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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드라마 ㅣ 한 장으로 보는 지식 계보도 1
최복현 지음 / 풀로엮은집(숨비소리)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신화의 세계에 푹 빠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를 다룬 책들인 시장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대개 퓨전 스타일의 책들이라 단편적인 접근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오리지널에 대한 해갈이 필요한 시점에, 최복현 작가의 <신화드라마>는 그리스 신화 읽기의 정공법을 제시해 준다.
신화는 처음 만들어진 이래로 계속해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게다가 신화 간의 유사성까지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 이야기는 고구려 유리왕설화와 너무나 유사하다. 동서양의 문화적 교류가 거의 불가능했던 그 옛날에, 어떻게 이런 유사성을 가질 수가 있었을까. 아마 그 단서는 모든 서양 문화의 원류를 이루는 그리스 신화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종교에서 말하는 신들의 개념과는 조금은 동떨어진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의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서로 반목하고, 다투고, 사랑에 눈이 멀고 그야말로 인간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모든 분야의 이야기들을 커버하고 있는 신화야말로 스토리텔링의 시원(始原)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신화를 읽어 왔지만, 올림포스 12신 이전의 시기에 대해서는 기억이 희미하다. 이에 대해 최복현 작가는 꾸준한 신화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신화드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속이 다 후련했다. 태초에 카오스(chaos) 상태에서(작가는 굳이 카오스를 신으로 규정한다), 모든 신들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우라노스와 가이아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태어난 6명의 티탄신족과 우라노스간의 투쟁을 그린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바로 신화의 시기에서부터 이 테제는 발현된다. 자신의 아버지를 거세했던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이 반란을 염려해서 자신의 아내인 레아가 낳은 자식들을 차례로 삼켜 버린다. 하지만 막내아들 제우스가 레아의 기지로 자신의 숙명에서 벗어나, 소위 티타노마키아(제우스와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비로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뼈대를 갖추게 된다. 카오스(혼란)에서 벗어나, 코스모스(질서)의 시기로 접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왜 신들이 머무는 장소가 그리스의 올림포스 산이 되었는지에 대한 작은 비밀도 아주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신화드라마>를 읽는 보람이 있었다.
3부 <신의 후예가 세운 인간의 나라>라는 장을 다루면서 최복현 작가는 제우스의 바람기를 언급한다. 제우스의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아내인 헤라의 시기와 질투 가운데, 제우스는 수많은 여신과 인간 여성들과 관계를 맺는다. 티탄신족과 연이은 기간테스들과의 전쟁을 위해 특별난 영웅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제우스는 강력한 조력자가 필요했다. 알크메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불세출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그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었다.
신화의 세계에서 벗어난 역사시대에, 인간들이 세운 왕국에서 왕의 권위를 위해 자신들이 신의 후손임을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통치 질서를 위해서라도 지배자와 신과의 관계설정은 꼭 필요한 요소였다. 그런 측면에서, 제우스는 희대의 바람둥이가 되었던 것이다.
신화시대를 마무리 짓는 트로이 전쟁에서 두 패로 나뉘어져, 인간 세계에 공공연하게 개입하는 신들의 모습이 흥미진진하다. 신들의 결혼식장에서 불화의 여신이 던져 주고 간 ‘황금사과’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라는 발언이 10년 대전쟁의 발단이었다. 결국 이 판정을 맡게 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주고,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안겨 준다. 하지만 문제는 헬레네가 이미 유부녀였단 사실.
결국 이 갈등은 트로이의 멸망으로 끝나고, 트로이의 후손 아에네아스가 오늘날의 이태리 로마에 정착을 하게 되면서 고전 신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책을 읽는 동안,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계도를 보는 것 같은 난해함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읽어갈수록 기본기에 충실하라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가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서로에 대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부록으로 딸린 “한 장으로 보는 그리스 신화 계보도”가 아주 유용했다.
이런 멋진 계보도를 만든 작가와 출판사에 박수를 보낸다. 이 한 장의 계보도만 있으면, 그 어떤 낯선 이름이 등장하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그리스 신화를 여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복잡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 신화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