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이번주에 존재를 알게 된 책이다.
그리고 절판돼서 구할 수가 없어서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책이 어렵다.
다섯날 밤의 기록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첫날은 건너뛰고 두 번째 밤부터 읽는다.
루터가 촉발한 16세기 ‘독일혁명’ 혹은 ‘교황혁명’ 아니 우리에게는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일대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그나마 이건 읽기에 괜찮다. 어차피 나중에 앞으로 돌아가 읽긴 하겠지. 무슨 말인지 몰라도.
책읽기와 글쓰기, 이건 고난의 시작이다.
모든 사고의 준거를 어디에서 찾는가. 지금은 다양한 미디어가 생겨서 준거의 바탕도 그만큼 다양해졌지만, 16세기에는 무조건 책이었다. 당시 문맹률은 95%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루터가 저술한 <95개조 반박문>을 시작으로 해서 독일어 성경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16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아마도 루터의 독일어성경이 아니었을까.
보름스 회의에서 어쩌면 이단으로 몰려 화형대에 오를 지도 모르는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던 루터야말로 당대 최고의 문학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활자인쇄술의 발명이야말로 신의 축복이라는 말로 상찬한다. 그러니 그 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천사 같은 이들이라고... 자본주의 속세에 찌든 지금에도 해당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문득 지난 주말, 달궁 모임에서 내가 달궁 동지들에게 던지던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왜 책을 읽습니까. 이런 건 녹취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 저자가 말하는 책의 속성대로 우리는 읽고 망각하고의 반복 가운데, 계속해서 그렇게 꾸역꾸역 읽는다. <흑뢰성> 처음에 등장하는 문장을 패러디하면, <읽으면 극락, 읽지 않으면 지옥> 정도라고나 할까.
날이 너무 덥다. 참 이 책은 절판돼서 어제 중고서점에 가서 사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양장본인데, 내가 산 책은 페이퍼백이다. 그게 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