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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이동도서관
오드리 니페네거 글.그림, 권예리 옮김 / 이숲 / 2016년 8월
평점 :
주말 휴일에 만난 그래픽노블 2탄이다. 아까 저녁에 소나기가 내려 붓듯이 오더니 더위가 한풀 꺾인 그런 느낌이다. 그래도 말복은 지나야 좀 나아지려나.
<시간 여행자의 아내>를 쓴 작가라고 하는데 사실 오드리 니페네거의 이름은 처음 들어본다. <시간 여행자>는 영화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지.
<심야 이동도서관> 역시 간단한 구조다. 남친과 싸우고 밤거리를 거닐던 “나”는 우연히 허름한 밴 스타일의 이동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는 독서중독자의 일원이지 싶다. 그리고 그 이동도서관에 실린 책들은 왠지 낯이 익은 책들이다. 알고 보니, 예의 이동도서관은 내가 그동안 살면서 읽어온 책들이다. 이런 상상의 날개가 깜찍하지 않은가.
사실 독서중독자들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정신을 빼는 낮시간보다 밤시간이 훨씬 책 읽기에 좋지 않은가. 지금 내 곁에서 거의 더위를 쫓기 위해 틀어 놓은 백색소음의 주인공 선풍기와 집밖에서 끝없이 울어대는 귀뚜라미 소리 정도는 애교다. 하긴 무더위에 책 읽는 것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돈도 한푼 들지 않고 시원한 바람을 실컷 쐴 수 있는 도서관에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들어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픽노블의 화자는 심야 이동도서관이 지난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하지만 대출은 안된다고 담당 사서인 오픈쇼는 완고하게 화자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리고 또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 지도 장담할 수가 없고.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남친이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보지만, 현실세계에서 T를 담당하는 남친이에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상상력이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결국 둘은 헤어지고, 이동도서관에 오르기 위해 화자는 9년을 기다려야 했다.
아마 그래픽노블의 배경이 시카고 부근인지 컵스 팬들이 우글거리는 리글리필드 근처에서 다시 오픈쇼 아재가 운영하는 이동도서관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서로 써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하지만, 운영 규칙상 불가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결국 화자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사서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대학에서 전문적인 사서 교육을 받는다. 아, 이거야말로 환상이 실제가 되는 추체험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보니 <독서중독자> 2탄에서도 비슷한 설정이 나오지 않던가. 아직 다 읽어본 게 아니라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과연 우리 관내 도서관들이 이 책들을 구입해서 비치할까도 사실 좀 궁금하다. 동시에 기대도 하고 있다.
화자는 확실히 독서중독자가 틀림없다. 사서 규욕을 마친 화자는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주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승진해서 도서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가. 그 다음에는 좀 비극적인 엔딩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서사는 흘러간다.
매력적인 단편을 그래픽노블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나라면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독서중독자들을 위한 시리즈를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심야식당의 아재처럼, 늦은 밤에 이동도서관을 끌고 이곳저곳을 돌면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 주고 또 처방도 해주는 그런 설정 말이다. 이것 또한 독서중독자들에게나 먹힐 법한 그런 이야기이려나.
그래픽노블의 화자처럼, 나도 내가 그동안 연을 맺은 책들의 집합과 언젠가 대면하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싶다. 참 할 말이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서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나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어줄 청자가 필요한 거겠지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