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디노 부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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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고대해 마지 않던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나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책을 주문해서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책을 읽었다. 후속작인 <60개의 이야기>(진짜 60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아마 그 무렵에 디노 부차티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취합하다가 <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이하 습격’)이란 동화를 빙자한 소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습격>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아쉽게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무슨 말인지 한 개두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밑에 드디어 <습격>이 출간되었다.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바로 주문장을 날렸고, 지난주에 받아서 주말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에 나온 <습격>은 가히 클래식이라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격>의 출발은 디노 부차티 아재가 조카들에게 그려주던 그림에서 출발했다고 했던가. 스타일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 스타일이지만, 소설이 품고 있는 서사는 아이들의 사고 영역을 단박에 뛰어넘는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즈음에, 시칠리아 산속에 곰들이 평화롭게 사는 왕국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평화에 방점을 찍는다, 평화. 그러던 어느 날, 베어 킹덤의 왕자 토니오가 사냥꾼들에게 납치되어 갔다.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토니오의 아빠 레온치오 왕은 왜 동료 곰들에게 왜 솔직하게 아들의 납치 사실을 말하지 않고 토니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말했을까. 그 다음 위기는 혹독한 겨울과 굶주림이었다. 곰들은 결의를 다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죽을 바에야 평야에 사는 인간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자고. 갈등의 시작이다.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린 곰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당시 시칠리아의 인간 세상은 독재자 대공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산골에 사는 곰들보다 훨씬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궁정의 천문학자 데암브로시스 교수는 산속에서 적들이 쳐들어 올 거라고 예언한다. 대공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산에 군대를 파견해서 살아 있는 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깊은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곰들과 산의 노인 말고는 모두가 죽어 버렸다. 살아 남은 곰들과 인간의 대결 구도가 완벽하게 구성됐다.

 

곰들이 가만 있었을까? 아니다. 베어 킹덤의 군대도 인간군과 싸우기 위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뱀 같이 기다란 행렬을 만들면서. 초반에는 곰군단은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인간들에게 밀리지만, 용감한 곰 바보네의 분전에 힘입어 인간군을 전멸시킨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화나 판타지에서도 영웅의 탄생은 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독재자 대공은 곰군단의 진격을 막기 위해 멧돼지 부대와 유령들이 사는 성 그리고 피에 굶주린 고양이 맘모네를 동원해서 공격에 나선다. 적대적인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가 있다.

 

어쨌든 그때마다 곰돌이들은 영웅적인 분전과 운빨로 위기를 모면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곰군단은 마침내 인간들의 수도 앞에 놓인 요새 코르모라노 성에 도달한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을 뚫기에는 곰군단에게도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성을 공격할 때마다,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대로 공격을 마치고 다시 추운 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결국 곰대포라는 신무기(?)를 동원해서 프란지파네가 조직한 50마리의 곰특공대가 마지막 공격에 성공하면서 드디어 곰들의 세상이 열렸다. 혁명적 순간이 달성되지만, 그때부터 타락 역시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때 마침 대공 일당은 엑셀시오르 극장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무대 위에서 줄타기 공연을 하던 곡예사는 바로 레온치오 왕의 잃어버린 아들 토니오였다. 세상에나! 그리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악랄한 대공은 레온치오에게 총을 겨누는 대신 토니오를 저격한다. , 과연 우리의 토니오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엉터리 파시스트 지도자 일 두체 무솔리니 때문에 이탈리아는 추축국의 일원으로 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으로 뛰어 들었다.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와인을 사랑하던 이탈리아 병사들은 히틀러의 세계 정복이라는 터무니없는 욕망에 동원되어 스탈린그라드의 치열한 전투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어갔다. 북아프리카를 제패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결국 파시스트 정부는 붕괴되었다. 파시즘 통치 아래 숨죽이고 있던 이탈리아 민중들은 빨치산을 조직해서 무솔리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마치 레온치오 왕과 곰군단처럼 말이다.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파시스트 무리들과 나치 독일군은 자연스레 독재자 대공으로 등치된다.

 

인간 세계를 정복한 다음, 곰들은 인간처럼 타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레온치오 왕은 선량한 군주였지만, 다른 곰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종장 살니트로 같이 타락한 곰들이 주도해서 왕의 동상을 만들기도 했다.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느낀 충성스러운 젤소미노 같은 곰의 조언에도 레온치오 왕은 도무지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불법도박장에서 아들 토니오를 발견한 왕은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바다뱀이 출몰해서 왕국을 위협했다. 비록 측근들의 부패를 막진 못했지만, 곰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레온치오 왕은 바다뱀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현장에 출동한다. 국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나서는 이게 바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참 씁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레온치오는 유언으로 모든 곰들은 산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서로 다른 세계의 통합은 그만큼 어렵다는 깨달음의 소산이었을까. 산에서 살던 시절에는 비록 춥고 배고팠지만,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손실 끝에 인간 세상에 정착했지만 그 자리는 곰들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레온치오의 유언에 따라, 곰들은 위대한 왕의 시신을 메고 산으로 돌아간다.

 

작년에 만난 <타타르인의 사막>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 역시 고전의 반열에 올릴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반파시스트 투쟁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디노 부차티는 인간과 싸우는 곰돌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에 가까운 동화를 창조해냈다. 개인적으로 액션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습격>에는 정말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을 습격하고 있다. 곰돌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대항해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우리는 거듭되는 자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가 의도한 바보네와 프란지파네 그리고 레온치오 왕으로 대변되는 영웅 서사 신화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도도한 민중이 주도하는 흐름이 아닌 소수 선각자들의 행동이라는 걸까. 인간 세상을 정복한 곰들이 점차 타락해 가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발로라는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지 않은가. 세상이 다 그러하니, 나 하나쯤은 괜찮지 않겠냐는 식의 비겁한 변명에 대해서 일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하나부터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고.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해서 읽는다. 디노 부차티의 <습격>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될 것 같다. , <습격>의 애니메이션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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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12-15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첫 서재의 달인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ㅎ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예전 엠블럼은 부끄러버서
다 감추어 놓았는데 헷 -

물감 2022-12-15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달 축하드립니다 :)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물감님.

alummii 2022-12-15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 타타르인의 사막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이 동화는 무엇인가 했더니 이런 내용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서달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1 | URL
디노 부차티 작가의 다른 책들
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2-1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동화도 썼군요~
레삭매냐님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2-12-16 10:43   좋아요 1 | URL
동화를 빙자한 정치 소설
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