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독서 -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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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님의 신간을 읽기 시작했다. 어린날 책을 가까이하던 소년이 어찌해서 책에서 손을 떼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해서 자신을 구원에 이르게 하였는지를 그린 서문은 인상적이었다. 모름지기 마태우스님 정도 되는 저자라면 그 정도 스토리는 있어야 하는 법. 폴 비티의 <배반> 때문에 골치가 아프던 차에, 마태우스님의 술술 읽히는 <서민 독서>는 초여름의 한줄기 소나기 같은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맨부커상과 도서정가제에 대한 꼭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우선 최근 발표된 맨부커상을 소설 한 편으로 냉큼 집어 먹은 조지 손더스 아저씨의 경우를 보더라도, 역시 진입장벽이 쉽지 않아 보인다. 무조건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좋은 책이라는 의견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마태우스님이 말하는 대로, 역시 눈밝은 독자라고 한다면 타인의 추천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그런 수준의 책들을 읽어야 하는 법이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 점에서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의 책들은 다른 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베스트셀러 열풍에 동참하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그의 주요 저작들이 모두 국내에 사전 출간된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수상 즈음해서 출간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로 조지 손더스의 케이스처럼. 아마 국내 출간이 되도 맨부커상 약발이 다 떨어진 다음이겠지만.

 

자, 다음 주제는 도서정가제. 마태우스님은 열렬한 독자이면서 동시에 업자인지라 아마 이 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지. 그러니 나같은 독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적어도 업자는 아니니까. 솔직히 말해서 그놈의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신간 서적을 사는 횟수가 예전에 비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게다가 조금만 기다리면 곧 중고서점에 신간이나 진배 없는 녀석들이 줄줄이 출몰하는 마당에 굳이 신간을 사서 읽어야 하나? 물론 그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책 같은 경우엔 바로 산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그랬고 지금 악전고투 중인 폴 비티의 <배반>이 그렇다. 누구를 위한 도서정가제인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독자들을 위한 시스템은 아닌 것 같다. 마태우스님의 글에서도 출판사와 서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고 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패스한 그런 느낌. 이 점에 대해서도 뭐 필요한 사람들은 사서 읽을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해서 책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면 도서관을 이용하겠지.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읽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난증(인터넷 난독증) 시대에 다른 즐거움들을 뒤로 하고 오롯하게 책에 집중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어디서나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 소리를 비롯해서 손 안에 든 모바일폰에서 나오는 오만가지 재미있는 콘텐츠들이 득시글거리는 판에 왠 책?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열혈독자 마태우스님은 인류를 새로운 시기로 이끌어 가고 있는 진짜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같이 쟁쟁한 인사들의 유년 시절에 절대적 영향을 준 독서 일화를 소개한다. 아니 이미 열 살 때, 하루에 열시간씩 책을 읽는 남자가 세계의 리더가 되는 게 너무 당연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여왕의 독서 일화를 소개하는 순간, 예전에 알쓸신잡에 등장한 대사가 생각났다. 독서가 진정한 쾌락이 되는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라고. 공공의 의무를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즐거움을 위해 읽는 독서야말로 우리 무지몽매한 독서가들이 꿈꾸는 최고봉, 열락의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쳐 흐른다. 개인적으로 열심히 알라딘 북플 활동을 해서 그런 진 몰라도 알라딘에서 추체험한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업자(!)답게 번역에 관해서는 을유문화사가 최고라는 깨알같은 홍보도 마태우스님은 잊지 않는다. 세문 홍보는 또 어떤가. 그렇지 다시 부활한 을유문화사 세문 1번 타자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이었지. 조금 읽다가 집어 치워 버렸다. 나도 마태우스님과 비슷한 경로를 겪었던 모양이다. 세계적 고전이라고 해서 도전했다가 아, 정말 나하고는 맞지 않아 하고 때려 치운 게 몇 번이던가. 최근에 허버트 멜빌의 <모비 딕>에 도전했지만 역시나 지지부진하다. 그리고 어렸을 적에 읽었던 축약본 때문에, 읽었다는 착각으로 세르반테스의 원전 <돈키호테>도 사두기만 하고(판본이 두 개나 된다) 다시 읽지 않고 있지 않은가. 이 위대한 원전에 달린 한 줄 요약을 보라. 정신병자가 풍차에 돌진하는 이야기라고 했던가. 축약본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해도 지나칠 것 같지가 않다. 원전을 읽고 난 다음에 느끼게 될 성취감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 하랴.

 

일론 머스크나 버락 오바마 같은 세계적 리더들도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데 하루 평균 3시간 44분이나 스마트폰에 소모하는 인난증 시대에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는 최소한 말이 되지 않을 것 같다. 휴대폰 대신 그 시간에 책을 읽는 건 어떨까. 물론 책을 읽기 위해서는 독서 근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훈련이 안된 독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독서모임에 나오는 업자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항상 다음에 읽을 책이, 아니 읽어야 하는 책이 대기 중인데 그런 고민을 할 틈이 없다.

