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 핫 캘리포니아 - 미드보다 짜릿하고,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스펙터클한 미국놀이
김태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무한도전 작가 출신의 김태희 씨가(아, 어쩔 수 없이 탤런트 김태희를 떠올리게 되는구나!) 근 10개월간의 미국 캘리포니아 생활을 담은 <쏘 핫 캘리포니아>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공공성과 대중성 그리고 왜, 누가 책을 쓰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냉정하게 이 책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이십대의 마지막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주먹 불끈 쥐고 도미해서 좌충우돌하며 보낸 어느 처자의 질풍과 노도 같은 유람기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건 마치 타인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글쓴이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사진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역시 어느 곳을 소개하는 책에서 비주얼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작가 출신이니 얼마나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가겠는가. 책의 재미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김태희 씨는 솔직하다. 그녀는 왜 미국에 갔을까? 그것도 50개나 되는 제 각각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주들 중에서 캘리포니아일까? 그건 바로 캘리포니아만큼 놀기 좋고, 오픈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 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UCLA 부속 어학원에서 짧은 영어 배우기를 마친 후에, 열심히 놀러 다닌다. 우선 기동성을 위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구입한다. 그것도 자기가 캘리 체류기간 동안 쓰려고 준비해간 돈의 2/3나 되는 돈을 사용해서. 그 다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제이가 하는 파티에 가기 위해 6~7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간다. 사실 난 그들이 하는 파티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놀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우스 파티며 할로윈 페스티벌 등 미국 하위문화를 관통하는 ‘해프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 주기도 한다. 태양이 작렬하는 캘리 바닷가에서 태닝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친구들과 즐겁게 보낸 시간들이 주르르 나열된다. 크리스마스 즈음해서는 친구들을 엮어서 라스베거스로 로드트립을 떠나기도 한다. 겁나 싸게 하는 쇼핑 또한 빠질 수가 없는 아이템이다. 그렇게 저렇게 책을 읽으면서, 왜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냥 재밌으니까.

색다른 체험이 대해 재밌게 보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주제 의식의 결여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방인으로 미국 사회의 특정한 단면을 보는 시선 그것도 부촌이라는 웨스트우드에 살면서 미니 쿠퍼를 타고 다니는 여피 스타일이 미국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고유가로 인해 즐겨 마시던 스타벅스 커피마저 던킨으로 바꾼다고 하던데, 이방인에게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뭐 글쓴이가 놀러 갔으니, 최선을 다해서 노는데 집중했다라고 말하면 또 할 말 없지만 말이다.

지난해 초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홈리스들이 급증을 하고 멀쩡한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들이 넘쳐흐르는 미국의 현실보다 그녀가 그려내는 디즈니의 판타지 같은 미국의 모습이 전부라고 이 책을 보는 이들이 생각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 분명 미국에 있었을 텐데 이런 커다란 정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하우스파티 하시느라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작년 3월 달에 캘리에 가면서 6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12월달까지 체류할 수가 있었을까. 김태희 씨의 신변잡기성 글을 보면서, 나도 한 일년 정도 놀러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토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행 가방을 가진 여인이 서 있는 책 표지를 보면서 과연 이번에는 온다 리쿠 아줌마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토끼의 심상치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토끼의 귀 옆으로 보이는 달은 제목에서 말하는 그 “한낮”의 달일까? 온통 머릿속에는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책을 열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도쿄에 사는 나(시즈카)는 이복오빠인 겐고의 애인인 유카리의 제안으로 나라에서 연락이 두절된 겐고를 찾아 나서게 된다. 거의 대면이 없던 유카리의 거침없는 행보에 소극적인 인생을 살던 시즈카는 불안하면서도 한편 기대감으로 설레는 나라와 아스카의 유적들을 둘러보는 리프레시 휴가에 나선다. 이 여행길 도중에 밝혀지는 그네들의 삶의 비밀들을 작가는 자전적으로 보이는 이야기틀을 통해 술술 풀어낸다.

