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본기 1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의 마지막 책으로 태사공 선생의 <사기> 전문가 김영수 역자의 <완역 사기 본기1>를 읽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역사에 많은 관심이 있어서인지 사실 태사공 선생이 각고의 노력으로 집필한 <사기>의 어지간한 내용은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하지만, 21세기에 다시 읽는 <사기>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마르지 않는 풍부한 콘텐츠의 보고였다. 지난 20년간의 사기 연구를 바탕으로 중국 역사 인문서의 신기원을 이룬 사기 완역에 도전하는 역자의 대장정을 응원한다.

역사서로서 <사기>는 연대순 역사 서술 양식인 편년체 방식과 쌍벽을 이루는 소위 기전체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태사공 선생은 제왕들의 역사 기록인 본기와 제후에 대한 세가, 영웅, 호걸 그리고 유협 같은 인물을 다룬 열전으로 구성된 기전체라는 역사 서술 방식을 창안해 <사기>에 도입했다. 아직도 신화와 실제 역사의 구분이 잘 안 되는 오제본기로부터 시작해서 태사공 선생과 동시대를 살았던 한무제 연간에 이르는 장장 3,000년 전에 걸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태사공 선생이 한무제 시대에 흉노족 정벌에 나섰다가 패전한 장군 이릉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 치욕스러운 궁형(宮刑)을 받고 목숨을 부지하면서, 아버지의 유언대로 청사에 길이 빛날 <사기>를 저술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김영수 씨는 바로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긴 <보임안서>와 <사기> 130편의 맨 마지막 편이자 서문에 해당하는 <태사공자서>에서 태사공 선생이 왜 불멸의 역사서 <사기>를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집필 의도를 유추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도 가볍지만, 또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도 무겁다는 말로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이겨낸 위대한 역사가의 참담한 심정을 대변한다.

김영수 씨는 <사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하상주단대공정>이라는 중국 국가 차원의 역사 연구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이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된 동북공정 혹은 서남공정을 통해 중국사의 시원을 밝히고, 주변 민족에 대한 중국 지배의 당위성을 위한 관제연구라는 지적이다. 19세기 말, 은허 유적지와 갑골문이 발굴되면서 전설로만 알려졌던 은나라가 실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힘입어 중국 역사가들은 태사공 선생의 <사기>에 등장하는 오제(황제, 전욱, 제곡, 요, 순)까지 중국사를 소급하려고 기획 중이다.

제왕의 기록에 해당하는 <본기> 12편 중에서 우선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그리고 진본기의 다섯 편을 <완역 사기 본기1>에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전히 전설이라고 생각하는 오제시대와 폭정의 대명사인 걸주가 패망하고 천하는 덕치를 하는 이에게 돌아간다는 태사공 선생의 사관을 드러낸다. 후대에도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는 요순시대의 부자상속이 아니라 능력 있는 자에게 천하의 지배권을 넘겨주는 선양이야말로 최고의 권력 세습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점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서구 기업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하은주 삼대의 기록을 통해 태사공 선생은 국가 흥망성쇠의 본질을 제시한다. 위정자가 덕을 잃은 통치를 한다면, 그에 따른 역성혁명은 불가피하다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봉건 전제군주 시대에 이런 놀라운 혜안을 보여준 태사공 선생의 예언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주나라 시대에 백성의 언로를 막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에 대해서도 소공의 말을 빌려 일침을 가한다.

12편의 본기 중에서 가장 논란이 이는 것이 진본기(秦本紀), 항우본기 그리고 여태후본기라고 한다. 우선 전국을 통일한 진나라 본기에 대해서 일개 제후국에 대해 굳이 본기로 다룰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왕이라고 볼 수 없는 항우와 여후에 대한 본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영수 씨는 태사공 선생을 위한 변론을 제시한다. 태사공 선생은 본기를 기록함에서, 명목상이 아닌 실제 천하를 경영하였는가에 주목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진나라 멸망 후, 실제로 천하의 주인이었던 항우나 고조 유방 사후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했던 여후야말로 본기에 들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본 것이다. 진본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진나라가 주나라 시대에 일개 제후국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통일제국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다른 전국칠웅과는 차별되는 일정한 역할을 가졌다고 태사공 선생은 인정하고 따로 본기로 기록했다.

견융의 침입으로 서주시대가 끝나고 비로소 제후의 지위를 부여받은 서방의 진나라는 다른 제후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변방 국가였다. 진효공 시대에 외부인사인 상앙의 변법을 바탕으로 국가개조에 나서면서 패주의 길을 걷는다. 유능한 군주는 출신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일깨워준다. 다만, 상앙의 전면적인 개혁은 기득권층과 왕실의 공격을 받아 상앙 자신이 거열형을 받아 죽게 되지만 그가 남긴 개혁의 유산을 바탕으로 진나라는 결국 전국을 통일하게 된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역사는 거의 매년 하서 지역을 놓고 이웃한 삼진(三晋) 중의 하나인 위나라와의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주나라 천자를 옹위한 춘추시대에는 전쟁하면서도 낭만이 있었다면, 전국시대의 전쟁은 약육강식의 전멸전의 성격에 가까웠다. 일찍이 군현제도를 도입해서 전시 동원체제를 마련한 진나라는 혁신적인 조세제도로 끝없는 전쟁을 위한 재원 마련에 성공했다. 상무정신으로 무장된 진나라 군대는 무안군 백기 같은 유능한 사령관의 지휘 아래, 이궐 전투와 장평 전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면서 천하통일로 나간다. 지금까지가 <완역 사기 본기1>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김영수 씨는 한글세대를 위해 한자로 된 본문 대신 풍부한 주석과 등장인물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지역을 직접 답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태사공 선생의 저술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하은주의 제왕 계보 역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군주의 교체에 따른 역사의 큰 줄거리를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만, 너무 한자를 사용하지 않다 보니 위(魏)나라와 위(衛)나라 그리고 진(晉)나라, 진(秦)나라 또 다른 진(陳)나라 같은 경우에 구분이 잘되지 않았다.

태사공 선생의 저술이 이천 년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현실세계에 적용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독서를 통해 체험할 수가 있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옛것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는 아주 간단한 것일진대 반복되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함은 후학의 온전한 책임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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