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264
레오 페루츠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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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친구의 피드를 보고 레오 페루츠 작가의 <스웨덴 기사>를 읽게 됐다. 물론 그전에도 이 책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잘 모르는 작가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고나 할까. 이틀 전에 도서관에 가서 <스웨덴 기사><심판의 날의 거장>까지 빌려왔다. <스웨덴 기사>는 너무 재밌어서 순식간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마리아 크리스티네 폰 블로메라는 귀족 부인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러시아 황제를 상대로 한 스웨덴 기사로 국왕과 함께 전쟁에 나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아버지 크리스티안 폰 토르네펠트가 마리아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1701년 초의 중부 유럽 슐레지엔의 어딘가로 독자를 인도한다.

 

두 명의 청년이 주위의 시선을 피해 도주 중이었다. 한 명은 <닭 도둑>으로 교수형을 피해 도망 중이었고, 또 다른 한 명은 크리스티안 폰 토르네펠트로 탈영병 신세였다. 두 사람 모두 잡히면 사형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신세였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도둑은 그나마 절망적 상황에 나름 적응을 했지만, 전쟁 영웅을 꿈꾸는 부잣집 도련님은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이 잠시 몸을 피하고, 끼니를 해결한 방앗간에서 죽은 방앗간 지기가 등장한다. 레오 페루츠 특유의 환상문학의 성격을 지닌다고 해야 할까.

 

기진한 토르네펠트는 스웨덴군에 종군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도둑에게 알려 주면서 인근 장원의 주인은 사촌에게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부탁한다. 도둑은 토르네펠트가 건네준 반지와 정보들을 가지고, 예의 장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는 도중에 장원의 관리가 엉망이고 또 하인들과 고리대금업자가 장원의 부를 약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부모를 여의고 장원의 주인이 된 아리따운 십대소녀 마리아 아그네타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그녀가 토르네펠트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 이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 가게 될지 대충 예상이 되지 않는가. 그렇다 도둑은 토르네펠트를 이른바 <주교의 지옥>으로 인도해서 세상과 격리시키고 자신이 그의 자리를 차지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전에 자신을 평생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잔혹한 남작"을 만나 죽을 뻔하기도 하지만, 마리아 아그네타의 후의로 매질을 당하고 풀려난다.

 

도둑은 잔혹한 남작이 추적 중이던 도적단의 수괴 검은 이비츠를 대신해서 그의 부하들을 수하에 넣고, 잔혹한 남작에게 반격을 개시해서 그의 용기병대를 패퇴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개미잡이, 바일란트, 브라반터 그리고 빨강 머리 리스 등으로 성물도적단을 구성해서 인근 교회의 성물들을 털면서 악명을 떨치기 시작한다.

 

성물 도적질로 충분히 마리아 아그네타의 장원을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 도둑은 성물도적단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해산시킨 다음, 자신은 마리아의 장원으로 금의환향한다.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토르네펠트 행세를 하면서 마리아와 결혼에 골인한다. 이런 치밀한 준비를 하는데 2년이 소요됐다. 어엿한 귀족이라는 뒷배를 지닌 장원의 주인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도둑은 농사와 가축을 기르고 양모를 생산하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않고,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서는 안된다는 모토 아래 검소한 면모까지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사랑하는 딸 마리아 크리스티네까지 얻게 돼서 남부러울 게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된 도둑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이런 행복한 시간들은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두목이 나눠준 자금을 탕진한 개미잡이와 바일란트가 도둑의 장원을 찾아온다.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들을 도둑은 처음에는 제거하려고 하지만, 생각을 바꿔 그들을 자신의 일꾼으로 받아 들인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개미잡이와 바일란트를 도둑의 소재를 알려준 성공한 사업가 브라반터가 어느 날 찾아와서, 빨강 머리 리스가 도둑의 정체를 잔혹한 남작에게 일러 바치고 잔혹한 남작이 도둑 추적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하고 자신은 재산을 정리하고 떠난다며 도둑에게 알린다.

