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 In the Blue 1
백승선.변혜정 지음 / 쉼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2년 전 두 번째로 유럽을 찾았을 때, 비엔나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가 혼자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겠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니 미쳤나? 그 먼델 왜 가?’라고 혼자 생각을 했었다. 지금 되돌아 생각해 보면, 아마 살면서 크로아티아에 그렇게 가까웠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지금은 후회막심일 뿐이다.

백승선 씨와 변혜정 씨가 찍고 쓴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를 읽기 전에 KBS 세계여행 다큐멘터리인 <걸어서 세계속으로> 크로아티아 편을 봤다. 책이 도착할 때까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드리아 해의 보석상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크로아티아의 풍경들이 화면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에서도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그대로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 달마티아 지방의 수도이자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 스플리트, 크로아티아 자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 성곽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두브로브니크를 찾는 여정이었다. 신기하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작품을 한 명의 연출자가 연출한 것처럼 같은 곳들을 둘러보다니.

이미 영상으로 크로아티아를 흐뭇하게 감상해서였는진 몰라도 책에 담겨진 그림 같은 풍광들이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마치 오래 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을 다시 찾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흐릿한 기억 속의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그런 아스라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 날것 그대로의 감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텍스트들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진들을 가득 담았다고 한다. 감동이었다.

1991년 6월 25일 구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선언을 했을 당시, 크로아티아는 곧바로 세르비아계가 이끄는 신유고 연방군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했다. 당시 신유고 해군의 격렬한 포화가 퍼부어지던 두브로브니크를 구하기 위해 프랑스의 학술원장이었던 장 도르메송이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유럽 문명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 팔짱만 끼고 있을 것인가라는 사자후를 토하며, 신유고 해군 앞에서 보트 시위를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이야기는 국가와 민족의 차원을 떠나 전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어느 지식인의 너무나 감동적인 일화였다.

그 후 유네스코 등의 지원으로 아드리아 해의 보석답게 예전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두브로브니크. 높이 25m, 길이 2km에 달하는 두브로브니크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성벽과 그 성벽에 둘러싸인 오렌지색 지붕들 그리고 터키 옥색빛 바다의 조화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의 도시 두브로브니크에서 여행에 지친 다리를 쉬며, 한 조각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부럽기만 했다.

크로아티아 자연유산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플리트비체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크로아티아의 절경이다. 희귀 야생동물과 다양한 조류들의 서식지로 지난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을 정도다. 무엇보다 여느 관광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먹거리들을 파는 요란스러운 매점들이 없다는 점과 친환경적이라는 국립공원 시스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4계절에 따라 물빛이 바뀐다는 16개에 달하는 호수들 그리고 그 안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의 조화가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나도 그 호수들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도원경에서 노닐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히 들었다.

달마티아 지방의 중심도시인 스플리트는 기독교도를 박해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황궁으로 유명하다. 당시 로마시대를 지배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콘스탄티누스에게 양위하고 10여년간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고래로 무역항구로 유명했었는데 지금은 달마티아 지방에 산재한 많은 섬들을 잇는 거점항구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단다. 현대를 사는 이들과 고대 로마 유적들이 공존(coexistence)하고 있는 그네들의 삶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책의 작가들은 그런 점에 주목을 해서, 빨래를 널어놓은 장면이나 덧창들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나 보다.

책의 마지막 코스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천년도시 자그레브였다. 동서양의 기착지답게 20년 전의 전쟁의 참화를 딛고 현대화된 자그레브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치려던 작가는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폴란드인 여행자의 조언으로 자그레브의 참모습을 체험하기도 한다. 미처 몰랐었는데 우리가 입는 양복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는 넥타이의 원조가 바로 크로아티아라고 한다. 전쟁터에 나가는 남편이나 연인을 위해 무사히 돌아오라는 마음을 담아 크로아티아 여인들이 목에 감아 주던 스카프가 그 유래라고 한다.

자그레브의 칼라라고 할 수 있는 파란색 푸니쿨라를 타고 로트르슈차크 타워에서 매일 정오에 쏘는 대포 소리도 듣고, 도이치 시장에 들러 현지에서 재배한 사과도 먹어 보는 일상의 즐거움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자그레브의 청소년들이 벽에 그린 그래피티조차도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게 되면 색다르게 보이게 되는걸까? 작가들의 삶의 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 앵글과 짧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글들이 독자들의 역마살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돈이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도무지 여행할 기회가 없다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모두가 핑계라고 했던가. 나를 크로아티아에 가지 못하게 만드는 핑계는 과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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