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키스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임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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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바로 감이 오지 않는가? 그렇다, 프랑스 출신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신간 <시작은 키스>는 바야흐로 연애의 계절에 무시로 우리의 곁을 찾아온 달달구리한 연애소설이다. 리뷰의 제목을 “한 편의 컬트영화처럼”이라고 뽑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미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물론 그 영화가 컬트영화인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극히 프랑스적인 감각의 영상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책의 표지에 나오는 키스를 암시하는 발돋움 사진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시작은 키스>를 다 읽고 나서 바로 표지를 보면 무릎을 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표지 한 번 잘 뽑았다.

 

책을 읽는 동안 삶에서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으로 삶에서 지고의 행복을 찾지만,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타나토스의 순간 역시 피할 수가 없는 숙명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 우리를 찾아 오는가하는 시간의 문제일 뿐. 주인공 나탈리(작가의 이름에 대한 설명이 매우 흥미롭다)는 운명이 맺어준 짝인 프랑수와와 만나 사랑에 빠지고, 몇 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다. 아, 그들을 커플로 맺어준 운명의 매개체가 다름 아닌 살구 주스였다는 점 역시 특이하다. 모름지기 사랑이란 그런 거였구나.

 

그냥 그렇게 소설이 흘러갔다면 얼마나 싱거웠겠는가. 어느 휴일, 조깅을 하러 나선 프랑수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 홀로 남겨진 젊은 아내 나탈리의 충격과 상심이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직 그런 어마어마한 상실의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일까. 나탈 리가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순간, 소설의 전개상 긴장감의 고조를 위해 투입된 그녀의 보스이자 사장 샤를의 존재감이 치솟아 오른다. 나탈리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샤를의 아내를 지적하기 전까지, 몰랐던 이 뻔뻔한 남자의 스테이터스를 알아채고 분노하기에 이른다. 사랑을 가장한 육욕에 지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것도 모를 일이다.

 

자, 이쯤에서 소설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다. 그것도 우리의 주인공 나탈리의 기습적인 키스를 받으면서 말이다. 세계 모든 나라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는 사회복지의 천국 스웨덴 출신 마르퀴스가 바로 주인공이다. 우연을 가장한 숙명에 대해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도둑 키스로 <시작은 키스>의 전반전은 화려한 피날레를 내린다.

 

소설의 원제목인 “델리카테스”에 대해 이야기했던가. 프랑스어로 섬세한, 세련된, 허약한, 예민한 그리고 다루기 힘든 등등의 다양한 뜻을 가진 형용사 ‘델리카’의 여성명사형이라는 “델리카테스”야말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여성 나탈리와 왠지 모르게 영화 <파니 핑크>의 원제목을 연상시키는 남자 마르퀴스의 만남에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도 없을 것 같다. <시작의 키스> 곳곳에 등장하는 ‘델리카’한 상황에 독자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다.

 

다시 나탈리와 마르퀴스의 만남으로 돌아가, 선수 같지 않고 오히려 어설퍼 보이는 마르퀴스의 매력이야말로 일 외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상실의 슬픔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던 매력적인 커리어 우먼 나탈리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쩔 때는 독자의 예상대로 혹은 그렇지 않게 진행되면서 사랑의 왈츠를 완성한다. 남자 작가가 “미소의 왈츠” 같은 찰나의 미학이 듬뿍 담긴 어휘를 구사할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소설의 곳곳에 등장하는 친절한 “원주”도 소설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소설의 진행에서 특정한 사건의 빌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해서 글로 형상화해낸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기법 역시 멋지다. ‘그렇지 연애소설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자신의 경험을 기술하듯이 사랑에 빠져 정신 못 차리는 남자 마르퀴스의 심리에 대한 묘사도 뛰어나다. 첫 데이트 후에 기교 넘치는 말 대신, 솔직하게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상대방을 사로잡다니. 연애에서 때로는 현란한 언어의 기교 대신 정공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을 다비드 포앙키노스는 깨닫게 해준다. 두 번째 데이트를 앞두고 사랑의 환영에 빠져 전혀 준비를 하지 못해 허둥대는 마르퀴스의 모습에 절로 공감이 갔다. 역시 멋진 데이트는 어렵구나 하고.

 

연애하기 정말 좋은 계절이 왔다. 그리고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향한 비자가 발부되었다. 선택은 모두의 몫이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시작은 키스>가 우리를 위한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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