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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ㅣ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크리스 클리브의 이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봤다. 런던에서 태어나 카메룬과 버킹엄셔에서 자란 그는 2005년 데뷔작 <인센디어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리틀비>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자, 원래 제목은 <The Other Hand>였으나 올해 1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제목처럼 <리틀비>로 출간이 됐다.
소설 <리틀비>는 영국 런던 서리 지역의 킹스턴 어폰 템스와 나이지리아 남부의 이베노 해변 사이의 5,000마일을 넘나드는 공간적 체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템스 강 위의 킹스턴도 그렇지만, 나이지리아의 이베노 해변은 정말 천국보다 낯선 느낌이다.
제목에 나오는 리틀비는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두 명의 여주인공 한 명으로, 오일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고향 나이지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떠나왔지만, 밀항 도중 난민으로 경찰에게 잡혀서 지난 2년간 난민수용소에서 여왕의 언어를 배우며 지내온 경력의 소유자다. 한편, 또 다른 여주인공인 새라 서머스/오루크는 삼십 대 초반의 잡지사 편집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다만, 왼쪽 가운뎃손가락의 부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크리스 클리브는 리틀비와 새라, 이 두 주인공의 시선에서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저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전혀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목소리로 서사구조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새라와 새라의 남편인 유명 칼럼니스트는 2년 전 나이지리아 이베노 해변에서 경험한 끔찍한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 클리브는 그 사건을 매개로 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양손에 들고 저글링 묘기를 보여준다.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리틀비의 전화를 받은 앤드루가 끔찍하게 자신의 삶을 끝장냈단 말인가! 하긴 꼬리를 물고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점입가경이다.
사지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서, 영국으로 도망친 리틀비는 언제나 ‘그들’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언제 어디서고 자살할 방법을 찾는다. 서구사회에 풍요를 안겨준 검은 황금 석유는 리틀비와 그녀의 가족에게는 재앙과 동일어로 작용한다. 소설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영국은 리틀비로부터 미래를 앗아가고, 그 대가로 리틀비들에게 과거를 돌려주었노라고. 여전히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지난 세기의 탈식민주의 논의와 새로운 삶을 찾아 신세계를 찾은 이들에게 상륙조차 허용하지 않는 옛 종주국 영국의 모습은 모순 그 자체다.
한편,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자부해 왔지만, 막상 예의 위기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앤드루와 새라 부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었다. 식민주의와 석유자원을 둘러싼 광의의 투쟁은, 부부간의 심각한 소통 단절을 겪고 있던 오루크 가족의 파멸로 대치된다.
소설의 2/3 정도 분량까지는 놀라운 집중력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구성과, 리틀비와 새라가 교차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도대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설은 구멍 난 타이어마냥 그 동력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그건 아마도 리틀비의 희망과 분노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노라는 독자로서의 무기력감 때문이었을까.
<리틀비>는 전작 <인센디어리>에 이어 영화로 제작될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인의 생명에 책임을 지게 된 새라 역을 니콜 키드만이 맡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연출이 될지 무척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