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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예전에 만화가 김태권 씨가 라틴어를 배운다는 말을 듣고서 부러워한 적이 있다. 그 이유 중의 첫 번째는 비록 죽은 언어지만, 서양 문화의 원류를 직접 대할 수 있는 라틴어를 배우고 있다는 아카데믹한 이유와 두 번째로는 라틴어를 배우는데 투자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부러웠다. 그런데 그런 라틴어도 아니고 희랍어라니. 고대희랍어는 라틴어 이전의 언어가 아니었던가. 희랍어를 배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원전으로 읽을 수 있다니, 상상만 해도 즐겁다.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에는 희랍어를 가르치는 시력을 잃어가는 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희랍어를 배우는 세상의 소리를 잃은 어느 여자의 이야기다.
이렇게 <희랍어 시간>의 리뷰를 한 달 전에 쓰기 시작했다. 어떤 책이든 책을 막 읽고 나서 생생한 기억이 가시기 전에 리뷰를 썼어야 했는데 자그마치 책을 다 읽고 나서 한 달도 넘어서 마무리 짓기에 나섰다. 내가 생각해도 대단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 굳이 한참 뒤 리뷰의 좋은 점을 찾는다면, 모두 휘발해 버리고 남은 그 책에 대한 강렬한 잔상 정도라고 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로버트 드 니로와 마틴 스코시즈의 듀엣의 <택시 드라이버>가 연상됐다. 불면에 시달리며, 도시의 불빛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택시를 모는 주인공 트래비스. 등장인물에게서 떼어낼 수 없었던 바로 그 외로움이 <희랍어 시간>의 두 주인공에게도 그대로 느껴졌다. 여자 주인공이 그 많은 언어 중에 희랍어를 배우려고 했지? 이제는 그런 소소한 기억마저 희미하지만 남자 희랍어 강사가 갑자기 날아든 새와 부딪혀 안경이 부서지고 여자의 도움을 받게 되는 장면은 조각도로 한땀한땀 정성스레 새긴 판화처럼 기억에 생생하다.
신체적으로 무언가를 상실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에 독자는 절로 고개를 끄덕인다. 두 개의 깊은 상실의 골짜기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는 과연 어떤 결말을 작가가 예비하고 있는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기대하고 있던 내러티브 대신 그 자리에 섬세하면서도 탐미적인 묘사가 파고들기 시작한다. 여자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순간을 작가는 뛰어난 촬영감독처럼 잡아낸다. 그야말로 책에 밑줄을 죽죽 긋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매순간 떠오른 감정의 메모를 하지 못한 게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휘발된 감정의 부스러기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여자의 삶을 어머니의 사망, 이혼 그리고 아이의 양육권 송사의 과정으로 갈무리한 점도 인상적이다. 심리치료와 불면증까지 더해지면서 독자는 여자의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을 끝낸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의 곳곳에서 주인공이 구사하는 언어와 작가가 시전하는 문장의 치열한 사투가 이어진다. 소설 <희랍어 시간>은 독자의 감정선을 무시로 자극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임의적 감정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땅에 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남자의 운명에 대한 서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 때문에 한 동안 소멸의 이데아에 대한 환영과 잠잠하던 외로움에 대한 그윽한 파문이 일었었다. 아주 그윽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