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마음 델핀 드 비강의 마음시리즈 1
델핀 드 비강 지음, 윤석헌 옮김 / 레모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주 전에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이라고 생각하고 빌린 책들이 바로 델핀 드 비강의 책 <충실한 마음><고마운 마음>이었다. 착각으로 이렇게 책을 읽기도 하는구나 싶은 마음이다. 어떤 책이든 어떠랴, 그저 내 마음의 조금의 양식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리고 잘못된 만남이긴 하지만, 프랑스 출신 델핀 드 비강이 그리는 가족 서사가 마음에 들기도 했으니까.

 

소설에는 모두 네 명의 화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목소리를 내는 건, 보드카와 럼을 마시는 12살배기 테오 뤼뱅과 그의 친구 마티스 기욤, 마티스의 엄마 세실 그리고 테오와 마티스를 지도하는 엘렌 데스트레 선생님이다.

 

사실 좀 충격이었다. 나도 술을 마시긴 하지만, 그건 대학생이 된 다음의 일이었다. 아니 그 전에도 한 번 마셨었던가. 그런데 이 녀석들은 고작 12살부터 술을, 그것도 맥주 같은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술인 보드카와 럼을 즐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까? 그렇게 가족 소설이 시작된다.

 

테오의 어머니는 6년 전에 IT업계 종사자인 테오의 아버지에게 진절머리를 내며 이혼장을 날렸다. 그 후로, 테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집을 오가는 떠돌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버지가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때는 괜찮았지만, 실직하고 거의 폐인 같은 생활을 시작하면서 테오의 삶도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술을 사기 위한 자금공급은 마티스가 맡았다. 친구 테오와 무엇이든 함께 하는 마티스는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는데 친구 때문에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마티스의 엄마 세실의 판단이 맞는 걸까?

 

소설의 화자들은 두 개의 그룹을 나뉘어져 있다. 엘렌과 세실은 어른 측을 그리고 테오와 마티스는 아이들 측이다. 엘렌과 세실 모두 어릴 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우선 엘렌은 아버지에게 혹독하게 학대를 당한 기억이 있다. 처음 테오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한 것도, 바로 그런 엘렌의 경험에서 오는 촉이 작동한 덕분이었다. 학교 성적이 좋다고 해서, 다른 것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파악한 것으로 보아 엘렌은 다른 이들보다는 좀 더 좋은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테오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체육복을 가져 오지 않았다고,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준 체육 교사와 일전도 불사하는 엘렌, 그녀는 단순한 오지라퍼였을까. 그건 아니다.

 

, 이제 카메라를 세실에게 돌려 보자. 그녀는 무엇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남편 빌리암과 근 20년 가까이 결혼생활을 해온 가정주부다. 그녀의 일상은 평온했다. 남편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불륜을 저질렀다거나 하는 사랑과 전쟁급 스토리는 진부하니, 델핀 드 비강 저자는 빌리암을 다른 길로 유도한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블로그를 통해 호모포비아, 유대인 배척, 인종차별 그리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써온 Wilmor75라는 필명의 극우 키보드 워리어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세실은 남편이 과연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인가라는 회의에 사로잡힌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아들 마티스가 술에 취해 귀가한다. 문제는 그녀의 아버지가 넘치는 감수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구제불능의 알코올중독자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한다면, 바로 빌리암은 그녀의 탓으로 돌릴 것이다. 남편의 일탈을 알게 된 세실은 어느 사교모임에서 남편의 위선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린다. 그 다음부터는 당연히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기감이 조성된다. , 사교파티를 폭파시키고 돌아온 날 집에서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꼬마들을 발견하는 건 보너스 타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톨스토이 선생이 말했듯이, 모든 가정은 저마다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꼭 이렇게 문제가 있는 가정들만 소설이 되어야 하는 걸까라는 질문 말이다. 하긴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을 그런 평범하기 짝이 일는 일상의 권태에 관심을 가질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아니 어쩌면 다른 가정들은 저렇다, 우리는 그렇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라는 위안으로 일상의 파고를 넘는 건 아닐까.

 

델핀 드 비강 작가는 긴장감 넘치는 결말로 독자를 유도한다. 하지만 고수답게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는 대신, 슬쩍 독자에게 배턴을 넘긴다. 선배 작가 스탕달이 남긴 말처럼 소설은 사회와 시대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델핀 드 비강의 소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반영한다. 하지만 판단은 그 사회를 혹은 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맡긴다. 그래서 나는 작가의 마음 시리즈 다음 편인 <고마운 마음>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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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12-09 1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마운 마음>도 좋았습니다. 꼭 읽어보세요... 낚시꾼 올림.

레삭매냐 2020-12-09 17:33   좋아요 2 | URL
파닥... 파닥... 오늘도 낚이여 갑니다.

집에 가서 읽도록 하겠습니다.
대망의 150권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