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범의 고백 - 법의학자가 들려주는 살인 조서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송소민 옮김 / 알마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제목부터 자극적이다, <연쇄살인범의 고백>이라. 이 책의 저자는 채 마흔이 되지 않은 독일 출신의 법의학자 마크 베네케이다. 이십대에 쾰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서 법의학 검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지난 십 수 년 동안 매우 다양한 범죄들을 현장에서 경험한 바탕으로 해서 많은 저서들을 발표해오고 있다. 그의 연구 과제는 콜롬비아 출신인 희대의 연쇄살인범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를 비롯해서, 동유럽에 뱀파이어리즘(흡혈귀를 믿는 것)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마르크 베네케는 증인들의 진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오로지 범죄의 현장에서 발견된 물적 증거들 다시 말해서 흔적을 믿는다. 이는 앵글로-색슨 계통인 미국이나 영국의 그것과는 다른 독일 민족 특유의 증거제일주의에 근거한 것일까. 그가 말하는 “경계의 경계”에서 각양각색의 범죄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들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판단 역시 독자들에게 맡긴다. 다시 한 번 뛰어난 법의학자의 냉정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책의 시작은 카니발리즘과 뱀파이어리즘으로 시작한다. 미신이 횡행하던 중세에 뱀파이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프로이센과 동부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 죽은 사체에 대한 시신훼손 행위가 자행되어 왔다고 한다. 망자가 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몸이 아프고 질병에 시달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법정에서조차 그런 행위를 한 이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 시신훼손 행위는 광범위하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뱀파이어리즘에 대한 믿음으로 루마니아에서 2004년에 중세에서 시행되던 스트리고이(strigoi:루마니아에서 뱀파이어를 지칭하는 말)에 대한 “의례”를 거행했다고 한다. 물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을 해서, 의례에 참가한 이들을 법원에서 금고형에 처하긴 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의례를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카니발리즘은 듣기만 해도 오싹해지는 주제였다. 하위문화인 사도마조히즘 과정에서 살해된 마이베스 케이스와 콜로라도의 식인종으로 알려진 알페르드 파커 케이스가 소개된다. 1972년 실제로 발생했던 우루과이 럭비 팀이 안데스 산맥에서 불시착하게 되면서 비행기 탑승객 45명 중에 16명이 살아남게 된 사건 역시 그 중심에는 카니발리즘이 자리 잡고 있다. 1993년에 영화 <얼라이브>로도 소개가 된 적이 있는데, 역시 극한 상황에서 생존만이 유일한 목적이었다는 어느 생존자의 진술로 매조지 된다. 그에 비하면 1980년대 초반 파리에서 자신의 여자 친구를 살해한 이세기 사가와의 진술은 정말 들어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자신의 아내를 살해하고 난 뒤, 무려 29년 동안이나 인정받는 지역의 유지이자 학교 교장 선생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경력의 영국의 고든 파크의 경우는 연쇄살인의 범주에는 들어가진 않지만 해당 장에 나오는 대로 “진실을 위한 오랜 추적”이라는 말에 이보다 더 적합한 경우는 없을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연쇄살인범”의 정의에 가장 잘 들어맞는 인물들은 3부에 등장하는 독일 출신의 위르겐 바르취와 콜롬비아의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지토이다. 지은이가 말한 대로, 이 둘은 시간과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놀랄 만큼의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다. 유아성도착자이자, 아이들을 유괴해서 잔인하게 살해한 방법도 그렇지만 전혀 자신이 한 행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바르취의 경우에는 자신의 범행대상을 ‘사랑’했다고까지 자신이 갇혀 있던 벽에 적어 놓았었다.

300여명의 어린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가라지토는 콜롬비아 언론에서 “야수”(La Bestia)라고 불렀다. 가라지토의 경우에는 당시 콜롬비아에서 진행 중이던 합산 형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편승해서, 자신의 죄를 모두 인정했다. 그리고 종교에 귀의해서 개과천선한 삶을 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를 담당했던 전문가들은 그는 전혀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만약에 풀려난다면 언제라도 다시 연쇄살인을 할 인물이라는 진단을 내린다.

그 외에도 미국의 플로리다 주에 허공에서 갑자기 떨어진 시체에 대한 놀라운 사실, 프로이센 제국 시절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헨리테 빌케라는 이름의 황금공주, 그리고 천문학적 금액이 걸린 미스터리로 여전히 미결 사건으로 보이는 독일 베를린 출신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라스 올리버 페트롤의 자살사건 들이 차례로 소개가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진짜 연쇄살인범이라기 보다는 완전범죄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건으로 페루의 잉카 오솔길에서 자신의 아내 우슬라 글뤽 테슬러를 살해하고, 완전범죄를 가장한 이스라엘 출신의 이란 테슬러의 케이스가 있다. 지은이를 필두로 한 독일에서 파견된 실사 팀들은 직접 잉카 길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치밀한 증거수집과 현장재현의 과정을 거쳐 아내를 살해하고 거액의 생명보험금을 수령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이란 테슬러의 범죄를 밝혀내는데 성공한다. 말미에서 이 사건에 참여했던 수사관들의 말을 통해, 어떠한 비용이 들더라도 의도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말살시킨 사건에 대한 범행을 밝혀내는 것이 법치국가의 기본 임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마르크 베네케는 이 책을 통해, 이런 다양한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범죄사건들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행과 범행자의 특징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에 역점을 두었다”(207페이지)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뱀파이어리즘에 대한 중부유럽에서 민간의 광범위한 믿음이 그렇다. 카니발리즘은 일상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범죄행위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지만, “안데스의 기적”과 같은 극한 생존의 경우에 있어서는 예외적으로 분류가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이런 사건들의 소개를 통해 어떤 해결책이나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지는 않다.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성도착자들의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극히 충동적인 범죄를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정황에 따른 모든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마르크 베네케가 헤르만 헤세의 말을 인용한 것처럼 “밝음을 이해하려는 자는 어둠”(10페이지)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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