리가 잘사는 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다. 정부나 기업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고,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경제주체로서 자주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획일적이고 암기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잃어버렸던 창의력과 독자적인 사고를 되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아울러 일중독이 아닌, 보수를 조금은 덜 받더라도 인간적인 삶의 영위를 위해, 그리고 보다 크게는 건전한 국민경제 형성을 위한 개개인의 노력과 자각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순간이다.
<괴물의 탄생>과의 만남은 괴로웠지만, 이러한 깨달음으로 인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