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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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토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행 가방을 가진 여인이 서 있는 책 표지를 보면서 과연 이번에는 온다 리쿠 아줌마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토끼의 심상치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토끼의 귀 옆으로 보이는 달은 제목에서 말하는 그 “한낮”의 달일까? 온통 머릿속에는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책을 열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도쿄에 사는 나(시즈카)는 이복오빠인 겐고의 애인인 유카리의 제안으로 나라에서 연락이 두절된 겐고를 찾아 나서게 된다. 거의 대면이 없던 유카리의 거침없는 행보에 소극적인 인생을 살던 시즈카는 불안하면서도 한편 기대감으로 설레는 나라와 아스카의 유적들을 둘러보는 리프레시 휴가에 나선다. 이 여행길 도중에 밝혀지는 그네들의 삶의 비밀들을 작가는 자전적으로 보이는 이야기틀을 통해 술술 풀어낸다.

문득 책을 읽다가 왜 온다 리쿠는 나라를 책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교토 이전에 일본 국가의 시초를 닦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년 전에 가본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은 도다이 사의 엄청나게 큰 불상, 나라공원과 그 주변의 민가들에까지 어슬렁거리며 사슴 과자를 덥석 덥석 받아먹는 덩치 큰 사슴 그리고 호류 사 정도?

책의 진도가 나가면서, 나의 이런 의문들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인 나(시즈카), 겐고, 유카리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다에코의 과거로 작가가 배열한 기억들, 사진, 수첩, 운전면허증 등의 단서를 통해 서로 엇갈리는 관계들 그리고 애틋한 가족애 보다는 소외된 유년시절의 추억의 편린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 겐고가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짧은 동화나 민담들은 그런 이들의 관계를 해석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달 토끼> 이야기는 겐고, 유카리 그리고 다에코의 20년 애증에 얽힌 이야기들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온다 리쿠는 낯선 이와 함께 하는 기묘한 여행길에 나선 시즈카의 불안정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작가의 심리묘사에 상당 부분 공감할 수가 있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또 한편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이와 여행길에 나서는 불안감, 하긴 글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여행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반전이지만 말이다.

다양한 부분의 글을 발표하는 온다 리쿠 아줌마의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한낮의 달을 쫓다>는 지극히 일본적인 배경인 나라와 아스카를 바탕으로 해서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여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작가의 소설 작법이 뛰어나서인지 어쩐지 자꾸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소설의 주인공 시즈카와 함께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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