문득 책을 읽다가 왜 온다 리쿠는 나라를 책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교토 이전에 일본 국가의 시초를 닦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년 전에 가본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은 도다이 사의 엄청나게 큰 불상, 나라공원과 그 주변의 민가들에까지 어슬렁거리며 사슴 과자를 덥석 덥석 받아먹는 덩치 큰 사슴 그리고 호류 사 정도?

책의 진도가 나가면서, 나의 이런 의문들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인 나(시즈카), 겐고, 유카리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다에코의 과거로 작가가 배열한 기억들, 사진, 수첩, 운전면허증 등의 단서를 통해 서로 엇갈리는 관계들 그리고 애틋한 가족애 보다는 소외된 유년시절의 추억의 편린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 겐고가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짧은 동화나 민담들은 그런 이들의 관계를 해석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달 토끼> 이야기는 겐고, 유카리 그리고 다에코의 20년 애증에 얽힌 이야기들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온다 리쿠는 낯선 이와 함께 하는 기묘한 여행길에 나선 시즈카의 불안정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작가의 심리묘사에 상당 부분 공감할 수가 있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또 한편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이와 여행길에 나서는 불안감, 하긴 글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여행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반전이지만 말이다.

다양한 부분의 글을 발표하는 온다 리쿠 아줌마의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한낮의 달을 쫓다>는 지극히 일본적인 배경인 나라와 아스카를 바탕으로 해서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여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작가의 소설 작법이 뛰어나서인지 어쩐지 자꾸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소설의 주인공 시즈카와 함께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부터 사뭇 도발적이다. 내 심장을 쏘라니? 마치 갑갑하기 그지없는 이 세상을 저격하라는 선언처럼 그렇게 다가왔다. 책 표지에서부터 무슨 내용이 펼쳐질지 아주 적나라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었다. 파란 줄무늬가 들어간 환자복을 입은 두 명의 남정네들의 비현실적인 움직임이 글의 대략적인 얼개를 말해 주고 있는걸까.

2000년 <열한살 정은이>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은 정유정 작가의 다섯 번째 작품인 <내 심장을 쏴라>는 전직 간호사 출신인 작가가 대학시절 정신병원 실습 후, 폐쇄병동을 직접 체험하고 나서 마치 세상에 무언가 진 빚을 청산하려는 마음을 글을 썼다고 했던가.

나에게는 어린 시절, ‘언덕 위의 하얀 집’으로 통하던 정신병원이 이 소설의 무대다. 주인공인 나 이수명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환청과 공황 장애 진단으로 로뎀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퇴원 한 후, 불의의 사고로 다시 수리 희망병원에 수감되게 된 수명은 25살 동갑내기 류승민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아마 영화 장르로 구분을 하자면, 버디 무비 정도가 되겠다.

