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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평안은 없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이소영 옮김, 브루스 오노브락페야 그림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이달 달궁 독서모임책으로 치누아 아체베 작가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가 선정됐다. 기록을 찾아 보니 그 책은 4년 전에 읽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의 속편격인 <더 이상 평안은 없다>부터 읽기로 했다. 마침 회사 근처 중고서점에 있어서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도서관에서 빌려다 다시 읽고 나서야 속편을 다 읽었다. 그건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이지리아 출신 치누아 아체베 작가가 다루는 주제는 탈식민주의, 편견 그리고 인종차별주의 정도가 될 것 같다. 지금은 <신의 화살>까지 내쳐 도전 중인데,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 제국주의가 아프리카 대륙을 가차 없이 침탈하던 시기에 대한 서사가 인상적이다. 종교와 교육을 앞세운 제국주의 세력들은 기존의 전통을 고수하던 이들을 미개인으로 몰아붙이며, 자신들이 세운 가치를 현지인들에게 이식하고 강요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갈등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전편에서 우무오피아 마을의 대표 씨름꾼으로 자수성가한 오콩코가 어떻게 몰락해 가는가를 그렸다면, <더 이상 평안은 없다>에서는 그의 손자인 오비 오콩코를 주인공으로 삼아 3대에 걸친 오콩코 가문 몰락의 연대기를 완성한다. 용맹한 전사이자 농부였던 할아버지 오콩코가 오로지 자신의 두 팔로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면, 손자는 다른 방식으로 마을과 가문의 부흥을 꾀한다. 그것은 바로 영국식 교육이었다.
어려서부터 수재였던 오비 오콩코를 우무오피아 마을에서는 거금 800파운드를 들여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이들의 바람대로 영국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교육직 고위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지원은 앞길이 창창한 청년에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족쇄로 작동하게 되는 역설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식민 모국 영국에서 근대화된 서구식 교육과 합리주의를 경험한 오비 오콩코는 부정부패가 난무하는 조국의 암담한 현실에 좌절한다. 정말 식민주의자들의 말 그대로, 이보족 더 나아가 조국 나이지리아에는 답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뇌물이라면 질색하던 청년이 결국 부패의 연쇄고리에 가담할 수 밖에 없는 참담한 현실의 구렁텅이로 말려 들어가는 과정을 치누아 아체베 작가는 정말 냉정한 시선으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우무오피아 부족 사람들의 열렬한 응원과 후원은 오비 오콩코에게 든든한 지원인 동시에 부담이었다. 그들이 애써 모아준 돈 800파운드는 공짜가 아닌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돈이었다.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을 돕는 것 역시 유망한 엘리트 청년의 몫이었다. 동생 존의 학비도 마련해야 했다. 수도 라고스에서 화려한 생활을 위해 장만한 자가용 유지비도 무시할 수 없는 지출의 수렁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그런 오비 오콩코를 가장 괴롭히는 건, 그 중에서 그가 사랑하는 여인 클라라와의 관계였다. 그녀 역시 영국에서 수학하고 귀국해서 수간호사로 일하는 엘리트 계급의 일원이었지만, 조국 나이지리아에서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오수(부랑아 천민 계급)였다. 전도유망한 청년 오비 오콩코가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장벽이 너무나 많았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도 예전에 유행한 신파극과도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우선 라고스에 있는 우무오피아 진보연맹에서 이 사실을 알고, 오비가 갚아야 할 유학자금의 지불유예를 허용하지 않는다. 계속 커지는 지출 규모를 줄이기 위해 청년 오비는 순간 욱하는 성질을 죽이고 어쨌든 자신을 후원해줄 우무오피아 진보연맹과의 관계 유지에 보다 힘을 썼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고, 조금씩 파멸행 고속열차를 선택했다. 여자친구 클라라는 애인의 안쓰러운 상황을 듣고 50파운드를 빌려 주지만, 그 돈조차 자동차 털이범들에게 털리고 만다.
오비는 가족들을 설득하는 일에도 실패한다. 이른바 ‘복음의 빛’을 수용한 아버지조차 오수 출신 여성과의 결혼을 반대한다. 내가 봤을 때, 무신론자에 가까운 오비는 신의 평등한 사랑까지 들먹이면서 아버지의 주장을 설파했지만 실패했다. 그나마 온화한 어머니는 설득할 수 있을 거라는 오비의 판단 역시 오산이었다. 어머니는 한발 더 나아가, 클라라와의 결혼을 강행하면 죽어 버리겠다는 폭탄선언을 날린다. 그러니까 오비에게는 선택지가 하나도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클라라가 불법 임신중절까지 하게 되면서 오비 오콩코는 이도저도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코너로 몰리게 된다.
자, 그렇다면 독자는 치누아 아체베 작가가 나이지리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인 1950년대 후반 라고스와 이보족 마을 우무오피아를 배경으로 서술한 <더 이상 평안은 없다>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저자가 오비 오콩코라는 지식인 엘리트를 통해, 앞으로 나이지리아 국가가 겪게 될 다양한 혼란상을 예고했다고 생각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아프리카 대륙의 독립은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서구 열강 제국주의 지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철지난 이데올로기였다.
그렇다면, 나이지리아 같은 신생국들은 자력으로 독립해서 국가를 경영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특히나 나이지리아 같은 다민족 국가에서 국가통합은 가장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비아프라 내전 같은 참혹한 내부 갈등과 장기간의 군사독재로 석유와 인구 자원이 풍부함에도 지금까지 여전한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 아닌가.
오비 오콩코를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갈등의 분출과 스펙트럼은 과거와의 단절이 얼마나 쉽지 않은 미션이라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과거의 전통과 유산을 잘 유지하면서, 백인 지배자들이 구축한 새로운 질서를 수용한다는 이상은 훌륭했지만 현실세계에서 사람들은 갈등을 푸는 방식으로 대화보다는 물리적 방식을 선호했다.
전편에서 할아버지 오콩코의 비참한 죽음으로 서구 식민주의자들에 대한 전통주의자들의 패배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면, 속편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인 교육을 받고 귀국한 엘리트 청년 관료가 자신이 비판하던 구태 관료화되어 가는 과정을 병렬배치하면서 시대 변화해도 또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할 수 없다는 숙명론적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오비 오콩코의 타락은 윌리엄 그린 같은 구 식민주의자들에게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피지배 계급에 대한 편견과 비판의 당위성을 옹호해주는 핵심 인자로 작동한다. 그가 백인들과 기득권층이 교묘하게 설치한 덫에 걸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배와 조종에 능한 그들이 상대방의 어디가 가장 취약한지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치누아 아체베 작가의 작품들을 잇달아 읽으면서 서구인들이 설계한 탈식민주의의 한계, 이제는 시간이 너무 지나 공고화된 구제불능의 편견 그리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의 연대기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제 일주일 남은 달궁 모임에서 우리는 또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벌써 해바라기가 피었다.
원래 6월에 해바라기가 피었던가?
우리집 해바라기는 비실비실한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