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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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은 작가들의 작가라는 호칭을 가진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에서도 확인한 바가 있다. 정점이 지난 작가가 발표하는 책들이 이전의 작품들만 못하다는 사실을 잇달아 확인하는 것도 독자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작가가 전작을 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오늘 나의 도마에 오른 작가는 바로 이언 매큐언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이니 그에 대한 설명은 패스하련다. 사실 지난 작품은 <넛셸>에서도 느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작가로서의 유통기한이 다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작품에서 나의 의신을 사기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확신을 주었다.

 

아 간만에 혹평을 하려니 좀 그렇다. 어쨌든 분량도 얼마 되지 않는 책을 읽는데 제법 시간이 많이 걸렸다. 도중에 다른 책들을 읽어서 그런가. 참고로 이 책은 구매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다. 사서 읽었다면 후회했을 것 같다. 아니면 곧바로 헌책방에 팔았던가.

 

지난번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명백하게 노대가는 문학적 오마주를 시도한다. 이번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그 유명한 단편인 <변신>이다. 그 작품에서 인간이 아마 벌레로 변신했지. 왜 그런데 하필이면 벌레였을까? 이번에는 우리 인간의 가장 업신여김을 받는 바퀴벌레가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영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총리 제임스() 샌스로.

 

문제는 그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영국이 EU에서 탈퇴한다는 브렉시트 투표를 실시한 즈음이었다. 노대가는 그 때의 결정이 빈곤층과 노년층의 연합이었다고 못 박는다. 당시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에 역행하는 그런 파국적인 결정이었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영국이 망했나? 그건 아니다. 어떤 결정이라고 해서 바로 국가 단위의 조직이 망하지는 않고 서서히 쇠퇴하다가 어느 순간, 국가로서의 경쟁력을 잃고 이류국가가 되는 거겠지.

 

이미 영국이 세계일류국가의 자리를 한 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미국에게 내준 게 제법 되지 않았던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치욕적인 별명으로 미국의 맹방을 자처하며, 거의 똘마니 수준으로 미국이 창조해낸 세계질서에 협조해온 역사가 그런 점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노대가는 도대체 이 정치우화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바퀴벌레가 한 나라의 총수가 되어 국가의 미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었을까? 그나마 미국 정치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민주주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그것에 대해서는 1도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당장 눈앞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정치 쇼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사유 체계는 버거우니 말이다.

 

바퀴벌레 총리의 인간 세계 습득과정은 놀라운 지경이다. 다리 여섯 달린 벌레에서 인간이 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신속했다. 과연 지구별에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환경적응력의 문학적 현실화라고나 할까. 순간 너튜브에서 짤로 본 바퀴벌레와 사투를 벌이는 일본 B급 영화 <테라포마스><조의 아파트먼트>가 떠올랐다.

 

프랑스 해안에서 침몰한 어선을 정치적 위기로 비화하는 정치적 기술이나 대서양 바다 건너 동맹국의 수장인 아치 터퍼에 대한 언급도 상당히 유쾌하다. 소설에서 정말 끝장나는 장면 중의 하나는 바로 짐 샌스가 아치 터퍼(국가분열의 상징이 된 어느 코미디언 스타일의 전직 대통령의 희화화)에게 혹시 그쪽도 다리 여섯이냐고 전화로 묻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신랄하게 자국의 총리와 세계 최강대국의 수장을 마음껏 깔 수 있는 노대가의 패기가 부럽기도 했다. ,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별점을 하나 올려야 하나!

 

그런데 소설의 엔딩이 어떻게 되더라. 어쨌든 영국은 브렉시트로 세상에 온갖 종류의 혼돈을 초래했고 결국 유럽연합에서 자발적으로 탈퇴 아니 내쫓겼다. 이건 순전히 내 상상이지만, 유로 공동체가 출범하던 시절부터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자국의 파운드화를 고수하던 시절부터 어쩌면 이런 브렉시트는 예정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섬나라 특유의 고립주의 그런 건 고려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영국은 처음부터 대륙국가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게 나의 추정이다.

 

짐 샌스의 지휘 아래 행해지는 온갖 종류의 정치적 모략도 볼만한 관전 포인트다. 바퀴벌레 총리가 실시하는 모든 종류의 우스꽝스러운 정책과 역방향주의자들이 주도하는 브렉시트를 막기 위한 그나마 제 정신이 박힌 이들의 시도는 카크라치총리의 치졸한 음모로 분쇄된다. 하긴 우린 이미 일 년 전쯤에 부정선거라는 해괴한 논리의 세례를 받은 일단의 극단주의자들이 어느 나라 의사당에서 난동을 부린 장면을 텔레비전 중계로 생생하게 보지 않았던가.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하는 리얼리티의 재현이 아닐 수 없었다.

 

현실세계가 이렇게 소설이나 영화를 능가하는 스펙터클한 재미를 제공해 주니, 우리가 더더욱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작가들은 분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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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2-08 02: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존슨 영국 총리가 ˝파티˝로 공개 조롱 당하는 영상을 보았던지라 리뷰 마지막 문장에 더욱 공감합니다. 저는 몇 년전(3~4년 전일까요??기억 가물) 북플 선배님들께어 이언 메큐언, 이언 메큐언 하시기에 찾아 읽다가 반했습니다. 그런데 최신간은 예전 명성에 맞지 않는 작품인가 보네요....그래도 일단 이언 메큐언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2-08 09:09   좋아요 2 | URL
전성기의 이언 매큐언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저도 드물게 전작하는 작가 중의
하나랍니다 ^^

오랜 로열티로 그렇게 읽었답니다.

새파랑 2022-02-08 07: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맘에 안들어서 안끌렸던 책인데 레삭매냐님에게는 별로였나보네요 <변신>까지는 아니었나봅니다~!

레삭매냐 2022-02-08 09:10   좋아요 3 | URL
출간 되기 전부터 뭐랄까
느낌이 쎄~하더라는 -

그냥 쉬엄쉬엄 읽으면
좋지 않나 싶습니다.
너무 심각하게는 말고요.

mini74 2022-02-08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고민중이었는데 매냐님 별 두 개 ㅠㅠ 고민을 좀 해봐야겠어요. ㅎㅎ조의 아파트먼트.ㅋㅋㅋ넘 싫어요.

레삭매냐 2022-02-08 19:28   좋아요 1 | URL
분량이 적어서 읽는데 부담
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

전 전작하는 작가라 꾸역
꾸역 읽었답니다.
다른 책들이 넘 재밌어서
상대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