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위원회 모중석 스릴러 클럽 20
그렉 허위츠 지음, 김진석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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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미국 사법 시스템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었다. 그는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온 친구였는데, 미국의 사법체계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법 자체와 사회의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우리 보통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니! 하지만 이민자 사회인 미국의 현실을 떠올리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각기 다른 사고와 문화 관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통일된 하나의 사회적 규율로 통제를 하기 위해선 강력한 사법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하바드와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살인위원회>의 저자 그렉 허위츠는 바로 그 미국 사법체계의 틈새를 파고드는 법범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가상의 “위원회”를 창조해낸다. 우리의 주인공 팀(티모시) 맥클리는 연방경찰 소속의 부집행관으로 전직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인한 체력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판단력을 보유한 전인적인 인격체로 그려진다. 당연한 귀결로 군복무 당시 받은 무공훈장은 보너스다. 그의 아내 드레이(안드레아) 역시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런 맥클리의 평화로운 가정에 끔찍한 사고가 터지고 만다. 그들의 사랑하는 딸인 지니(버니지아)의 7번째 생일날, 주인공 지니가 성폭행을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이 된다. 자, 이제 스릴러와 미스터리로 짬뽕이 된 <살인위원회>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팀의 동료들은 지니의 살해범으로 지목되어 잡힌 킨델을 사로잡아 팀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지만, 팀은 사적인 복수를 거부하고 법원에서 정당한 판결을 받게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지만 법원에서는 킨델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미란다 조항과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고지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서 사건 자체를 기각시켜 버린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건에 대한 처벌이 법집행 절차상의 문제로 해서 무산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맥클리 가정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하고, 팀의 결혼생활 역시 위기를 맞게 된다. 하지만 그를 정말 괴롭히는 것은 딸의 죽음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팀은 업무 중에 마약상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과잉진압을 이유로 해서 견책을 받게 된다. 모든 이들이 그의 결백을 알고 있지만,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자 팀은 분연히 자신의 배지를 반납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을 잃고, 직장마저 잃어버린 그에게 프랭클린 듀몬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가 방문을 한다.

그는 위원회 소속으로 팀과 비슷하게 가족들을 범죄자들에게 희생을 당한 이들이 사법체계가 갖은 이유로 처벌할 수 없어 방면된 이들을 응징하려는 초법적인 비밀결사조직이다. 자금력과 실천력을 모두 갖춘 이들은 팀이 무엇보다 알고 싶어 하는 지니 사건의 비밀 파일을 미끼로 팀을 위원회에 가입시킨다.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횡행하는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윌리엄 라이너 교수가 준비한 파일들을 검토하고 표결에 의해 징벌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목표한 일들을 무리 없이 처리할 수 있을까? 역시 미스터리 스릴러답게 후반부에 놀라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매우 긴박하게 돌아간다. 어떻게 해서 평범해 보이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되고, 법 체계 전반에 대해 그동안 수없이 논의되어져 온 핵심적인 문제-과연 우리 사회의 법 시스템이 공정하게 집행되고 있는가-에 대해 팀 맥클리의 냉철한 시각을 통해 한 발자국씩 다가선다.

아울러 희생자 부모의 쓰라린 경험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 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두 9권의 책을 쓴 작가 그렉 허위츠는 글쓰기에 앞서 철저한 리서치와 준비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이 책 <살인위원회>를 쓰기 위해서 자신이 접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에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팀과 드레이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대립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아이의 죽음에 대한 책임 소재에 대한 논쟁에 이르기까지 소설 전개에 있어서 중요한 주인공의 감정 표출에 대해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애끓는 감정을 슬며시 독자들에게 전이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위원회의 초법적인 행동에 ‘할 수만 있다면 나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주인공의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이 작동을 하기 시작한다. 이런 감정과 이성의 대결구도는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대립에서도 지켜볼 수가 있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지니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다는 암시와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진 위원회 활동과 자신을 옥죄어 오는 경찰의 움직임(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전직 경찰을 쫓는 자신의 동료들)에 책을 읽는 독자들의 아드레날린 수치는 높아져만 간다. 물론 700쪽이 넘는 분량이 적잖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극적인 후반부의 반전과 스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전혀 아깝지 않을 시간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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