 

운명의 도박사 도둑은 어쩔 수 없이 잔혹한 남작의 추적을 피해 스웨덴 기사로 변신해서 개미잡이와 바일란트를 데리고 전쟁에 나선다. 그동안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버리고 떠나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정체가 들어나는 건 그것보다 더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도둑은 일당과 함께 빨강 머리 리스를 찾아가 인생을 건 마지막 도박에 나서게 된다.

 

도둑과 귀족의 뒤바뀐 운명에 대한 기본 줄거리는 어쩔 수 없이 마크 트웨인이 1881년에 발표한 <왕자와 거지>를 연상하게 만든다. 레오 페루츠는 그런 큰 줄거리 위에, 자신의 장원으로부터 500KM나 떨어진 폴타바 전선에서 매일 밤 자신을 찾아오는 토르네펠트를 추억하는 마리아 크리스티네가 경험한 미스터리를 엮는다. 그러니까 폴타바 전투에서 죽은 토르네펠트와 자신을 찾아온 토르네펠트는 다른 사람이란 말인가? 엔딩에서 다시 처음의 서사로 돌아가게 만드는 레오 페루츠의 작법은 과연 대단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맹렬하게 싸운 도둑/이름 없는 남자가 보여주는 삶의 그림자는 비장하게 다가온다. 밑바닥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름 없는 남자는 성물도적단의 리더로 활약하면서 평범한 가난한 이들을 약탈하기를 거부한다. 교회에 비치된 성물들을 약탈하는 그를 비난하고 저주하는 목사에게 그가 댓거리를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기장 심는 시기와 병든 벌들을 치유하는 법 그리고 좋은 양모를 생산하는 방법들을 잘 알고 있던 도둑은 그가 일으켜 세운 장원에서 사랑하는 마리아 아그네타, 크리스티네와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다. 하지만,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닌 토르네펠트의 것을 사악한 방법으로 빼앗은 원죄로부터 도둑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레오 페루츠는 모두가 명예를 지키는 방식으로 소설을 마무리한다.

 

곳곳에 작가가 포진시킨 죽은 방앗간 주인이라던가 주교의 지옥 같이 환상적인 요소들은 역사 미스터리 <스웨덴 기사>와 맞물리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스웨덴 기사>는 엔딩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훌륭한 수미쌍관으로 마무리한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읽기 시작한 <심판의 날의 거장>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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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2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단 이야기가 재밌을듯요. 찜해둡니다

레삭매냐 2025-09-13 09:24   좋아요 1 | URL
서사의 전개와 엔딩이
아주 끝내 줍니다.

<심판의 날의 거장>도
잇달아 읽고 있는데,
흥미진진하네요.

왠지 레오 페루츠의 팬
인 될 것 같습니다.
전작 읽기 도전합니다!

카스피 2025-09-12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웨덴 기사의 평이 대부분 왕자와 거지의 성인판 동화 버젼이란 이야기가 많네요.사실 이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배경은 18세기 북유럽의 복잡한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소설속에 등장하는 스웨덴 기사에 나오는 스웨덴 국왕은 칼 12세로 작센서제후및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인 아우그스트 2세와의 리보니아 지역을 두고 한 전쟁을 한 인물이지요.
이 전쟁은 스웨덴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전쟁만이 아니라 폴란드-리투아니아를 도운 노르웨이-덴마크 왕국의 프레데리크 4세와 루스 차르의 표토르 1세과도 연관된 전쟁으로 18세기 초반 북유럽의 대부분이 연결된 아주 복잡미묘한 전쟁으로 십수년간 싸운 것으로 압니다.
스웨덴 기사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소설속 배경이 되는 18세기 초반(1701년~30년)까지 북유럽 역사를 알아보시는 것도 재미있으실 거에요^^

레삭매냐 2025-09-13 09:26   좋아요 0 | URL
네 언급해 주신 대로입니다.

폴타바 전투 검색하다가 대북방전쟁
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예전 같으면
사전에 공부를 좀 하고 독서에 들어
갔을 텐데, 게으른 독자는 일단 건너
뛰고 본문에 충실했다는...

시간 내서 알려 주신 부분에 대해
알아 보고 싶네요.

로씨야 짜르 표트르 대제가 등장한
다니 더더욱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