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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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터키 출신의 국민 작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아지즈 네신과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은 올해 초에 읽었던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였다. 군사독재 시절의 터키에서 정치범으로 부르사에서의 유배기를 유머로 승화시킨 그의 글에서 고통마저도 유머와 함께라면 순화시킬 수 있다는 그의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 작품이었다. 역시 풍자와 해학의 대가답게 <개가 남긴 한 마디>에서는 15개의 현대판 우화로 현실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현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

역시 타이틀로 뽑힌 <개가 남긴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개를 무척이나 사랑한 주인공 카슴은 개가 죽자, 마치 사람처럼 장례를 치르려다가 발각이 돼서 재판정에 서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마저도, 현행법에 대한 신랄한 우화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어째서 개에게 사람과 같은 대접을 해주었냐는 판사의 추궁에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개의 유언이 있었다고 하자, 판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한다. 그러자 카슴은 죽은 개가 판사에게 황금 500냥의 유산으로 남겼다는 폭탄선언을 발표한다. 그 다음 결과는 말할 것도 없겠다. 사사로운 소리(小利)를 탐하는 사법부의 위선을 아지즈 네신은 이렇게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늑대가 된 아기 양>에서는 좀 더 정치적인 색깔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양들을 쥐어짜서 젖과 고기 그리고 양털을 얻어내는 양치기의 혹독한 매질과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그가 치는 양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아기 양이 살아남기 위해 늑대로 진화를 해간다는 이야기다. 이 책이 쓰인 1958년 터키 정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고,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사회혼란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아지즈 네신은 아기 양을 힘없는 국민들로 그리고 포악한 양치기를 군사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정부로 대치한다. 결국 이야기에서 양치기는 늑대가 되어 버린 양에게 물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어느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는 <까마귀가 뽑은 파디샤>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이어진다. 어느 나라에서 파디샤(이슬람 국가의 군주)를 뽑는데, 까마귀가 어느 사람의 머리에 똥을 세 번 싸면 그가 파디샤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을 파디샤로 뽑히게 해준 까마귀에게 보답을 하고, 까마귀들 역시 그 사람을 다시 연달아서 파디샤로 뽑아준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방식이 이처럼 까마귀들이 자기들에게 잘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식으로의 선출에 대해 아지즈 네신은 동물들, 특히나 어리석고 떼 지어 다니기로 유명한 까마귀들을 예로 들어 풍자의 한 마당을 펼쳐 보인다. 이런 그의 당시 터키 정치 풍토에 대한 비판은 <당신을 선출한 죄>에서 반복된다. 자신의 아들이 잡혀가는 부조리에 주인공은 분연히 항의하고, 그 책임자를 찾아간 끝에 그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와 해학은 확실히 재밌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삐뚜름한 세상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정신은 예리하기 그지없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이토록 뚜렷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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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 마로니에북스 Art Book 8
로사 조르지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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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기 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미켈란젤로(‘피에타’상의 조각가)는 단 한 명 밖에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카라바조 - 빛과 어둠의 대가>의 주인공인 미켈란젤로 메리시 역시 미켈란젤로라는 위대한 이름을 가지고 태어났고, 르네상스 시대 말기에서 바로크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주자로서 그 위명을 떨쳐 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배울 수가 있었다.

이태리의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의 가족은 그가 5살 때, 흑사병을 피해 롬바르디아의 카라바조로 이사를 갔다. 그후 미켈란젤로라는 이름보다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이주에도 불구하고 어려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차례로 잃은 카라바조는 당시 이태리 최대의 명문가였던 스포르차 가문과 콜론나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3살 때, 스승인 시모네 페레트차노의 휘하에 들어가 4년간 도제생활을 시작한다. 카라바조는 당시 스페인령이었던 밀라노를 휩쓸던 인위적인 마니에리스모 스타일, 다시 말해 사실적 디테일을 강조하고 단순성을 중요시하는 사실주의 화풍의 영향을 받는다. 이는 그의 초기 작품들에 등장하는 정물화와 정물 소품들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카라바조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작품들을 생산해 내기 시작한 것은 21살이 되던 해인 1592년 예술을 하는 모든 이들의 꿈의 도시였던 로마로 오면서부터였다. 로마의 교황과 추기경들은 로마를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건축가, 조각가 그리고 화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카라바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큰 물고기는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는 지론처럼, 로마에 온 카라바조는 선배 화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풍과 도상 그리고 기법들을 개발해 나간다.

