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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벌써 슬프다. 제목인 <맡겨진 소녀>, 원제인 <Foster>를 인식하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나도 아주 어릴 적에 맞벌이 하는 부모님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가 없어서, 어린 나를 할머니 댁에 맡기신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는 내가 너무 어려서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들이 느끼시는 회한의 감정들이 느껴졌다.
소설 <맡겨진 소녀>의 시공간적 배경을 살펴본다. 때는 1981년 여름, 아일랜드 공화국 출신의 양심수들이 단식투쟁을 하던 중에 바비 샌즈를 필두로 차례로 아사하고 있었다. 5월 5일에 시작된 죽음은 8월까지 이어졌다. 그들의 죽음에 이어 폭동까지 발생했다. 사회적으로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주인공 소녀는 아버지 댄의 손에 이끌려 친척 킨셀라 가정에 보내진다.
화자의 집에는 이미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소녀의 엄마 메리를 다섯 번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언니 두 명과 남동생 그리고 화자 소녀 가운데 다른 집으로 보내질 아이는 화자 소녀로 결정됐다.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아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손이 덜 가기 때문에 낙점된 게 아닌가하고 추정해 본다.
존과 에드나 킨셀라에게 자신의 딸을 건네는 소녀의 아버지 댄은 만사에 서투르다. 루바브 하나 제대로 뽑지 못하는 위인이라니. 소녀는 낯선 환경 속에서 다시 자신이 아는 세상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소녀는 여전히 아이일 따름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의 곁을 떠나 낯선 환경 속에 자신의 존재를 욱여넣어야 하는 소녀의 신세가 너무 처량하기만 하다.
적어도 킨셀라 부부의 가정은 물질적으로는 소녀의 부모보다 나은 것 같다. 에드나 아주머니의 보살핌과 무뚝뚝하지만 나름 정이 가는 존 아저씨의 심부름으로 달리기를 하며 소녀의 여름은 조금씩 찬란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소녀는 아이에서 그 다음 단계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그렇지만 진실은 불편하고 잔혹한 법이 아니던가. 타인의 가정에서 더부살이하는 소녀는 바로 그 지점에서 도약을 시도한다.
킨셀라 부부는 자신들이라며 아이를 다른 집에 보내지 않을 거라는 말로 소녀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 때는 참 기분이 그랬지만, 나중에 부부의 슬픈 사연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 그래서 그런 말을 했구나 하고 말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댄과 메리와 달리 존과 에드나 킨셀라는 소녀에게 옷과 책도 사주고, 극진하게 보살핀다. 존 아저씨에게 글 배우는 장면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글 읽기는 자전거타기 같다고 했던가. 갈 수 없는 곳까지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표현은 아름다웠다. 그렇지 우리는 이렇게 글을 통해 가볼 수 없는 곳에 도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선물을 받는다. 소설의 주인공 소녀처럼 말이다.
에드나 아주머니를 따라 고리 시내에 가서 새옷을 산 날, 이웃 초상집에 갔다가 소녀는 오지랖이 넓은 밀드러드 아주머니의 무차별 질문공세를 받는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상한 일들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막냇동생의 출생 소식과 함께 소녀의 복귀를 요청하는 엄마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별의 순간이다.
이웃 아저씨의 초상 그리고 10명의 아일랜드 공화군 단식 투쟁가들의 잇단 죽음들과 대비되는 동생의 출생을 통해 우리 인간사의 순환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한쪽에서는 신념을 위해 싸우는 투사들의 거대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고, 또다른 편에서는 자신의 아이조차 부양할 수 없는 부모가 친척에게 위탁한 주인공 소녀의 내적 갈등이 부글거리고 있었다. 클레어 키건 작가는 덤덤한 태도로 ‘맡겨진 소녀’의 서사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생각해볼만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게 아니었나 싶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소녀가 우물에 빠지는 사건도 일어나지만, 소녀는 집에 돌아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자신의 딸에게 ‘탕아의 귀환’이라고 비아냥거리고, 킨셀라 부부의 슬픈 과거사를 들추는 발언을 하는 장면에서는 무능력한 아버지 댄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가장으로서 무능력한 댄은 자신의 불안을 자식이나 아니면 킨셀라 부부에게 투사하는 심리적 불안정을 몸으로 보여준다. 도대체 누가 탕아란 말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낀 메리는 무슨 일이 있었냐며 취조하듯 소녀를 다그친다. 그런 엄마의 공세에 소녀는 입을 다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충분히 배웠다고 독백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가는 법이지.
짧지만 찬란했던 여름에 대한 맡겨진 소녀가 남긴 추억의 기록이 그렇게 명징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