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32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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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시집을 읽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가 없다. 오래전 군대 있을 적에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은 것이 아마 마지막이지 싶은데, 사실 그것조차 제대로 다 읽었는지 아니면 표제작만 달랑 읽었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나면서, 백석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갔었는데 오랜 시간 동안 읽지 않고 다시 가지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러니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읽은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는 정말 나에겐 기념비적인 시집이 아닐 수 없다.

 

소설과 인문서적, 여행기 등등 독서에 있어 탐닉하는 편인 나에게 시집은 왠지 금기의 대상처럼 다가왔다. 아마 그 대부분은 학창 시절 시적 의미를 분석하고 외워서, 평가를 하는 학교교육의 폐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시절에는 시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도통 없었다. 그저 나에게 시는 평가의 대상으로서 텍스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지겨움의 발로에서였을까 나이가 먹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또 한편으로는 시인이 구사하는 시적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자괴감도 있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그렇게 오랜만에 읽은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 역시 그런 나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어떤 구절들은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아마 내가 시를 멀리 하는 직접적인 이유일 것이다), 간신히 따라 잡은 구절들 역시 자의적 해석으로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조백(早白)이니, 중음(中陰)이니 굿당이니 하는 말들은 솔직히 난생 처음 듣는 표현들이었다. 그런 표현들의 해석을 위해 굳이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적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역시 시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즐겨 읽는 소설보다는 좀 더 수고가 필요하구나 싶었다. 최근 시집을 읽어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해석도 달지 않은 한자를 시인을 구사한다. 다행히 누군가 그 한자풀이에 약간의 감상을 적어 넣어 나같은 시에 대한 문외한에게 도움을 제공해 주니 고맙지 아니한가.

 

시는 역시 독자에게 무궁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그 광경을 이미지화해서 상상해 보는 능력을 요구한다. 어미 기러기가 새끼 기러기를 업고 나는 장면을 그려본다.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가? 시를 읽다 보니, 머리와 꼬리는 다 사라져 버리고 한 구절들이 뇌리에 와서 들어와 박힌다. 그리움의 곡면이라니. 그런 표현을 창조해내는 것이야말로 시인 본연의 임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세상에 나를 보내준 어머니가 풍상에 젖어 나이 드는 것을 얼굴에 골짜기가 생겼다는 말로 형상화해내는 문태준 시인의 감수성이 인상적이다. 영원히 젊을 것만 같았던 나의 어머니 역시 세월을 이길 수 없구나.

 

표제작인 <가재미>에서는 암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가 부상한다. 죽음을 물속이란 말로 대치한 걸까. 병실에서 환자 옆에 누운 이를 한 마리 가재미로 형상화해서 그 옆에 나란히 배치한다. 그녀의 거칠어져 가는 숨소리, 야윈 두 다리 따위가 죽음의 사자가 가까이에 와 있음을 암시한다. 그 사이를 좌우로 헤엄치는 나는 가재미다. 슬픔의 감정을 가재미에게 이렇게 효과적으로 이식할 수 있다니 역시 시인답다.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서는 지기와 떠난 담양여행에서 먹었던 국수 생각이 났다. 그 집 역시 평상이 있었다. 국수는 역시 한 여름날 평상에서 먹어야 제 맛이던가. 시의 한 구절마다 떠오르는 추억에 대한 사모가, 사연이 과거로 나를 돌려보낸다.

 

문태준 시인의 <가재미>를 읽으면서, 시집은 역시 단발성으로 한 번 읽고 말 것이 아니라 좋은 시집이라면 곁에 두고 계속해서 곱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 세월의 풍상이 더께처럼 삶 속에 둥그런 고요처럼 침잠하면 그 땐 또 다른 느낌으로 나에게 깨달음을 전해주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리딩데이트] 20141011~ 12일 오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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