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쪼가리 자작 이탈로 칼비노 전집 2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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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달이 지나, 이번 주말 달궁 독서모임 출격할 때가 되었다.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이탈로 칼비노의 <반쪼가리 자작>을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백 쪽 남짓한 책이라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판단착오였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칼비노가 대단한 작가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투르크와의 전쟁이 벌어졌고, 테랄바 출신 화자의 외삼촌 메다르도 자작은 보헤미아로 황제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전쟁터로 출발한다. 오스만 투르크의 비엔나 침공은 1529년과 1683년 두 번 있었다. 사실 <반쪼가리 자작>에서 판타지 서사의 개시를 예고하는 투르크의 침공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어쨌든 전장에서 메다르도 자작은 투르크군의 포탄에 맞아 몸의 절반이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억세게 운이 좋게 응급조치를 받은 메다르도 자작은 반쪽의 몸으로 생환하는데 성공한다.

 

자 이제부터 소설은 판타지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최전선에서 들것에 실려 테랄바로 돌아온 반쪼가리자작은 순식간에 악마의 화신으로 변신한다. 기존의 선한 부분은 대포에 맞아 날아가 버린 모양이다. 테랄바의 영주로 공정한 재판을 행해야 하는 자작은 그야말로 독재정의 진수를 보여준다. 재판에 회부된 약탈자들도, 그리고 그들을 고소한 피해자들도 모두 사형에 처해 버렸다. 농민들이 세금을 제 때에 내지 않아도 자작은 무조건 처형으로 응수했다. 어쩌면 칼비노는 이 지점에서 법치만능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었나.

 

참 그리고 보니 그전에 아버지 아이올포 자작도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 불구 아들의 횡포에 놀라 비명횡사해 버렸다. 그리고 자작은 자신을 어머니처럼 키워준 유모 세바스티아나도 문둥병으로 몰아 추방해 버렸다. 반쪼가리 자작의 폭정은 계속된다.

 

이탈로 칼비노 작가는 1차 세계대전에서 비록 전승국이 되었지만,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스트가 집권한 이탈리아의 암울한 현실을 반쪼가리 자작의 폭정이라는 설정에 녹여낸다. 그렇다면, 소설 도중에 등장하는 위그노들은 누구인가. 아마 기근과 페스트에 시달린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들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작의 조카인 화자는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기록한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 파시즘에 맞서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던 공산당이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대의명분과 민중의 지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었다. 칼비노 역시 공산당원이었다. 하지만, 서방세계에서는 이탈리아 공산당이 선거로 집권하는 것을 좌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미국을 필두로 하는 서방에서는 기존의 파시스트들이 극적으로 변신한 우파의 집권을 지원했다. 전후 일본과 서독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몸의 오른쪽 부분만 남은 반쪼가리 자작의 만행이 도를 더해 가고 있을 때, 투르크군의 대포에 맞아 산산 조각난 것으로 알고 있던 자작의 나머지 반쪽이 등장한다. 그리고 보니 그전에 양치기 소녀 파멜라에게 영혼을 빼앗긴 사악한 반쪼가리 자작이 그녀를 성으로 잡아가겠다고 협박을 했던가. 자작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숲속의 동굴에 숨어 사는 길을 택한 파멜라. 그리고 그런 파멜라에게 세상의 소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맡은 게 바로 화자라고 했던가. 그 장면에서는 무솔리니 정권에 저항하면서 무장투쟁에 나선 빨치산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조금 진부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나머지 반쪼가리 자작의 성격은 정확하게 사악한 반쪼가리 자작의 그것과 정반대였다. 이런 설정은 분열하고 갈등하던 이 둘이 만나 결국 결합하게 된다는 건, 루키노 비스콘티 같은 네오리얼리스트들에게는 그야말로 판타지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던 서사가 비극이 아닌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게 아쉬웠다. 어쩌면 이 소설이 발표되던 1952년의 시대적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모든 갈등과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된 방식이 전통의 결투라는 점도 상징적이다. 근세적 발상이라고나 할까. 결투에 나선 둘 중의 하나는 끝장이 나야 마침표를 찍는 방식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아예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소를 제거시키는 방법이 옳은 것일까. 결투 무대에서 온전하지 않은 육신으로 상대방에게 파멸적 일격을 가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상이한 자아들의 자기분열적 모순을 이탈로 칼비노는 극대화시킨다. 만약 누군가 이 장면을 스크린에 담는다면,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를 BGM으로 깔면 좋지 않나 싶다. 아주 느린 연출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정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 또한 나란 인간의 한계인 것을.

 

[뱀다리] 또다른 문제적 인간들인 기술자 피에트로키오도와 의사 트렐로니, 한센병 환자 갈라테오에 대해서는 토요일날 좀 들어 봐야지. 다시 들어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는 웅장하고 짜릿하다.

 

[인용 104페이지]

 

그렇게 테랄바에서 나날들이 흘러갔다. 그리고 우리의 감정은 색깔을 잃어버렸고 무감각해져 버렸다.

 

비인간적 사악함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인 덕성 사이에서 우리 자신을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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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1-09 2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을 통해서 왠지 레삭매냐님께서는 언변이 출중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서모임에서는 읽고 생각한 것을 잘 정리해 말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이탈로 칼비노 작가의 작품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는데 관심 가져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11-10 00:41   좋아요 3 | URL
출중한 언변까지는 아무래도 무리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가 봅니다 ^^

그래서 보통 독서모임에서 할 말들을
적어 가곤 한답니다. 물론 대개 처음
에 의지와는 다르게 돌아가지만요.

저는 15년 전에 <왜 고전을 읽는가>
라는 살벌한 책으로 칼비노 작가를
처음 만나고 나서 두 번째인가 싶습니다.

서니데이 2023-11-09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 소설가의 책들은 가끔 낯선 판타지 느낌이 들어요.
아마도 우리 나라와는 다른 문화라서 그런 거겠지 싶기도 합니다.
이 작가는 유명한데도 읽은 책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다음 기회엔 조금 더 찾아봐야겠어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3-11-10 00:42   좋아요 1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그 동네 사람들이
판타지물을 좋아하는가 봅니다.

곰돌이들이 시칠리에서 사람과 싸
우기도 하구요...

감사합니다 꾸벅 -

그레이스 2023-11-16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비노는 세 권 정도 읽었는데 요 책은 아직입니다.
내용이 흥미롭네요.
꼭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11-16 18:14   좋아요 1 | URL
저는 이번이 칼비노의 두번 째
책이었답니다.

뭔 도시인가도 하나 개지구 있
는데, 상당히 철학적인 책이라
는 말을 이번 모임에서 얼핏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로 처음
만났는데, 너무 어려워서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