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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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자자한 애니 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드디어 읽었다. 모두 11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의 원제는 <클로즈 레인지: 와이오밍 이야기들>이다. 그리하여 구글맵으로 도대체 와이오밍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그리고 소설들에 나오는 샤이엔, 캐스퍼 그리고 래러미 같은 그나마 이름이 좀 알려진 도시들의 위치들을 찾아봤다. 미국에서 10번째로 큰 주지만 인구는 2016년 기준으로 58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수에서는 DC를 제외한 50개 주 중에서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에 등장하는 황량한 목장의 카우보이들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미국의 메트로폴리스들인 뉴욕이나 시카고 혹은 로스 앤젤레스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다. 전자가 지구촌화 되어 가는 우리네 삶의 양상과 변별점을 가지지 않는다면, 후자는 정말 확연하게 다르다. 정치적으로 전통적으로 ‘레드’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부보조금에 의존해서 지역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목축업에 종사하는 삶의 양태도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 미국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와이오밍에 사는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기네 목장의 울타리 치기와 가뭄이나 우박 같은 재해로부터 안전하게 한 해를 보내는 일이다. 문득 예전에 오클라호마에서 온 친구가 평소에 하도 할 일이 없어서, 소들이 교미하는 것을 보고 놀았다는 말을 듣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읽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또 한 편으로 애니 프루 같이 능력 있는 작가가 와이오밍 같은 그야말로 촌구석에서 미국적 삶의 양태를 글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국 사회를 유지하는 힘을 느낄 수도 있었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비록 예전 같진 않지만 팍스 아메리카나의 숨겨진 저력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낯설음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박차를 만들어서 자그마치 300달러나 주고 파는 박차 제조공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그 아름다운 박차를 타고 다니다가 암컷 늑대를 만나 낙마해서 땅에 쳐박혀 죽은 아내의 희비극적인 이야기. 어려서부터 말타고 다니는 일에 익숙하다 보니 거친 카우보이 사내들 사이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카우걸.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아내를 범하고 그 친구에게 술김에 총질을 당하면서도 맞총질하지 않는 대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여자 거인에 가까운 모습이어서 결혼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던 처녀는 트랙터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아버지 대신 소를 사러 온 소 상인과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하기도 한다.

 

거칠기 짝이 없는 황소 잔등에서 8초 버티기라는 신기에 가까운 로데오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싸나이들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인대가 끊어지고, 팔뚝이나 다리뼈 혹은 갈비뼈가 부서지는 건 일도 아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도 몸이 낫는 대로 다시 로데오에 나서는 무모함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널뛰기 하는 소값과 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안 대대로 물려 받아온 목장을 외지인들에게 팔고 소치는 일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이 천둥벌거숭이 뜨내기처럼 막일에 나서는 가장들의 모습에서는 직장에서 나이 먹고 정리해고로 인력시장에 내몰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가장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기묘한 동질감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와이오밍에는 카우보이들이 산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지상낙원 와이오밍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역시 소설집의 백미는 맨 마지막에 실린 <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정작 영화나 원작소설은 못 보고 항상 SNL 같은 패러디만 봐서, 형편 없는 카우보이 게이영화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작 소설을 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히스 레저가 맡은 에니스 델 마와 제이크 질렌할이 연기한 잭 트위스트의 20년간에 걸친 사랑과 우정 이야기가 중심이다.

 

양떼를 치는 일에 동료로 투입되었다가 기묘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행동을 못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고용주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누가 양떼를 지키는 대신 비역질하라고 돈을 주냐며 비난하는 고용주의 일갈이 생생하다. 그리고 다시 약혼자에게 돌아가 결혼하고 제각각 가정을 꾸린 에니스와 잭은 동성애자라기 보다 양성애자에 가까웠던 게 아닐까. 결국 잊을 수 없었던 브로크백 마운틴 시절을 그리며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지 않았을까. 어쨌든 삶의 한 시절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원작소설이나 영화의 말미를 장식하는 셔츠 속의 셔츠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급한 마음에 구한 영화를 차분하게 볼 생각에 앞서 소설에 등장한 예의 장면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 찾아보았다.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된 거친 서부 사투리(솔직히 말해서 알아 먹기 힘든)를 구사하던 히스 레저의 명연기가 돋보였다. 앤 해서웨이가 잭 트위스트의 와이프로 등장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케이트 마라는 틴에이저 시절의 에니스의 딸 알마 주니어로 나왔다.

 

소설집 <브로크백 마운틴> 이후 애니 프루의 와이오밍 시리즈는 두 편(2004년, 2008년)이 더 나왔다. 애니 프루의 작품은 <시핑 뉴스> 이래 두 번째인데 전에 읽은 작품보다 훨씬 더 와이오밍 스토리가 마음에 든다. 애니 프루의 작가의 다른 신간들도 빨리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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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4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그 원작소설인가 보네요.. 자연풍광과 카우보이의 동성애 연기가 기억에 남던데..원작과 영화를 비교해 보면서 감상하는 것도 참 좋은 것 같군요. 엄청 부지런 해야 겠지만.. 저 같은 게을뱅이는 소설 읽기에도 바쁘네요.^^

레삭매냐 2017-11-14 15:34   좋아요 1 | URL
전설 같은 책을 이제야 만나게 되었네요.
영화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들었었는데
마침 소장 중인지라 시간 내서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외로 지금은 스타가 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11-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개정판 표지가 신판보다 낫군요. ^^

레삭매냐 2017-11-14 15:4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영화의 후광 덕분이 아닐까요? ㅋㅋㅋ

단편을 영화로 만들어낸 역량이 더 대단한
것 같습니다.

밤에읽는책 2019-07-11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리뷰 진짜 잘 읽었습니다. 애니 프루 소설들 읽어보고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