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원래 새해 1월에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 두 권을 읽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실제로 책도 조금 읽었다 아주 호기롭게. 그러나 바로 장애를 만나고 말았으니, 그 작가의 이름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였다. 아주 오래 전, 노대가의 <애너벨 리>인가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엔원년의 풋볼>을 사두었다. 오에 겐자부로(앞으로 나도 누구처럼 그를 겐산로라고 부르겠다, 내 마음대로다)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지 2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노대가를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영하의 맹추위를 뚫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간 나는 겐산로 선생의 책 두 권을 빌렸다. 하나는 바로 오늘 다 읽은 <읽는 인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익사>였다. 이렇게 새해 첫 달에 내가 읽게 될 작가는 오에 겐산로 선생으로 당첨 확정!

 

겐산로 선생은 막부 시절, 도사 번이 있던 시고쿠 시골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십대 시절에 만난 책의 역자인 도쿄대 불문과 교수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정말로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재수도 하셨다고 했던가. 마음 먹으면 그대로 되는 건가? 이웃 최고의 학부 출신의 엘리트 지식인인 겐산로 선생은 마냥 겸손하다. 반세기도 넘게 글을 써온 양반이지만, 이렇게 겸손할 수가 있나 그래. 고희를 넘기셔서도 문학에 대한 배움을 자세를 지니고 계신 품새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를 처음 만나 그의 저작에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이란. 그의 인간됨이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읽기 선배로서 그에 대한 호감은 읽는 만큼 성장한다는 선언 앞에서 바로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읽고 쓰기의 수도를 해온 겐산로 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얼치기 독서인으로 강호의 고수이자 대가의 풍모를 지닌 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조근조근하게 풀어 나가는 이야기에 그만 매료되었다.

 

일본이 막부 말기부터 동도서기론에 입각해서 서구의 문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일본 막부의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존왕양이운동을 하면서도 서구 문물의 도입을 위해 번역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할 정도였다.

 

그 덕분일까? 겐산로 선생 역시 선배 역자들이 번역한 다양한 서적들을 섭렵한 모양이다. 그리고 번역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자세를 취한다. 세상에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번역이 아닌 반역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어쩌면 선생의 말대로 가장 좋은 책읽기는 더듬거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긴 해도 원서를 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선생은 실제로 평생의 친구였던 이타미 주조라는 친구에게 불어 번역을 배우기도 했다지 않은가. 지식욕이 왕성할 시절에 그런 친구를 만난 것도 복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선생은 그의 여동생과 결혼했다고 한다.

 

문체에 대해서도 지면의 할애를 아끼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서사 구조에 집착하는 독서인이라 그런지, 문체의 중요성에 대해 대가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선생이 자신의 작품에도 많이 인용했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아직도 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아마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마음의 준비가 되면 시를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겐산로 선생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요소 중의 하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장남 히카리의 존재였다. 이십대의 나이에 두뇌에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게 된 상황이 어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삶이 고난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이라면, 아마 선생만한 고난을 체험한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이런 인생에서의 시련이야말로 선생을 위대한 작가로 거듭나게 해준 그런 계기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선생이 제시해준 독서법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모든 독서는 재독이라는 퀘스트로 귀결된다는 것일까. 첫 독서가 막무가내라면, 재독(rereading)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독서라는 설명이 폐부를 찔러온다. 그렇지, 내가 처음에 읽을 적에는 그렇게 거의 사투에 가까운 독서경험이었던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이 작년에 다시 만났을 적에는 그야말로 경쾌한 리듬으로 읽지 않았던가. 그것도 수년 동안 미루어 오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완주하고 난 뒤라 더 상쾌하게 만났던 것 같다.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디바인 코미디>에 대한 긴 설명을 읽던 얼치기 독서인에게 언젠가는 <신곡>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 엄습해 온다.

 

마지막 유대계 지식인이라는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와의 우정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후반도 인상적이었다. 지식인들의 교류는 그러한 것이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쇼팽 녹턴을 연주한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을 주선한 사이드 교수의 재치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이 정도되는 인사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되어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20일 동안 몇 권의 겐산로 선생의 책을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번 부지런히 읽어볼란다. 선생의 삶과 사유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이제 읽기 모드로 돌입한다. 출발은 물론 <만엔원년의 풋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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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1 1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새해 읽는인간으로 ! 오에 센세 만쉐!

레삭매냐 2021-01-12 11:50   좋아요 1 | URL
만엔원년의 풋볼부터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서리...

붕붕툐툐 2021-01-12 0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저도 읽고 싶은 책으로 담아놓은 책이군요~ 매냐님 따라 저도 곧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1-12 11:51   좋아요 2 | URL
일단 오에 센세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대표작부터 만나보겠습니다.

han22598 2021-01-12 0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드뎌.시작하셨군요. 기대가 됩니다. 레삭매냐님은 어떻게 읽어나가실지.

레삭매냐 2021-01-12 14:02   좋아요 2 | URL
일단 산뜻하게 출발은 했습니다...

읽은 책들이 많아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숙제하듯이 하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단발머리 2021-01-12 14: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오래 기억나는 책이라 레삭매냐님 리뷰 읽는 것도 즐겁네요.
레삭매냐님의 존경과 겸손이 리뷰 곳곳에 묻어납니다. ㅎㅎㅎㅎㅎ 오에 겐자부로가 70세에 이탈리아어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 좋더라구요. 신곡을 읽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이탈리아어를 배울 생각이 없지만 말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2 16:02   좋아요 2 | URL
오 그러셨군요... 그 연세에 대단하신
도전입니다.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사촌형님이
신부님이시라, 기숙하는 숙소에 점심
얻어 먹으러 갔었는데, 수도원장님이
이태리말 못하는 사람이 ‘닝겡‘이냐
라고 하셨대요.

물론 인종차별 그런 건 아니었구요,
그만큼 자기네 나라 언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더라나 뭐라나....

추가로 수도원에서 요리하시던 어느
아주머니에게도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제
턱을 손으로 콱 잡으시면서 둘이 턱
이 닮았네라고 하셨었어요...

scott 2021-02-10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원래도 읽는 인간이셨지만
짠돌이 알라딘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ㅋㅋㅋ 추카~추카~
오에 센세 만쉐!ㅋㅋ

설날 연휴 평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