예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로 소개된 32쪽의 <도마뱀에 물린 소년>에서는 전통적이면서도 딱딱한 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도마뱀에 물론 소년”에게 감정이입을 요구하고 있다. 깜짝 놀란 소년의 표정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반쯤 벗은 어깨의 주인공은 이후 카라바조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미소년 이미지의 전형이다. 심지어는 이런 그의 취향 때문에 그가 동성애자라는 설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책에서 설명되고 있듯이, 쾌락과 고통의 알레고리에 대한 분석 또한 일품이었다.

카라바조는 또한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모사로도 유명했는데, 예비 드로잉 없이 거침없는 붓질로 속사포 같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똑같은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약간의 차이를 지닌 다른 버전들이 양산되었다. 한편, 반종교개혁의 분위기에서 카바라조는 점점 더 종교화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근대시민혁명 이전까지 종교가 지배하고 있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속적인 그림들을 그리기란 쉽지가 않았을 것이다. 고전적인 주제인 그리스 신화 같은 소재가 아니면 거의 종교화가 유일한 주제였다. 동시에 카라바조는 그동안 자신이 배워왔던 것들로부터 자유를 추구하면서, 빛과 어둠의 대비를 이용한 명암효과와 다소 느슨한 종교화의 소재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자신의 최고 절정기였던 1600년에 그린 <성 마태오의 순교>는 비로소 그에게 대중적인 성공을 가져다주기에 이른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의 콘타렐리 예배당에 걸리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이전까지 예배당 벽화를 장식하던 프레스코 화를 극도로 싫어해서, 캔버스 화를 그려서 예배당에 걸었다고 한다. 그는 빛과 어둠의 대가로서 원숙미와 자신감이 넘치는 역동감 넘치는 장면을 연출해냈다. 아울러 자화상의 도입과 함께, 자신의 생애 내내 따라다녔던 폭력의 상징인 칼의 묘사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었다.

일련의 성공과 더불어 그의 삶에 그림자가 비추기 시작했는데, 지속적인 폭력과 무분별한 행위로 결국 로마에서 버티지 못하고 제노바와 나폴리 심지어는 몰타 섬까지 자타에 의한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카라바조 화풍의 영향을 받은 추종자들이 많은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지상에서 40여년을 보낸 카라바조는 열병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에스콜레 항구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전반적으로 카라바조의 소개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옥의 티라면 소개된 그림들과 부분 삽입된 사진들의 사이즈가 너무 적어서 카라바조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감상하는데 있어서 불편했다. 물론 파란만장했던 카라바조의 삶과 작품 세계를 150쪽 남짓한 지면에 담는다는게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

사후 근 1세기 동안이나 잊혀져 있다가 19세기 들어 비로소 재평가를 받게 된 카라바조의 작품 세계를 이렇게나마 다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특히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같은 작품에 대한 설명들을 예술작품에 대한 심오한 알레고리와 도상학적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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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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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의 나이로 빛나는 데뷔작을 탄생시켰다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모든 것이 밝혀졌다>의 대강의 스토리를 접하는 순간,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뮤직 박스>가 떠올랐다. 미국의 잘나가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 변호사 제시카 랭이, 나치 전범으로 기소된 아버지의 변호에 나서게 되는 이야기다. 조금도 자신의 아버지가 나치 전범일거라는 생각하지 않는 제시카 랭은 결국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말에서 그녀가 <뮤직 박스>에서 발견한 사진들은 과거의 ‘진실’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특이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우선 우크라이나의 유대 공동체인 트라킴브로드(혹은 소피오카)라는 작은 슈테틀에서 살다가 나치의 박해를 피해, 자유의 땅 미국으로 이주한 할아버지의 은인인 오거스틴을 찾아 나서는 조너선이 있다(작가의 페르소나이다). 그리고 그의 돕는 조력자로 우크라이나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알렉산더 페르초프(알렉스, 하지만 그의 아버지 알렉산더는 언제나 ‘샤프카’라고 부른다)가 있다.