수명과 승민은 병원에 들어온 첫 날부터 폭력이 수반된 탈출을 시도하게 되고, 병원의 진압조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끔찍한 약물치료까지 덤으로 받게 된다. 덤 앤 더머라는 부제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약물치료를 받고 난 후, ‘나무늘보’가 된다는 화자의 말이 실감이 가지 않았다. 폐쇄병동은 치료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라는 설명은 더더욱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오노레 발자크의 소설처럼 첫 60페이지가 힘들다고 누가 말했었나. 하지만 작가 정유정이 그리는 폐쇄병동의 직시하고 싶지 않은 현실들은 수리 희망병원에 ‘수감’된 환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열차게 굴러 가고 있었다. 역시 작가의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 진 몰라도, 리얼리티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작가의 상상만으로 창조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수명은 방짝인 승민의 사연에 주목한다. 어쩌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의 핵심은 모두 그들의 사연을 풀어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나 수명은 어머니의 죽음으로부터,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폐쇄병동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승민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나는 활강이 삶의 유일한 낙이자, 목표였을지도. 하지만 그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는 나는 그를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물론 나의 이성은 골치 아프고 물리적 제재가 따르는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전인적인 인격체이다.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영어의 몸이 된 그들은 자유를 꿈꾸고,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그들에게 동정적인 시선도 물론 존재하지만, 그들을 찍어 누르는 억압의 굴레에 언제나 압도당한다. 바로 그 시점에서 우리를 옥죄고 있는 사회라는 시스템을 ‘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모터보트를 타고 수리 호를 질주하고, 글라이더를 타고 창공을 훨훨 나는 수명과 승민의 눈에는 오히려 우리가 사회라는 틀에 갇힌 수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탈출과 일탈을 꿈꾸는 모든 이에게 갈채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미국 사법 시스템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온 친구였는데, 미국의 사법체계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 자체와 사회의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우리 보통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니! 하지만 이민자 사회인 미국의 현실을 떠올리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각기 다른 사고와 문화 관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통일된 하나의 사회적 규율로 통제를 하기 위해선 강력한 사법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하바드와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살인위원회>의 저자 그렉 허위츠는 바로 그 미국 사법체계의 틈새를 파고드는 법범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가상의 “위원회”를 창조해낸다. 우리의 주인공 팀(티모시) 맥클리는 연방경찰 소속의 부집행관으로 전직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인한 체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력을 보유한 전인적인 인격체로 그려진다. 당연한 귀결로 군복무 당시 받은 무공훈장은 보너스다. 그의 아내 드레이(안드레아) 역시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런 맥클리의 평화로운 가정에 끔찍한 사고가 터지고 만다. 그들의 사랑하는 딸인 지니(버니지아)의 7번째 생일날, 주인공 지니가 성폭행을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이 된다. 자, 이제 스릴러와 미스터리로 짬뽕이 된 <살인위원회>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팀의 동료들은 지니의 살해범으로 지목되어 잡힌 킨델을 사로잡아 팀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지만, 팀은 사적인 복수를 거부하고 법원에서 정당한 판결을 받게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지만 법원에서는 킨델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미란다 조항과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고지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서 사건 자체를 기각시켜 버린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건에 대한 처벌이 법집행 절차상의 문제로 해서 무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맥클리 가정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하고, 팀의 결혼생활 역시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를 정말 괴롭히는 것은 딸의 죽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은 업무 중에 마약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과잉진압을 이유로 해서 견책을 받게 된다. 모든 이들이 그의 결백을 알고 있지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자 팀은 분연히 자신의 배지를 반납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직장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프랭클린 듀몬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가 방문을 한다.

그는 위원회 소속으로 팀과 비슷하게 가족들을 범죄자들에게 희생을 당한 이들이 사법체계가 갖은 이유로 처벌할 수 없어 방면된 이들을 응징하려는 초법적인 비밀결사조직이다. 자금력과 실천력을 모두 갖춘 이들은 팀이 무엇보다 알고 싶어 하는 지니 사건의 비밀 파일을 미끼로 팀을 위원회에 가입시킨다.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횡행하는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윌리엄 라이너 교수가 준비한 파일들을 검토하고 표결에 의해 징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한 일들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까?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답게 후반부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간다. 어떻게 해서 평범해 보이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되고, 법 체계 전반에 대해 그동안 수없이 논의되어져 온 핵심적인 문제-과연 우리 사회의 법 시스템이 공정하게 집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팀 맥클리의 냉철한 시각을 통해 한 발자국씩 다가선다.

아울러 희생자 부모의 쓰라린 경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9권의 책을 쓴 작가 그렉 허위츠는 글쓰기에 앞서 철저한 리서치와 준비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이 책 <살인위원회>를 쓰기 위해서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팀과 드레이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소설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주인공의 감정 표출에 대해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애끓는 감정을 슬며시 독자들에게 전이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위원회의 초법적인 행동에 ‘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인공의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이 작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감정과 이성의 대결구도는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대립에서도 지켜볼 수가 있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지니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다는 암시와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진 위원회 활동과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경찰의 움직임(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전직 경찰을 쫓는 자신의 동료들)에 책을 읽는 독자들의 아드레날린 수치는 높아져만 간다. 물론 700쪽이 넘는 분량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극적인 후반부의 반전과 스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혀 아깝지 않을 시간투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2년 전 두 번째로 유럽을 찾았을 때, 비엔나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가 혼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니 미쳤나? 그 먼델 왜 가?’라고 혼자 생각을 했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아마 살면서 크로아티아에 그렇게 가까웠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지금은 후회막심일 뿐이다.

