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비에트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1905년 12월 12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주 베르디비치에서 태어나 위암으로 1964년 9월 14일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 모스크바 서쪽 외곽의 Troyekurovskoye(발음을 모르겠다)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나는 이 작가를 이번에 만난 티모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같이 짝으로 언급되는 작가는 아서 쾨슬러. 우리에게는 <한낮의 어둠>이라는 책으로 소개된 바 있는 작가다. 나도 사두긴 했으나,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다.
그로스만의 아버지는 화학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프랑스어 교사였다. 유대계 가정 출신의 바실리 그로스만은 러시아혁명 와중에 키예프와 모스크바에서 물리와 화학 그리고 수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시절에서부터 그로스만은 단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이름은 이오시프 솔로모노비치 그로스만이었다. 아마 볼셰비키 혁명을 거치면서 좀 더 러시아 스타일의 이름인 바실리로 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돈바스 스탈리노의 광산에서 화학실험을 하는 엔지니어로 일했다.

1928년 1월에는 안나 페트로브나 마트석과 결혼해서 2년 뒤에는 어머니의 이름인 예카테리나를 딴 딸을 낳았다. 안나와의 결혼은 5년 만에 끝이 났고, 그 뒤에는 친구의 부인과 재혼했다.
글쓰기라는 악덕에 매료된 그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했는데, 1934년 첫 소설을 발표했다. 애국전쟁으로 알려진 독소전(1941-1945) 당시에는 종군기자로 세계대전의 대전환을 가져온 스탈린그라드에 파견되어 명성을 떨치게 됐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1941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나치 독일군에 의해 고향 베르디비치를 탈출하지 못한 다른 2~3만 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살해당했다.

병역을 면제 받았지만, 그로스만은 자원입대해서 1,000일 정도를 근무했다. 종군기자로서 그는 모스크바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차전 그리고 베를린 전투에 이르는 동부전선의 주요한 전투를 모두 취재했다. 종군기자로서 전설적인 명성을 쌓은 그로스만은 전쟁영웅 대우를 받았으며, 1950년에는 자신의 스탈린그라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스탈린그라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소설 <스탈린그라드>의 오리지널 원고가 영어로 번역되었다. BBC에서 라디오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그는 나치 인종청소의 초기 기록들을 수집한 아마추어 역사가이기도 했다.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 우크라이나와 폴란드의 트레블링카와 마즈다네트 절멸수용소의 실상을 밝혀냈다. 1943년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절멸수용소에 대한 그로스만의 기사 <트레블링카의 지옥>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증거로 제시되기도 했다.

전후, 체제친화적이었던 그로스만은 반체제 작가로 전향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1953년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1961년에는 악명 높은 KGB가 그로스만의 집에 들이닥쳐 그가 십년간 집필해온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능가하는 역사상 최고의 전쟁소설이라는 <삶과 운명>의 원고를 압수해갔다. 이유는 그가 저술한 소설이 반소비에트적이라는 점이었다. 이 위대한 원고의 사본을 보관하고 있던 그로스만의 시인 친구 세미온 리프킨이 마이크로필름으로 된 원고 사본을 서방으로 빼돌려 스위스에서 1980년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 러시아어로 출간되었고, 1986년에는 로버트 챈들러가 영어로 번역했다. KGB가 보관하고 있던 오리지널 원고는 1988년 해금되었다.
영어 번역으로 912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 <삶과 운명>은 총 3부로 각각 74, 64, 6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로스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빅토르 시트룸으로 핵물리학자다. 히틀러에게 스탈린은 스승이었다는 말은, 스나이더 작가의 블러드랜드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묘사다. 히틀러보다 먼저 집권한 스탈린은 인위적인 사회주의 혁명 단계를 조성하기 위해, 막대한 농민의 희생 위에 노동자계급 중심의 프롤레타리아 천국의 조성을 기도했다.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스탈린에게 권력기반을 다지고 노동자 천국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지는 몰라도 아무런 죄 없이 죽어간 인민들에게는 대재앙이었다.
다시 소설 <삶과 운명>으로 돌아가 소설의 핵심은 2부 15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한다. 어떠한 고난이 인간에게도 닥쳐도 우리 인간들은 인간성과 선함의 회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과 최악의 전쟁이라는 독소전의 거친 파도에서 살아남은 위대한 작가의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바실리 그로스만의 대표작 <삶과 운명>은 소련(아니 이제는 러시아라고 불러야 하나)에서 2012년 12부작으로 제작되어 첫 회에 18%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너튜브에서도 제공되고 있는데, 소련말을 모르니 자동번역을 골랐더니 한국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서 포기해 버렸다. 미니시리즈의 시작부터 숙적 소련과 독일이 가열차게 맞붙은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에 투입된 두 명의 병사가 등장한다. 자막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구나.
너무 방대한 분량 때문에 국내에 소개되기는 아무래도 요원할 것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천쪽에 육박하는 책을 영어 번역으로 읽을 자신은 더더욱 없고... 드럽게 보고 싶으나 나의 역량이 따르지 못할 뿐이다. 이래서 우리 닝겡은 배움을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걸까.
부디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을 용자가 나서서 번역해 주시고 출간해 주시길.

[뱀다리] 뉴요커에 실린 영어 번역가 로버트 챈들러의 기사를 보니 <삶과 운명>이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명백한 오류다. 언제 번역이 되었단 말인가. 아니면 혹시 현재 판권이 팔려서 번역 중일 수도... 제발 현실이길 바라는 나의 망상이다.
[뱀다리2] 바실리 그로스만의 책이 혹시 국내에 출간된 게 있나 해서 뒤져 보니, 30년 전에 <코미짜르(인민위원)>라는 단행본이 출간된 적이 있다. 서울책보고에서 한 권 찾아서 바로 주문장을 날렸다. <삶과 운명>은 만나볼 수가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