가장 먼저 알렉스가 말하는 조너선과 함께 하는 선대의 은인을 찾아 나선 대장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으로 알렉스의 조너선에 대한 편지글이 있다. 마지막으로 조너선이 쓰고 있는 자신들의 조상들의 이야기를 판타지로 다룬 소설이 있다. 이 세 가지 글들이 뒤섞이면서, 순간 혼란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오거스틴을 찾아 나선 알렉스 일행의 이야기가 진행이 되면서 책을 읽는 혼란이 진정되기 시작한다. 알렉스의 아버지 알렉산더는 자칭 맹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아버지 알렉산더(3대가 모두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를 운전사로 기용을 하고, ‘공식 암캐’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까지 낀 기묘한 원정대를 출발시킨다.

이방인에게 적대적인 우크라이나인들의 면모가 곳곳에서 들어나고, 유대인이자 신세계인 미국에서 날아온 조너선은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존재다. 게다가 그는 채식주의자로 동행인 알렉산더들에게 구박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은인을 찾는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에 그들은 기꺼이 ‘노역’을 마다하지 않는다. 물론 금전이라는 보상이 뒤따르지만 말이다.

엉터리 영어로 구사되는 알렉스의 편지들은 확실히 재밌다. “막돼 먹은 유대 놈”을 차에 싣고 다니는 거친 입의 알렉산더 할아버지의 막무가내 고함도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누군가 죽은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고약한 방귀를 뀌어 대는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주니어도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다. 이런 포어의 유머들은 우크라이나의 촌마을에서 벌어진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버전 홀로코스트에 대비한 완충작용을 하고 있다.

1941년 6월 히틀러는 동쪽의 공산주의자 스탈린과 피할 수 없는 한 판 대결을 벌인다.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나치스)와 공산주의는 서로 같은 하늘 아래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게르만 민족의 생존을 위해 슬라브 족들은 모두 2류 민족으로 노역을 담당해야 했고, 풍요한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와 코카서스의 유전은 나치스 천년제국의 영속을 보전해 주는 요소들이었다. 그렇다면 동유럽의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그들은 열등민족으로 나치스에게 전멸의 대상일 뿐이었다.

히틀러의 바로바로사 작전초기, 무자비한 총살대가 전선의 곳곳을 누비면서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부작용이 발생하면서(병사들의 트라우마 등), 아우슈비츠와 트레블링카와 같은 대규모 가스처형실을 운영하게 된다. 한편 스탈린의 공산지배에 치를 떨던 우크라이나인들은 히틀러의 군대를 해방군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앞장섰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밝혀졌다>에서 보면, 어느 트라킴브로드의 유대인들은 나치군대보다 이웃 우크라이나인들을 더 두려워한다.

조너선과 알렉스 일행은 바로 이렇게 역사에서 잊혀진 트라킴브로드를 찾아 나선다. 추악한 과거의 일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아예 트라킴브로드에 대한 기억을 소멸시켜 버린다. 대장정 중에, 비로소 모두가 원치 않는 사실을 알게 된 알렉스는 조너선에게 그가 쓰고 있는 소설을 픽션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가한다. 이 책에서는 조너선의 단편적인 정보 때문에, 과연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알렉스는 계속해서 조너선을 “주인공”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상의 주인공은 알렉스와 그의 할아버지 알렉산더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자신과 가족이 살기 위해 친구들을 배신하고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끔찍한 상황에 대한 후회와 번민에 시달린다. 과거와 화해하고 용서받지 못한 그들에게 미래는 없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과거를 잘 알고 받아들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294쪽)라는 트라킴브로드 유대 회당에서의 선언은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것의 정수처럼 내리 꽂힌다.

