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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의 삐뚜름한 세상 이야기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19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터키 출신의 국민 작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아지즈 네신과의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은 올해 초에 읽었던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였다. 군사독재 시절의 터키에서 정치범으로 부르사에서의 유배기를 유머로 승화시킨 그의 글에서 고통마저도 유머와 함께라면 순화시킬 수 있다는 그의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 작품이었다. 역시 풍자와 해학의 대가답게 <개가 남긴 한 마디>에서는 15개의 현대판 우화로 현실과 부조리가 난무하는 현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었다.
역시 타이틀로 뽑힌 <개가 남긴 한 마디>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개를 무척이나 사랑한 주인공 카슴은 개가 죽자, 마치 사람처럼 장례를 치르려다가 발각이 돼서 재판정에 서게 된다. 물론 이런 과정마저도, 현행법에 대한 신랄한 우화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어째서 개에게 사람과 같은 대접을 해주었냐는 판사의 추궁에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개의 유언이 있었다고 하자, 판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우라고 한다. 그러자 카슴은 죽은 개가 판사에게 황금 500냥의 유산으로 남겼다는 폭탄선언을 발표한다. 그 다음 결과는 말할 것도 없겠다. 사사로운 소리(小利)를 탐하는 사법부의 위선을 아지즈 네신은 이렇게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늑대가 된 아기 양>에서는 좀 더 정치적인 색깔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양들을 쥐어짜서 젖과 고기 그리고 양털을 얻어내는 양치기의 혹독한 매질과 가혹 행위에 못 이겨, 그가 치는 양 중에서도 가장 연약하고 힘없는 아기 양이 살아남기 위해 늑대로 진화를 해간다는 이야기다. 이 책이 쓰인 1958년 터키 정정은 불안하기 그지없었고, 연이은 군사 쿠데타로 사회혼란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런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아지즈 네신은 아기 양을 힘없는 국민들로 그리고 포악한 양치기를 군사 독재를 실시하고 있는 정부로 대치한다. 결국 이야기에서 양치기는 늑대가 되어 버린 양에게 물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 보니, 비슷한 시기의 어느 민주공화국에서 벌어진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나 보다.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는 <까마귀가 뽑은 파디샤>에서는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이어진다. 어느 나라에서 파디샤(이슬람 국가의 군주)를 뽑는데, 까마귀가 어느 사람의 머리에 똥을 세 번 싸면 그가 파디샤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겠다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결국 그는 자신을 파디샤로 뽑히게 해준 까마귀에게 보답을 하고, 까마귀들 역시 그 사람을 다시 연달아서 파디샤로 뽑아준다.
한 나라의 지도자를 뽑는 방식이 이처럼 까마귀들이 자기들에게 잘해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식으로의 선출에 대해 아지즈 네신은 동물들, 특히나 어리석고 떼 지어 다니기로 유명한 까마귀들을 예로 들어 풍자의 한 마당을 펼쳐 보인다. 이런 그의 당시 터키 정치 풍토에 대한 비판은 <당신을 선출한 죄>에서 반복된다. 자신의 아들이 잡혀가는 부조리에 주인공은 분연히 항의하고, 그 책임자를 찾아간 끝에 그 책임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와 해학은 확실히 재밌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삐뚜름한 세상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정신은 예리하기 그지없다. 짧은 이야기 속에 이토록 뚜렷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아지즈 네신의 탁월한 능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