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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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데이트> 2016년 2월 23일 ~ 25일

 

2016년 초부터 북한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이슈가 총선을 앞둔 마당에 모든 어젠더들을 삼켜 버리고 있는 형세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외교안보 라인의 총체적 난국과 무능함을 날것 그대로 생중계로 보여주는 중이다. 이런 시류에 출간된 김정섭 저자의 <외교상상력>은 1차 세계대전 이래 혼란스러운 국제무정부 상태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안성맞춤의 외교입문서로 보인다. 나같은 외교정책에 문외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간략하면서도 기존의 이론들로 자세하게 풀어준다.

 

주지하다시피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이 세계패권국가였다.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서구 유럽의 선진적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대영제국은 유일무이한 패권국가로 부상했다. 이런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영국에 도전장을 낸 국가는 중부유럽의 신흥 독일제국이었다. 후발 주자였던 독일은 철혈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영국, 러시아와 협력해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프랑스 프로이센전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비로소 통일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된 독일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나중에 저자가 기술하는 대로 패권국가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는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쟁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유럽 대륙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러시아 세 개의 제국이 붕괴되고 지속적 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로 국제연맹이 결성되었지만 주창자였던 미국이 국내 사정으로 빠지면서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연맹은 일본의 만주침략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그리고 히틀러의 영도 아래 재무장에 나선 제3제국의 라인란트 진주 등을 막지 못하면서 유명한 존재로 추락하게 된다. 서방 세계는 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한 번 격돌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난 뒤 1차 세계대전에서 비교적 관대한 조처를 받았던 독일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강이 분할해서 동서 간의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으로 중부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 시스템을 구축하기 노력을 시작한다. 물론 곧바로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두 번째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각국이 모여 합의한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전후 설계도가 마련됐다. 영국에 이어 세계적 패권국가가 된 미국의 우월한 생산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된 이 시스템 역시 전후 반세기 가량 흐르면서 지방할거 시대를 맞아 각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김정섭 저자는 서방에서 시작된 외교 이야기를 동서로 이어지는 횡축과 과거에서 현재로 연결되는 종축을 따라 서술하고 있다. 서방세계의 냉전, 세계의 화약고가 된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의 대결, 국내외의 다양한 사정으로 중동에서 발언권을 잃게 된 미국, 이라크의 붕괴와 이란의 부상으로 세계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된 이슬람 국가(IS, 다에쉬) 문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계의 새로운 중심 중국, 전쟁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위권을 발동시켜 보통국가로 진입하려는 일본의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가 된 북한의 위험한 모험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인 외교 이슈들의 핵심을 저자는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웃 중국의 부상만큼이나 걱정거리가 날이 갈수록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이웃 일본에 대한 우려다. 지난해 말 비가역적 위안부 협상이라는 굴욕적 사태부터 시작해,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동맹시스템의 핵심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한 미국은 유사시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7개 미군기지를 지원할 수 있는 후방 지원을 일본에게 기대하고 있다. 패전국가 독일과는 달리 역사청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곧바로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국제무대에 복귀한 일본은 중국이 추월하기 전까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뛰어난 경제발전을 이룩해냈다. 그간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역내 국가 간의 관계는 여전히 삐걱대고 있다. 유사시 미국의 일본에 대한 역할론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우려에 핵심적인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는 거시적 차원에서 전세계 외교를 아우르는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좀 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의 안보딜레마에 대해 기대를 했다고 하면 무리일까. 초반에 저자가 저술하는 대로, 한 나라의 자위권에 해당하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오히려 주변 경쟁국가를 자극해서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안보딜레마의 역설을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협 때문에, 우리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어 시스템인 사드(THAAD:종말단계 고고도 지역방어체계)을 도입하고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폐쇄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시스템이 우리의 방어 시스템의 범위에서 벗어나 자국의 안보에 침해한다는 판단 아래 대사 초치해서 항의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에 너무 의존하는 편승(bandwagoning)으로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우리의 안보보다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무기판매에 집중한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 누출된 위키리크스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외교안보 정책의 수립과 실행이 중요한 시점에 김정섭 저자의 <외교상상력>은 제목 그대로 천편일률적인 인과관계에 바탕한 외교정책이 아닌 보다 창조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강대국 간의 균형(balancing) 잡힌 외교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우리의 외교 역량 이슈는 또다른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뱀다리] 사소한 오탈자와 실제 역사와 다른 기술이 눈에 띄었다. 78쪽에서는 영국 수상의 이름을 쳄벌린이라고 했다가. 83쪽에서는 챔벌린으로 통일하지 않았고 체코의 중요한 지명인 주데덴란트를 역시 같은 83쪽에서는 수데덴란트로 표기하고 있다. 81쪽에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에서 불가리아가 분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주불가리아 대사관의 불가리아 약사를 살펴보면 불가리아는 오스만 터키에서 독립했다. 나치의 폴란드 침공에 대해서도 체코와 같은 수법(83쪽)으로 썼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영토할양이나 병합 건은 없었으며 1939년 9월 1일 전격전(블리츠크리크)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소한 부분들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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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쳄벌린`을 `체임벌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레삭매냐 2016-03-03 17:49   좋아요 0 | URL
제가 나중에 수정했는데 그 표현이 아니라
어디서는 쳄벌린이라고 했다가 어디서는
챔벌린이라고 하더라구요. 오류 정정했다고
하니 다음 판에서는 수정할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