<모든 것이 밝혀졌다>는 2005년 리브 쉐레이버 감독의 연출로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영화화가 되었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로드무비를 좋아하는 그네들의 정서에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책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영화거리도 없었을 것 같다. 반세기가 지나 이제는 가해자가 된 유대인의 홀로코스트 이야기가 그들 자신에게도 공명되고 있는지 순간 궁금해졌다.

***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 한 가지 치명적인 오류가 있는데, 히틀러의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일은 1941년 6월 18일 아니라 6월 22일이다. 원문에도 그렇게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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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1
최복현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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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화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를 다룬 책들인 시장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대개 퓨전 스타일의 책들이라 단편적인 접근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오리지널에 대한 해갈이 필요한 시점에, 최복현 작가의 <신화드라마>는 그리스 신화 읽기의 정공법을 제시해 준다.

신화는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해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게다가 신화 간의 유사성까지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이야기는 고구려 유리왕설화와 너무나 유사하다.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던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유사성을 가질 수가 있었을까. 아마 그 단서는 모든 서양 문화의 원류를 이루는 그리스 신화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의 개념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사랑에 눈이 멀고 그야말로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모든 분야의 이야기들을 커버하고 있는 신화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시원(始原)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신화를 읽어 왔지만, 올림포스 12신 이전의 시기에 대해서는 기억이 희미하다. 이에 대해 최복현 작가는 꾸준한 신화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신화드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속이 다 후련했다. 태초에 카오스(chaos) 상태에서(작가는 굳이 카오스를 신으로 규정한다), 모든 신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우라노스와 가이아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6명의 티탄신족과 우라노스간의 투쟁을 그린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바로 신화의 시기에서부터 이 테제는 발현된다. 자신의 아버지를 거세했던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이 반란을 염려해서 자신의 아내인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 버린다. 하지만 막내아들 제우스가 레아의 기지로 자신의 숙명에서 벗어나, 소위 티타노마키아(제우스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뼈대를 갖추게 된다. 카오스(혼란)에서 벗어나, 코스모스(질서)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왜 신들이 머무는 장소가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이 되었는지에 대한 작은 비밀도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신화드라마>를 읽는 보람이 있었다.

3부 <신의 후예가 세운 인간의 나라>라는 장을 다루면서 최복현 작가는 제우스의 바람기를 언급한다. 제우스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아내인 헤라의 시기와 질투 가운데, 제우스는 수많은 여신과 인간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티탄신족과 연이은 기간테스들과의 전쟁을 위해 특별난 영웅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제우스는 강력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알크메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그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난 역사시대에, 인간들이 세운 왕국에서 왕의 권위를 위해 자신들이 신의 후손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통치 질서를 위해서라도 지배자와 신과의 관계설정은 꼭 필요한 요소였다. 그런 측면에서, 제우스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되었던 것이다.

신화시대를 마무리 짓는 트로이 전쟁에서 두 패로 나뉘어져, 인간 세계에 공공연하게 개입하는 신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신들의 결혼식장에서 불화의 여신이 던져 주고 간 ‘황금사과’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라는 발언이 10년 대전쟁의 발단이었다. 결국 이 판정을 맡게 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안겨 준다. 하지만 문제는 헬레네가 이미 유부녀였단 사실.

결국 이 갈등은 트로이의 멸망으로 끝나고, 트로이의 후손 아에네아스가 오늘날의 이태리 로마에 정착을 하게 되면서 고전 신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계도를 보는 것 같은 난해함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읽어갈수록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서로에 대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록으로 딸린 “한 장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계보도”가 아주 유용했다.

