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 지음 / 사람과책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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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추리소설 한 편을 읽었다.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의 <문신>이다. 이 책은 지난달 말에 중고서점에서 수급했는데 오래 전 책이지만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내용은 더더욱.

 

1939년에 태어난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은 소설 <문신>의 주인공 페페 카르발로처럼 열혈청년이었던 모양이다. 모름지기 작가란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시키는 법이지 않는가 말이다. 몬탈반은 청년 시절 광부 파업에 참가했다가 18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1967년 시작 활동으로 문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문신>1974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올해 37세의 페페 카르발로는 미식가이자 사설 탐정이다. 그의 활동무대는 바르셀로나다. 그의 행적을 좇다 보면 나도 왠지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바에 가서 타파스에 시원한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바르셀로나 인근 바닷가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익사자가 발견되고, 케타 미용실의 바깥주인인 라몬 프레익사가 우리의 페페에게 익사자의 신원을 밝혀달라는 의뢰를 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유도한다. 라몬은 카르발로에게 두둑한 보수를 약속하고 그 중에 절반을 선수금 조로 내준다. 수사에 필요한 기타 경비도 부담하겠다는 말도 함께.

 

익사자의 얼굴은 물고기들에게 다 뜯어 먹혀서 알 수가 없었고, 유일한 단서는 그의 등짝에 새겨진 지옥을 혁명하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라는 그야말로 혁명적 문신 뿐이었다. , 시작은 이 범상치 않은 문신을 새긴 문신사를 추적하는 것이리라. 아무거나 먹자라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 카르발로는 직업여성 차로와 그의 동료들에게도 익사자의 신원을 밝히는데 필요한 단서들을 모아 달라고 부탁한다.

 

문신사를 통해 익사자가 네덜란드 필립스에서 일한 스페인 노동자라는 사실을 알아 내고, 곧 이어 그의 이름이 훌리오 체스마라는 사실도 알게 된 카르발로는 주저 하지 않고 바로 오래 전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암스테르담과 헤이그 그리고 로테르담을 카르발로가 누비는 동안, 독자들은 페페 카르발로가 예전에 미국 CIA의 요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네덜란드의 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심지어 옛 동료들에게 다시 정보 요원으로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걸 보면 현직에 있을 적에 우리의 주인공 카르발로가 대단한 실력을 지닌 요원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멋진 여성들과 뜨밤을 기대하는 한 마리 외로운 늑대 같은 사설 탐정일 뿐이다. 그리고 미식가로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거 하나만큼은 최고를 원하는 그런 남자다.

 

네덜란드에서 훌리오 체스마의 행적을 수소문하는 동안, 그가 소년원 출신의 특수부대원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마약거래 운반책이었다는 사실들이 차례로 드러난다. 그리고 살로몬스 미망인과 테레사 마르세 같은 여성들과 숱한 염문의 주인공이었다는 점도 카르발로에 의해 알게 된다. 그리고 남자의 촉으로 카르발로는 죽은 훌리오에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된다. 암스테르담에서 미행에 나섰다가 괴한들에게 몰매를 맞고 운하에 내던져지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지만, 원하는 정보들을 안고 바르셀로나로 돌아온다.

 

모든 것은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페페 카르발로는 독자들에게 선언한다. 왜 라몬 프레익사는 경찰 대신 사설 탐정인 페페에게 익사자 훌리오 체스마의 신원을 밝혀 달라고 했을까? 그것도 적지 않은 비용을 들이면서 말이다. 일단 페페는 라몬에게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건네주고 정산을 받는다. 하지만 카르발로의 호기심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훌리오 체스마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밝혀내기에 이른다. 지옥을 혁명하기 위해 태어난 자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 때 공산주의에 경도되었다가 전향한 지식인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추리소설에도 자신의 전공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사회문제들에 대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페페 카르발로가 네덜란드에 가서 만난 이들 중에는 스페인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다. 왜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국에 가서(그것도 오래 전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곳에서) 노동을 파는 것일까. 고향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로 매춘의 천국이라는 네덜란드에서 쇼윈도 감상으로 만족해야 하는 이주민 노동자들의 끓어오르는 욕망을 몬탈반 작가는 정확하게 타격한다.

 

마치 신문 연재를 읽는 듯한 그런 기분으로 짧게 끊어치고 나가는 전개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페페 카르발로라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인물의 과거 전력을 살짝 살짝 들추는 몬탈반 작가의 밀당도 인상적이었다. 그가 요리와 와인에 진심인 미식가라는 설정도 반세기 전에는 참신하지 않았나 싶다. 가끔 이렇게 내가 주력하는 장르가 아닌 분야의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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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13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미식을 소재로 하는 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시기를 생각하면 그 때는 새로운 시도였을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비가 많이 오는 수요일입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레삭매냐 2022-07-16 22:43   좋아요 1 | URL
먹방이 유행하는 시대에 하나
의 트렌드라고나 할까요.

미시적 접근이 마음에 들더라
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