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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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월, 로큰롤의 제왕이 탄생했다. 그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 미국 미시시피주 투펄로 출신의 촌뜨기 청년은 마이크와 치지도 않는 기타로 세상을 정복했다. 연인은 떠났고, 외로운 거리를 걷던 노래의 화자는 죽을 지도 모른다는 가사가 실린 2분이 조금 넘는 노래 <하트브레이크 호텔>에 전 미국은 환호했다. 엘비스는 ‘펠비스(pelvis;골반)’이라는 표현처럼 유튜브 동영상 속의 제왕은 엄청난 환호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그렇게 신화는 시작됐다.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첫 번째 밀리언셀러의 영광을 안겨준 곡 <하트브레이크 호텔>과 반세기도 넘는 시간을 거쳐 우리에게 온 서진의 소설 <하트브레이크 호텔>에는 도대체 어떤 접점이 있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펴들었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3개국에 산재한 7개의 도시를 무대로 작가는 ‘시간의 속도’를 장착한다. 무한대로 확장된 시공 속에 아주 특별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 이름은 바로 <하트브레이크 호텔>. 유한한 존재라는 숙명의 인간은 고래로부터 시간여행에 대한 환상을 버릴 수가 없었다. 현재를 사는 인간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유한한 생명만큼이나 필연적인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 꿈꾸는 시간여행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혹은 바꾸고 싶은 심리적 귀결이 아닐까.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드림 머신’은 묘하게 삶에서 지치고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의 단초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애절함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남녀 사제가 아닌 여여사제 간의 야릇한 로드 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는 황령산 드라이브 사이에 낀 이야기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사별한 옛 아내를 잊지 못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장 행복했던 곳(다시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다)에서 마무리하기 위해 찾아온 노인, 돈이라면 무슨 못하는 일이 없을 것 같은 마이애미의 건달,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가 연상되는 시간여행자 등등은 끝나지 않고 순환되는 뫼비우스의 띠를 완성한다.

 

책을 읽다가 문득 작가가 공간적 배경이 되는 도시들의 아우라를 제대로 잡아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스 폰 트리에가 미국 삼부작을 찍기 위해 미국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 것이나, 영화 <카사블랑카>가 모로코에서 현지 로케이션이 되었던가? 이미지의 시대에 라스베가스가 주는 환락과 허무의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가 4년 만에 발표한 작품답게 구성에 있어 조금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방증이리라. 의도했건 그러지 않았건 간에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면들은 오히려 ‘상심’한 이들의 심리를 극대화하는데 아주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인생이 행복하고 즐거운 이들이 왜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찾겠는가. 결핍에 시달리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예의 공간은 존재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

 

그런데 그거 아나? 상심과 비통에 치료약은 오직 시간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고 자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만 그 시간의 속도가 중요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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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8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전 시간에 담긴 양이 중요한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