이런 멋진 계보도를 만든 작가와 출판사에 박수를 보낸다. 이 한 장의 계보도만 있으면, 그 어떤 낯선 이름이 등장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그리스 신화를 여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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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신화 - 그림에 깃든 신화의 꿈
황경신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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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역시 신화의 기본 스텝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죽어라고 읽던 시절이 있었다. 어려서는 그 신화의 소스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작가가 누구인진 중요하지 않았다. 꽃말로부터 시작된 나의 신화 여정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막 읽은 <그림 같은 신화>는 작가의 감성을 섞어 놓은 16개의 편지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니 굳이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작가가 느끼는 대로 고전 그리스 신화에서 임의로 고른 16가지 이야기들에 자신의 감정과 해석들을 풀어 놓는다. 여느 책과 다른 점이라면, 예의 신화들을 소재로 한 명화들의 현시(顯示)라고나 할까.

책의 표지는 워터하우스가 그린 판도라가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인간을 사랑해서 불씨를 훔쳐다 준 프로메테우스 형제를 벌하기 위해, 신들이 만든 피조물인 판도라. 그녀의 아름다운 유혹을 마다하지 않을 거라는 신들의 계산은 적중했다. 물론 교활한 신들은 형이 아닌 보다 쉬운 상대인 에피메테우스를 골랐지만 말이다. 판도라의 결혼지참 선물로 보낸 예의 “판도라의 상자”에서 인간의 모든 욕망들이 훨훨 날아가 버리고 희망만이 남았다고 했던가.

황경신 작가는 판도라의 이야기에서 보여지는 동지애적 연민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특히 메두사와 메데이아의 이야기에서는 그들을 위해 적극적인 변호에까지 나선다. 메두사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자신을 유혹한 신이 아닌 자신에게 내린 형벌을 받는다.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신들의 판단으로 피해자에게 고통이 추가된다. 사랑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자신이 가진 마법과 거래하는 것만 배워온 메데이아는 사랑도 같은 방법으로 얻으려고 하다가 낭패를 당한다.

에우리디케와 오르페우스의 이야기에서는 아주 오래 전에 본 영화 <흑인 오르페>가 떠올랐다. 물론 배경은 브라질의 유명한 리우 카니발이지만, 신화의 본질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전혀 변질되지 않았다. 리라와 노래 명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짧은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나고, 하데스의 지하세계로 내려간 에우리디케를 구하기 위해 오르페우스는 죽음마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장기인 음악으로 하데스를 설득시켜, 에우리디케를 지상으로 데려오는 순간 하데스와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지 못해 실패한다. 신화에 나오는 모든 터부(taboo)들은 깨지게 되어 있다. 판도라가 그랬고, 프시케가 그러지 않았던가.

오르페우스 이야기에 소개된 그림 중에서 재밌는 건 17세기 롤란트 사버리가 그린 <오르페우스>에선 오르페우스가 연주하는 악기가 U자형 현악기인 리라나 키타라가 아닌 바이올린이라는 점이다. 신화의 시대적 반영이라고 해야 할까? 재밌는 표현이었다. 21세기 오르페우스라면 전자 기타를 뜯고 있었을까?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에 대해서 작가는 이기적 사랑의 전형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아니 한술 더 떠서 비겁하다고까지도 한다. 피그말리온은 조각가라라는 말도 있고, 왕이라는 말도 있다. 여성에 대해 환멸을 느낀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조각인 갈라테이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녀의 사랑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사랑으로 치환이 되면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피그말리온(남자)에 대한 비난일까. 하지만 장 레옹 제롬이 그린 키스의 순간에서는 전혀 그런 점이 느껴지지 않는데 말이다. 다만, 지고지순한 사랑의 순간만으로 기억이 될 뿐인데, 역시 한 가지 텍스트라고 하더라도 보는 시선에 따라 백만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 하나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많이 봐온 워터하우스의 그림 뿐만 아니라,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라는 매력적인 화가를 알게 된게 큰 수확이었다. 그가 얻지 못해 안타까워한 사랑이었던 제인 모리스를 모델로 한게 분명한 몇몇 그림들과의 만남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작가는 조지프 캠벨의 글을 인용하면서, 신화의 원형적인 모습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윤리적이면서 초월적인 존재이기 보다는 지극히 인간들의 모습에 가깝다. 우리 인간들처럼 분노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사랑하는 모든 감정들의 원형을 보여준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지난 수천년 동안 신화의 세계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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