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부르는 그림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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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뒤져 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이전까지) 미미 여사의 책을 읽은 게 무려 9년 전이었다. 그 시절에 미미 여사의 에도 마치 이야기에 빠져 중고책방을 돌며 책들을 컬렉션했다. 그리고 5권을 읽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을 읽는 속도가 사들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제 <청과 부동명왕>을 읽는 와중에 도서관에 들러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빌렸다. 책의 순서 그런 건 없다. 그냥 미미 여사의 책이니까 읽는 것이다. 저녁에도 다시 한 번 동네 도서관에 들러서 비교적 신간들을 쟁여 오려고 했는데 너무 늦게 가는 바람에 열람실이 닫혀 있더라. 내 이럴 줄 알았다.

 

오늘도 중고서점에 들러서 미미 여사의 책을 사려다가 아주 잘 참았다. 내가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그런데 <아기를 부르는 그림>을 다 읽는 바람에 독서의 맥이 끊겨 버렸다. 그전에 사둔 미미 여사의 책들은 상자에 쌓아 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책탑을 허물 자신은 없고. 천상 내일 도서관에 가서 빌려야겠다.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미시마야 흑백의 방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인스톨이다. 기타기타 시리즈라고 하는데, 문고상 기타이치와 가마지기 기타지가 주인공인 모양이다. 전작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올해 16살 난 기타이치가 독립해서 문고를 제작해서 파는 행상이 된 모양이다. 이래서 좀 더 체계적인 독서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말이지.

 

<아기를 부르는 그림>은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가볍게 몸풀기 스타일에 해당하는 표제작과 모모이 도시락 가게 일족의 변사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이세야의 주인장 겐에몬이라는 사람이 그려준 보선 그림이 불임 부부에게 특효라는 소문이 나고, 그 그림을 얻은 이들이 오래 기다리던 아이들을 가지게 되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경원시하던 겐에몬의 명성이 치솟기 시작한다.

 

문제는 어느 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이들이 변사를 당하면서 겐에몬에게 모아지던 칭송이 비난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다. 보선 그림에 분명히 있던 아기를 안은 변재천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에도 마치 시대의 괴담과 맥을 같이 하는 게 아닌가.

 

미미 여사는 잘 자라다가 변사한 자식들에 대한 상처를 안은 부모들을 마음은 물론이고, 이제 막 센키치 대장의 후계자로 한 걸음을 내딛은 기타이치의 성장까지 한꺼번에 아우르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낸다. 풋내기 오캇피키(탐정 역) 후보자인 기타이치는 문고상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발품을 팔아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 사건을 풀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어떤 사실들은 그대로 묻어 두는 게 때로는 필요하다는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첫 번째 이야기는 좀 싱거운 방식으로 매조지가 된다.

 

두 번째 이야기인 도시락가게 모모이 일가 변사 사건은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기타이치가 단골로 삼은 모모이 가게의 어린아이인 오하나까지 포함한 일가족이 독살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기타이치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청소년답게 비극의 현장을 직접 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센키치 대장의 유지를 떠받들어, 마쓰바 부인에게 조언을 들어가며 미래의 오캇피키가 되고자 하던 기타이치는 검시관 구리야마 슈고로의 도움으로 모모이 일가가 부자라는 독에 독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모모이네 안주인인 오쓰네에게 직접거리던 히사주라는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고문 끝에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했지만, 결국 고문 후유증에 죽고 만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히사주의 죽음으로 모모이 일가의 비극에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끝내려고 하지만 구리야마와 기타이치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고 기타이치는 결정적으로, 범인은 언제나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는 조금은 진부한 말대로 거동이 수상한 여인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녀는 등에 은행잎 모양의 별난 문신을 하고 있었다.

 

기타이치는 억울하게 죽어간 모모이 가족의 신원을 위해 느티나무 집의 에이카님에게 부탁해서 거수자 여성의 용모파기를 작성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대략 몽타주 작성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보소 반도 구자키 마을 출신의 한지로가 등장해서 거수자의 정체를 밝히는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그리고 기타이치는 거수자를 체포해서, 관할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가 거수자의 동귀어진식 공격으로 용궁으로 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한다. 이 정도 액션은 기대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에도 마치 시대를 지배하던 바쿠후 시스템의 관리들은 사회 불량배들이나 전과자들을 오캇피키로 고용해서 사회 안정을 도모했던 모양이다. 이이제이식 방법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태평성대라고 하지만, 이런 위태로운 방식으로 유지되는 사회질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고 일찍이 센키치 대장은 말했다(282). 그것은 마치 흑선의 내항으로 시작되는 서구열강의 서세동점의 시대에 대한 미미 여사식 경고장이 아니었을까. 쇼군을 정점으로 구축된 겉으로는 무척이나 견고해 보이던 지배계급 시스템이 외부의 강력한 충격으로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오래된 관습이니 그대로 두자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사건 해결에 있어서도 진실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방식의 해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모모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노름패 히사주를 고문해서 자백을 받고, 진범 추적과 체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미미 여사의 이미 균열하고 있던 태평성대의 이면을 자신만의 텍스트를 통해 그대로 드러냈다.

 

미스터리 시대물에 이런 시대정신까지 아우르는 미미 여사는 소설적 재미와 역사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사냥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래서 미미 여사의 에도 시대극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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