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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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공교롭게도 김태권 작가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는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십자군 이야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비슷한 시기에 출간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십자군 이야기가 기존의 정치적 관점 대신 십자군 원정을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상인집단의 활동과 원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일정 부분 초점을 맞춘다면, 김태권 작가는 종래의 정치적 관점을 기본으로 이슬람의 관점에서 객관적 사실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란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의 시점이 중요하다.

 

무릇 시리즈라 하면 화끈하게 알파에서 출발해서 오메가까지 달려주는 그런 맛이 있어야 하는데 김태권 작가의 경우에는 1,2권과 나중에 다시 연재를 시작하면서 나온 3,4권의 간극이 원체 길다 보니 전반부에서 중요하게 다루던 미국 행정부에 대한 날선 비판은 후반부에서는 아예 사라져 버렸다. 김태권 작가가 계속해서 연재를 계속했더라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십자군 이야기 속에 녹아들었을지 자못 궁금하다.

 

십자군 원정 초반까지도 십자군 세력의 침공이 종교전쟁이라는 실체를 인식하지 못했던 무슬림들은 기독교 전사들의 지배가 공고화되면서 비로소 기독교도들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하드(성전)에 나서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분열 때문에 프랑크 기사들에게 단일대오 전선을 만들지 못했던 무슬림 세계는 알레포와 모술을 근거로 한 걸출한 지도자 이마드 앗딘 장기의 영도 아래, 기독교 제후들에 대한 반격을 개시한다. 1144년 팔레스타인 기독교 제후국 중의 하나인 에데사를 함락시키면서 장기는 일약 무슬림 세계의 스타로 부상한다. 에데사를 공략하는데 성공한 장기는 평생의 숙적이었던 부리 왕조가 지배하던 다마스쿠스를 정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다했으나, 노예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이 부분은 삼국지에서 일세를 호령하던 호걸 장비의 죽음과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태권 작가가 제대로 그려주었다.

 

사실 이번 네 번째 십자군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슬림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하다고 일컬어지는 영웅 살라흐 앗딘 유수프, 우리에게는 살라딘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군사적 영웅이라기보다 유약한 서생 스타일에 가까운 아이유브가 어떻게 해서 이슬람 세계의 대권을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김태권 작가의 서술은 음미해볼만하다. 아이유브/살라딘의 경우에 영웅이 역사를 움직인다기 보다는 역사가 영웅을 만들었다는 해석이 더 옳지 않을까? 티크리트 쿠르드족 출신인 살라딘은 어려서 무슬림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마스쿠스에서 수학하고, 숙부인 시르쿠 휘하에서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격전을 치르면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문무를 갖추고 비상하는 예비영웅 살라딘에게 삼촌과 함께한 이집트 원정은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자신의 주군인 누르 앗 딘/누레딘과의 마찰을 끝까지 피하면서 살라딘은 결국 누레딘의 사후 유일한 무슬림 세계의 지도자로 부상한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오랜 기간 동안 전개된 십자군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무슬림의 영웅 살라딘과 서구 최강의 전사로 칭송받았던 사자왕 리처드의 대결이다. 그런 점에서 먼저 링 위에 오른 스타이자 인간 살라딘에 김태권 작가는 먼저 초점을 맞춘다. 온갖 신화나 에피소드로 치장된 영웅의 그것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영웅상은 그래서 더 인상 깊게 다가온다. 살라딘이 이집트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은 고진감래의 전형이었다. 시리아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는 주군 누레딘의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는 살라딘의 행동을 제약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명목상의 주군과 비상하는 술탄은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치닫지 않았던가. 어쩌면 누레딘이 급사하지 않고, 살라딘과 무력충돌까지 갔다면 심각한 분열 때문에 무슬림 세계의 통일은 더 늦어졌을테고 예루살렘 왕국으로 대표되는 팔레스타인 기독교 왕국은 서방 십자군의 도움으로 그 명맥을 더 이어가게 되지 않았을까. 역사의 가정이란 덧없었다는 걸 뻔히 알지만,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역사적 상상력은 참 유쾌하지 않은가.

 

중세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당대의 각종 미술자료와 회화는 물론이고 태피스트리까지 섭렵했다는 김태권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그의 노고가 빛을 발할 진 모르겠지만 1,2권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현재를 관통하는 신랄한 비판정신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 같아 아쉽다. 간간히 보여주는 현실비판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부시 당나귀'가 아쉬운 모양이다.

 

이제 네 번째 단행본도 나왔으니 어서 빨리 다음 십자군 이야기의 시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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