백승선 씨와 변혜정 씨가 찍고 쓴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읽기 전에 KBS 세계여행 다큐멘터리인 <걸어서 세계속으로> 크로아티아 편을 봤다. 책이 도착할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 해의 보석상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크로아티아의 풍경들이 화면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에서도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그대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달마티아 지방의 수도이자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자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 성곽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여정이었다. 신기하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작품을 한 명의 연출자가 연출한 것처럼 같은 곳들을 둘러보다니.

이미 영상으로 크로아티아를 흐뭇하게 감상해서였는진 몰라도 책에 담겨진 그림 같은 풍광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마치 오래 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을 다시 찾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흐릿한 기억 속의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그런 아스라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날것 그대로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텍스트들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진들을 가득 담았다고 한다. 감동이었다.

1991년 6월 25일 구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선언을 했을 당시, 크로아티아는 곧바로 세르비아계가 이끄는 신유고 연방군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했다. 당시 신유고 해군의 격렬한 포화가 퍼부어지던 두브로브니크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의 학술원장이었던 장 도르메송이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유럽 문명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라는 사자후를 토하며, 신유고 해군 앞에서 보트 시위를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국가와 민족의 차원을 떠나 전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어느 지식인의 너무나 감동적인 일화였다.

그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으로 아드리아 해의 보석답게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두브로브니크. 높이 25m, 길이 2km에 달하는 두브로브니크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성벽과 그 성벽에 둘러싸인 오렌지색 지붕들 그리고 터키 옥색빛 바다의 조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의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여행에 지친 다리를 쉬며, 한 조각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부럽기만 했다.

크로아티아 자연유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플리트비체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크로아티아의 절경이다. 희귀 야생동물과 다양한 조류들의 서식지로 지난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다. 무엇보다 여느 관광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먹거리들을 파는 요란스러운 매점들이 없다는 점과 친환경적이라는 국립공원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4계절에 따라 물빛이 바뀐다는 16개에 달하는 호수들 그리고 그 안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의 조화가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나도 그 호수들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도원경에서 노닐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스플리트는 기독교도를 박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황궁으로 유명하다. 당시 로마시대를 지배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양위하고 10여년간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고래로 무역항구로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달마티아 지방에 산재한 많은 섬들을 잇는 거점항구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현대를 사는 이들과 고대 로마 유적들이 공존(coexistence)하고 있는 그네들의 삶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책의 작가들은 그런 점에 주목을 해서, 빨래를 널어놓은 장면이나 덧창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나 보다.

책의 마지막 코스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천년도시 자그레브였다. 동서양의 기착지답게 20년 전의 전쟁의 참화를 딛고 현대화된 자그레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려던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폴란드인 여행자의 조언으로 자그레브의 참모습을 체험하기도 한다. 미처 몰랐었는데 우리가 입는 양복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넥타이의 원조가 바로 크로아티아라고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이나 연인을 위해 무사히 돌아오라는 마음을 담아 크로아티아 여인들이 목에 감아 주던 스카프가 그 유래라고 한다.

자그레브의 칼라라고 할 수 있는 파란색 푸니쿨라를 타고 로트르슈차크 타워에서 매일 정오에 쏘는 대포 소리도 듣고, 도이치 시장에 들러 현지에서 재배한 사과도 먹어 보는 일상의 즐거움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자그레브의 청소년들이 벽에 그린 그래피티조차도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게 되면 색다르게 보이게 되는걸까? 작가들의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앵글과 짧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들이 독자들의 역마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돈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도무지 여행할 기회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두가 핑계라고 했던가. 나를 크로아티아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는 과연 뭘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