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48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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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알라딘 동지들의 놀이터인 북플이 최고다. 다른 분들처럼 나도 북플에 올라오는 책들을 그리고 다른 채널로는 인스타를 참고한다. 올라오는 피드에 자극을 받아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한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말년에 잘 나가기 시작한 찰스 부카우스키의 시집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를 읽었다. 아마 중고 서점에 있었다면 사서 읽었을 텐데 어제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시집인가 아니면 노땅 백인 아자씨의 넋두리인가. 그리고 보니 소설가로 만난 부카우스키가 출발은 시인이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별의별 일을 다 한 부카우스키는 끝내 버텨서 꽤 나이가 들어서 작가로 성공했다고 한다.

 

말년에 발표한 작품이라 그런지 몰라도, 자신이 늘 속여 넘기는데 성공한 죽음의 그림자가 곳곳에서 보인다고나 할까.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숙명은 오히려 젊은이들이 더 두려워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오히려 나이 든 이는 오랜 경험 덕분인지 담담하게 받아 들이기는 개뿔! 그럴 리가 있나 그래. 여전히 시간과 죽음을 속일 수만 있다면 기꺼이 부카우스키 아저씨는 그럴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술을 마시고, 경마장을 찾아 돈을 날리고 또 술집에서 드잡이질을 마다하지 않는 부카우스키의 뻔뻔함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작가로서의 찰스 부카우스키의 정체성을 만든 요소는 무엇일까? 가학적인 아버지 헨리의 폭력이었을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반강제로 독립해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체험하게 된 세상과 경험이 훗날 그가 글을 쓰는 데 소재가 된 게 아닐까. 확실히 곧고 바르게 자란 문창과 엘리트 계급 출신의 작가들과는 변별력을 가지는 날것 그대로의 펄떡거림을 느낄 수가 있다.

 

부카우스키는 참 특이한 캐릭터인 게 예술, 특히 문학을 어떨 때는 개똥 같이 여기다가도 또 작가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타자기 앞에서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는 창작의 고통을 토로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그에게 배울 만한 점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창작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없다며 불평 따위는 하지 말란다. 어쩌면 종이 한 장과 볼펜 한 자루만 있더라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환장하는 게 작가라는 존재여야 한다는 말을 고상한 방식 대신 거친 방식으로 내질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박중독자 대선배 도끼 선생의 후배답게 부카우스키도 경마라는 도박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경마장에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자, 사귀는 여자(?)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여자와 있지 않았냐고 따진다. 성난 그녀에게 부카우스키가 진실을 이야기해도 전혀 먹히지 않는다. 물론 상대방이 그런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을 숱하게 해온 전과 때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시인이자 작가로 성공한 다음에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여자들을 꾀기도 한다. 부카우스키는 그런 데 대해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다. 어쩌면 자신의 오랜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젊은이와 고속도로에서 얼토당토않은 레이싱을 하다가 자신이 목표한 지점보다 30km를 더 나가는 치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아무리 자신이 유명하다고 하더라도, 불멸의 걸작을 남긴 세르반테스보다는 하수라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던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고 노력하기보다, 어쩌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제 부카우스키의 이 시집을 열심히 읽고 있는데 옆지기가 보더니, 감수성이 많다며 왜 생전 안 보는 시집을 다 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늙다리 영감탱이가 쓴 시집의 레알 콘텐츠를 봤다면 아마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어쨌든 나는 부카우스키의 지독한 뻔뻔함이 마음에 든다. 쟁여둔 부카우스키의 다른 책들도 읽어야지.

 

[뱀다리] 하도 이 작자가 궁금해서 너튜브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 리딩이라는 타이틀을 보게 되었다. 세상에, 오디언스 앞에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담배도 꼬나물고 뭐라고 하는 오디언스에게 쌍욕을 박는 장면에서는 정말. 또 다른 시퀀스에서는 리쿼 스토어에서 6병들이 맥주를 사면서 어느 손님에게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부카우스키라고 발음하는 것도 들었다. 우리 미국인 친구 브랜던이 알려준 발음이 맞다는 걸 오늘에서야 내 귀로 확인하게 됐다. 어느 시 낭독의 밤(1972)에 등장할 땐, 거의 록스타 수준의 환호를 받기도 하더라. 부카우스키는 진짜 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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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2-07-25 16: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찰스 부카우스키를 알게 되어 기뻐요.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2-07-25 17:18   좋아요 3 | URL
지금 다시 찾아 보니 예전에
열책에서 나온 책들은 모두
절판이 되었네요. 아쉬워라.

아주 재밌는 작가로 기억합니다.
단, 꼰대라는 점도...

얄라알라 2022-07-25 16: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소개하신 몇 일화만 봐도, 양면성이 튀는 독특한 작가일 것 같습니다! 30km를 더 나갔다는 건 차로 갔다는 말씀이시죠? 달리기가 아니라?^^

레삭매냐 2022-07-25 17:19   좋아요 4 | URL
네이 그러합니다 -
부카우스키 씨가 청년하고
붙었던 경험이라고 하네요.

미미 2022-07-25 17: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어봤는데 개성이 돋보이는 작가라고 생각했어요.
부카우스키의 시집을 읽어봐야겠네요! ^^*

레삭매냐 2022-07-25 19:32   좋아요 3 | URL
넵, 저도 그 책 7년 전에
읽었답니다.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가 봅니다 :>

재밌고 기묘한 개성이 넘치
니는 작가지요, 부카우스키.

얄븐독자 2022-07-25 19: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 잘 간직하고 있어야겠네요 ㅋ 어쩌면 판권을 다른곳에서 가져갔으려나

레삭매냐 2022-07-25 19:34   좋아요 2 | URL
제가 이래서 책을 못 정리하는
거라고 나름 위로해 봅니다 :>

<우체국>이랑 <여자들>은 다시
읽어 보고 싶네요. 처음에 읽을
적에 뭐 이런 작가가 다 있나 싶
었는데 말이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도 다
절판이 되었더라구요.

mini74 2022-07-26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얼핏 보이는 싯구로는 감수성과 거리가 먼 듯 합니다 ㅎㅎ뻔뻔한데 솔직해서 매력적인 작가같습니다. 저도 궁금해지네요 이 작가님..ㅎㅎ

레삭매냐 2022-07-26 17:5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감수성과는 1도 관련
이 없는 양반이랍니다. 너무 레알
해서 당황스럽게 만드시는 탁월
한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죠.

재밌는 작가이니 한 번 읽어보시
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