 

마지막으로 피해야 할 책에 대한 에피소드에서는 정말 빵 터져 버렸다. 어느 독재자의 회고록 논란은 말할 것도 없지만, 법학도 출신으로 신문사 영업부장을 하시던 분이 느닷없이 의학저술가로 변신해서 현대 의학의 진료를 거부라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운 따름이다. 최근 이슈가 된 안아키만큼이나 독자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나무위키에서 ‘사이비 의학가’가 명명한 저술가가 결국 당뇨병에 의한 결핵이라는 병명으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는 글을 보고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따름이었다. 이래서 사이비를 판단할 수 있는 독서 근력이 필요하구나 싶었다.

 

평소 마태우스님이 경향신문에 기고하는 칼럼들을 재밌게 읽어서 그런지 마태우스님의 글이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너무 재밌어서 도저히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빨랑 읽고 나서 어제 막 달려 나가서 산 로베르트 제탈러의 신간 <담배 가게 소년>을 읽고 싶어서 더 그랬는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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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25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하, 서민교수님이 ˝마태우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알라디너 시군요..근데, 얼굴과 매칭이 진짜 안되는 군요..기억은 오래가겠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17-10-25 10:44   좋아요 1 | URL
제가 알기로는 서민 교수님이 그전에 마태우스
라는 소설도 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강연에 가셔서도 얼굴 이야기로 시작을 하신
다고 하더라구요 ㅋㅋ

싸이러스님께서 자세히 알고 계신 것으로 사료
됩니다.

sprenown 2017-10-25 1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 그렇군요..저도 티비서 본거 같아요.말씀도 재미있게 하시고..

레삭매냐 2017-10-25 14:13   좋아요 1 | URL
기생충업계의 이단아라고나 할까요? ㅋㅋ
새로운 사실들은 흥미로웠고, 알고 있던
부분들은 복기할 수가 있어 좋았습니다.

cyrus 2017-10-25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쓸신잡 2기에 마태우스님이 고정 출연했으면 정말 재미있는 장면들이 나올 거예요. 음식 먹고 있는데 능청맞게 기생충 이야기하는 마태우스님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7-10-25 15:35   좋아요 0 | URL
그 아이디어 좋습니다 !

나PD에게 추천해 주심이 어떨실런지요 :>

단발머리 2017-10-25 16: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째요~~~ 알쓸신잡 2기 이미 1회 녹화 다했어요. 건축가랑 뇌과학자가 새로 들어왔다고...
마태우스님 투입 참... 좋은 아이디어인데요. 쩝....
도서정가제에 대한 이야기나 인난증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저도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그나저나 레삭매냐님 돈키호테 사두신 판본 어디어디껀지 궁금해요.
전 집에 창비 있는데 열린책들 아니라서 안 된다고 여지껏 안 읽고 있거든요^^

레삭매냐 2017-10-25 16:08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나피디는 부지런하기도 하여라.

개인적으로 도정제는 출판사하고 서점만 관련
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제외된.

시공사 판본으로 산 건 도대체 어디에 두었는
지 못 찾겠더라구요. 예전에 할인해서 싼 가
격에 샀는데 말이죠.

최근에 창비 버전으로 하나 구입했습니다.
어려서 축약본 본 게 전부여서 말이죠.

정신병자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이야기,
기대해 봅니다.

stella.K 2017-10-25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읽기 정밀 힘들죠.
그래도 남는 건 고전이어요.
쉽게 읽힌 책은 쉽게 잊혀지는 법이죠.
막 고통스럽게 읽어야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도대체 폴 비티의 <배반>이 어떻길래...ㅋ

아, 정말 멀리 볼 필요도 없이 알라딘에도 독서 고수들이 참 많죠.
그에 비하면 저는 정말 반성을 많이 합니다.
이런 사람이 책을 다내고. 공햅니다. 공해...ㅠㅠ

레삭매냐 2017-10-25 17:07   좋아요 1 | URL
너무나 공감하는 바입니다.
즐겁고 재밌긴 한데 그만큼 휘발성도
강하다고 해야 할까요?

물론 모든 고전이 다 저하고 맞지는
않지만 말이죠. 자신과 맞는 고전을
찾는 게 미션일 듯 합니다.

폴 비티의 <배반>은 미국 사법 시스템과
인종차별의 역사, 흑인 하위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작가가 구사하는 독특한
스타일의 패러디를 이해할 수 없다면 무척이나
재미 없는 독서라는 느낌입니다.

그런 점에서 말런 제임스의 책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고, 결국 다 읽지
도 못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