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톨츠 대산세계문학총서 124
파울 니종 지음, 황승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파울 니종, 처음 들어 보는 작가다. 그런데 왜 내가 이 책을 샀을까? 산 이유도 대단한데 읽은 건 더 대단하다. 아마 이유는 순전히 연말에 책 권수를 채우려는 꼼수에서 발현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여름에 사서 겨울에 읽었다. 해 넘기지 않고 읽은 게 어딘가 위로해 본다. 다행히 어디 구석탱이에 쳐 박히지 않고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나의 간택을 받았다. 작가는 스위스 출신이라고 하는데, 그 동네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일 진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서는 무명의 작가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지 못한 한계로 보아야 하나. 독일어권 책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한다는 이유는 니종의 명성이 이방에 널리 알리지 못하는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제목에 떡하니 등장하는 슈톨츠는, 그렇다 바로 주인공의 이름이다. 슈톨츠는 25세의 가장, 노동자 그리고 대학생이다. 저자의 젊은 시절을 고대로 판박이처럼 빼다 받은 캐릭터라고 하는데 귀차니즘이 마구 발동해서 위키피디아고 뭐고 우리에게는 무명의 작가를 검색해 보는 수고도 패스해 버렸다. 아무래도 연말 즈음에 발생하는 의욕상실 덕분이려나 어쩌려나.

 

룸펜 같이 노동으로 성실하게 벌어먹고 살던 슈톨츠는 돈을 벌어 이탈리아 여행에 나서기도 하고, 어쩌구 하면서 살다가 대학에 진학한다. 살인적인 대한민국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서구 사회에서도 대학이라는 코스를 거치고 나면 더 많은 기회를 부여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내몰려서 대학에 진학하는 게 아니라, 슈톨츠처럼 고흐의 그림을 보고 뻑이 가서 정말로 진지하게 그의 예술 세계와 고독 기타 등등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발로라면 대환영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서도 대학문을 넘는 그네들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우리는 80살 할아버지가 의대에 간다고 하면, 젊은이들의 기회를 빼앗는다고 난리부터 치지 않은가.

 

역시나 슈톨츠가 진학한 대학은 그에게 여러 가지 기회를 제공해 준다. 독일 출신 목사님네 딸내미를 만나 결혼에도 골인하고, 좋아하는 미술사학도 공부하지 않은가. 무언가 삶의 탄탄대로가 전개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슈톨츠는 고독과 침잠의 세계에 메혹되기 시작한다. 출산한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고, 저 혼자 뭔 놈의 연구를 하겠다고 시골 농가를 찾아 고흐가 남긴 편지들을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만의 사색에 빠져 용기를 내라”(sursum corda:주르줌 코르다)는 라틴어 문장을 주술처럼 외우며 학문에 용맹정진한다.

 

아내와 어린 아들 그리고 장모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골탑을 쌓던 슈톨츠는 비트마이어 씨네 하숙집을 떠나 잠시 현실세계로 복귀한다. 고흐가 남긴 편지들과 연보와의 씨름을 뒤로 하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의 경험은 몽상적이라고나 해야 할까. 슈톨츠는 아내와의 재회를 두려워한다. 못 본 사이에 아들은 몰라보게 성장했다. 장인의 사투리까지 이어 받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목사인 장인은 논문 저술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사위에게 압박감에 시달리며 행복한 고기잡이에 나선 그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 그리고 보니 슈톨츠의 연구대상인 고흐도 한 때 영국에서 활동한 실패한 선교사가 아니었던가.

 

알고 보니 두 번의 대전에 참전했던 슈톨츠 장인의 이력도 화려했다. 그는 군목이 아닌 포병장교로 참전해서 베어마흐트의 일원으로 발칸반도를 지나 크레타에까지 갔었다고 한다. 목사관에 거주하는 목사의 특이한 경력이 아닌가. 슈톨츠는 칼크벨레주인 하인리히처럼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 전쟁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어쩌면 그게 1960년대 독일 소도시에 사는 독일 사람들의 실상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도망치듯 글라스휘텐호프에 돌아온 슈톨츠는 여전히 논문 저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비트마이어 씨네 하숙집에서 돼지 도축하는 걸 구경하며 허송세월한다. 예술가 고흐의 삶을 동경한 나머지, 자신도 본업을 내팽개치고 노동자 농민들의 삶에 천착해 버린 것일까. 연구 활동에 흥미를 잃은 슈톨츠는 고흐의 원본 그림을 다시 보고, 재도약 혹은 새출발을 위해 슈페사르트를 떠나 암스테르담행을 결정한다. 그리고 오만한 산림감독관의 제안에 따라 겨울사냥에 나선다.

 

소설 <슈톨츠>는 개인적으로 볼 때, 업앤다운이 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분명 작가의 자전적 모습들을 여실하게 드러내기도 하면서 또 동시에 고흐의 서간집이나 자료들을 첨부해서 서사의 줄기를 흩뜨려 트리기도 한다. 훈련된 독자라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곳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들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변명 같지만 내가 그렇게 했으니 말이다. 뒷부분에 달린 긴 후기를 읽을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다. 지역 농부 비트마이어 씨와 어울리는 장면에서는 카를로 레비의 자서전 생각이 나기도 했다.

 

예전에 사둔 책들을 하나씩 읽는 건 밀린 숙제를 하는 그런 기분이다. 어떤 이유에서 사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 읽고 나니 속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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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7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12-07 21:33   좋아요 1 | URL
올해 시작하고 못 다 읽은
책들만 해도 상당하지 싶습니다.

역시 연말은 그렇게 읽던 책들을
정리하는 시간으로...

이뿐호빵 2020-12-07 2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시간을 보는 것 같습니다ㅋ
읽다 만 책들 읽어 내느라 저도...
읽으면서 또 생각합니다
책 읽기가 숙제가 되면 안되잖어 ...그러면서 ㅋ

레삭매냐 2020-12-08 10:18   좋아요 1 | URL
그렇긴 한데...

왠지 읽다만 책들을 보면
숙제처럼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하구요.

저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
가 그러네요. 누군가는 인생책
이라고 하던데 다양한 판본의
책이 있지만 정작 완독은 못했
다는. 새해에 읽어 볼까나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