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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윌리엄 ㅣ 가일스 밀턴 시리즈 3
가일스 밀턴 지음, 조성숙 옮김 / 생각의나무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2주 전에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을 읽고 나서 문득 사무라이물이 읽고 싶어졌다. 무언가 읽고 싶을 적에는 읽어야지. 가장 가까운 램프의 요정을 문질렀더니, 가일스 밀턴이라는 작가가 쓴 <사무라이 윌리엄>이란 책이 나왔다.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달려가서 사들였다. 그리고 딱 이틀 만에 다 읽었다. 나에게는 그만큼 재밌었다는 말이다.
몇 년 전에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나서 잊고 있던 인물이 바로 미우라 안진이었는데, 알고 보니 <사무라이 윌리엄>이 바로 그 “미우라 안진”이었다. 영국 출신으로 너구리 영감의 자문이자 하타모토의 지위를 얻고 사무라이가 된 윌리엄 애덤스가 바로 주인공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이 인물을 알고 있었단 말이지.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시리즈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항료전쟁>을 읽고 있는데,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래 불붙은 향료를 찾기 위한 무역전쟁에서 후발 주자는 영국이었다. 이미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신세계를 양분했고 동방으로 가는 좀 더 빠른 항로를 찾기 위해 무려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발상을 실천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모두 얼어 죽는 일도 발생하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처럼 수에즈 운하나 파나마 운하가 없던 시절, 동방으로 가는 길은 너무 험난했던 모양이다. 보급 문제부터 시작해서, 열대 지방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질병과 뱃사람들에게 치명적인 괴혈병에 대한 준비 없이 무조건 돈을 벌겠다는 일념 아래 동방항해에 나선 모험가들의 배짱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긴 지금도 그런 배짱이 없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수익을 내는 사업들이 시작될 수조차 없었겠지. 그런 점에서 현대 사업가들을 대항해시대 선배들의 후배인 셈인가.
어쨌든 윌리엄 애덤스 일행은 포르투갈이 개척한 동방항로 대신, 대서양과 태평양을 지나는 무모한 도전에 나섰고 결국 지팡구의 나라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 때가 1600년으로 일본에서는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천하쟁패가 벌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윌리엄 애덤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눈에 들어 그의 휘하에서 항해사로서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장거리 항해가 가능한 배도 만들었다고 했던가. 역시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최고 권력자에게 무역 특허를 받는 게 중요했다.
이미 일본에는 무역의 귀신들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투갈, 스페인 상인들이 들어와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회 수사들이 일본 서민들에게 가톨릭을 전파했다. 센고쿠 시대,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파한 철포는 일본의 전쟁양상을 바꾸어 놓았다. 서양에서 도래한 철포로 무장한 아시가루가 기마전을 구사하는 사무라이를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철포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다면, 가톨릭이라는 새로운 종교는 어쩌면 일본의 사회 시스템을 흔들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윌리엄 애덤스는 일본에 완전히 적응했지만, 영국에 두고온 처자 때문에 귀향을 꿈꾼다. 쇼군의 자리에 오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에게 이국의 다양한 정보를 전해주는 가신을 그냥 보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계속된 윌리엄의 부탁에 귀국을 허용한다. 문제는 막상 일본을 떠나게 되었을 때, 애덤스가 실제로 영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자산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쇼군 도쿠가와에게 하사받은 영지와 그 영지에서 나는 자산을 현금화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그는 일본에 남는 게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귀국을 포기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는 남만인(포르투갈/스페인, 구교도)과 홍모인(영국/네덜란드, 신교도)로 나뉘어 갈등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한다. 윌리엄 애덤스에 이어 일본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히라도에 상관을 차리고 황금의 나라에서 무언가 돈이 될만한 사업을 구상하지만, 일본 바쿠후의 견제로 수도격인 에도에 상관 설치를 허락받지 못하고 히라도에서 제한적인 무역을 허락받을 뿐이었다. 남만인들이 남방의 향료제도에서 마주한 야만인들과 달리 일본 국가는 고도로 발달된 관료제와 예절, 문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동전 따위에 넋을 잃은 몰루카 제도의 원주민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남만인들이나 홍모인들이 제공하는 상품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양국 간의 교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구교도 남만인들과 신교도 홍모인들의 종교적 갈등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걸림돌이었다. 국가별 경쟁도 심했다. <향료전쟁>에서 나오는 것처럼, 영국의 무역선은 교역선들은 무역선이라기 보다 약탈을 일삼는 사략선에 가까웠다. 같은 신교도들인 영국과 네덜란드는 종교적으로 유사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무역에서는 또 경쟁자들이었다. 영국에 비해 동방에서 우세였던 네덜란드 사람들은 히라도의 영국 상관을 습격하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도쿠가와 바쿠후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중심으로 한 서군 잔당세력들을 일소하기로 한 오사카 성 전투에서, 광신적인 남만인들이 쇼군을 돌리면서 미카와의 너구리 영감은 기독교에 유화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탄압에 나섰다. 예수회 사제들은 신교도인 윌리엄 애덤스의 농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무라이 윌리엄’은 쇼군의 기독교 탄압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수년 내에 예수회 사제들이 일본에서 내쫓기게 될 거라는 점을 예언했다.
오다 노부나가를 필두로 한 정치 세력들은 기독교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포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하지만, 오사카 성 전투에서 보듯이 쇼군에게 저항하고 기존의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적에는 가차 없이 탄압했다. 2대 쇼군 히데타다와 3대 쇼군 이에미스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가톨릭 신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신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를 받아들이면서, 막대한 희생에도 오히려 교세가 확산되자 무지막지한 고문과 처형 대신 후미에로 대변되는 배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윌리엄 애덤스라는 영국 출신 사무라이의 개인적인 삶보다 그가 살던 시기에 일본 역사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 두 차례에 걸친 오사카 성 전투 그리고 기독교 탄압이라는 일대 사건들에 관심이 더 갔다. 저자는 애덤스 이후 일본 히라도에 도착해서,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으로 일하게 되는 일단의 영국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다루었다. 현지 여성들과 살림을 차리고, 기존의 오리엔탈리즘에 젖어 쾌락주의적 방탕한 삶을 살았던 육성 기록도 빠뜨리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서구인들의 사고와 태도는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으로 가일스 밀턴의 작가의 저술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쉽게도 이 저자의 책 5권이 모두 절판되었다. 왠지 예전에 만난 타리크 알리의 책과 같은 운명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이제는 중고로 밖에 구할 수 없는 책들을 하나씩 구해서 독파해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향료전쟁>을 열심히 읽고 있다. 밀턴 작가의 책들을 잇달아 읽으면서 무언가 서로 연결된 관련성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좀 더 읽으면 명확해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본다. 매력적인 서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