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8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문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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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말 하지 않겠다. 고전 중의 고전,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은 읽지 않은 이들은 많아도 이 책에 대해 들어 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항상 고전에 대해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은 다시 읽는 법이지에 대해서도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 고전은 모름지기 다시 읽는 법이다. 한 번 읽고 말 책이라면 고전이라 불릴 자격이 없을 테니까.

 

나이가 들은 모양이다. 처음으로 <죄와 벌>을 읽을 적에는 그렇게 지겹고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었는데, 이번 도전은 정말 수월했다. 그동안 독서의 내공이 쌓인 걸까? 에이 그럴 리가. 그냥 이번에는 새로운 번역으로 자간도 넉넉하고 뭐 그랬다는 이유를 듣고 싶어라. 좀 더 현대적인 번역, 그래서 반역인지 번역인지 모르겠다는 말도 나왔던가.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불후의 고전에 대한 리서치를 좀 해보았다. 물론 읽기 전에는 안된다. 나의 책에 대한 감상을 해칠 수 있으니. 유용한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가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교적 간단한 줄거리다. 전도유망한 법학도였던 이십대 청년 라스콜니코프(혹은 로디온, 로쟈로도 불린다)7월의 무더운 여름날, 공기 중에 떠다니던 불온한 사상인지 열에 들떠 악질(순전히 주관적인 표현이다)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리고 그녀의 불쌍한 여동생 리자베타도 함께.

 

본격적인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사건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알아보자. 표트르 대제 시설 급격한 서구화를 추진하던 절대군주의 명령을 건설된 인공도시는 위대한 시간(농노제 해방, 1861)이 도래하면서 급격한 팽창을 맞이한다. 지주계급의 착취로부터 벗어난 무산자 계급(프롤레타리아트)들은 일자리와 먹거리를 찾아 도시로 줄지어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빈부의 격차는 해소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도시 빈민들은 생존이 위협받을 정도로 비참했다.

 

이상이 1860년대 계급적 모순이 비등점을 향해 달리고, 서구에서 들어온 공기 중에 부유하던 불온한 사회주의가 지식인 계급에서 힘을 얻어가던 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단상이었다.

 

다시 라스콜니코프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남루한 행색에 이틀 정도 굶었고, 한 때 사위가 될 뻔하기도 한 집주인 파셴카에게 몇 달째 방세조차 밀린 신세다. 귀족 집안 출신이면 뭘 하나, 아버지는 돌아 가셨고 얼마 되지 않는 연금으로 수도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아들을 지원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개뿔도 없지만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로쟈의 어머니 플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콜니코바와 동생 두네치카를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는 라스콜니코프의 속이 얼마나 썩어 갔을지 상상이 간다.

 

고향에서 과외선생을 하던 동생 두네치카는 과외 가정의 가장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비열한 책동으로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몰락한 집안의 희생양을 자처한 두네치카는 또다른 비열한 인간이자 45세의 중년 변호사 표트르 페트로비치 루진의 약혼녀가 되었다. 우리의 도끼 선생은 페미니즘을 전혀 고려하시지 않았던지,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희생자 역할을 여성들에게 맡긴다. 두네치카와 소냐 그리고 라스콜니코프가 죽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리자베타 모두 여성들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19세기 러시아의 시대적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오빠의 성공을 위해 자신과 어머니를 페테르부르크로 초대하고서도 비용을 아끼기 위해 거지 같은 숙소에 묵게 한 루진, 두네치카를 포기하지 않은 채 의문사한 부인을 뒤로 하고 그녀를 쫓아 페테르부르크까지 달려온 스비드리가일로프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문제의 근원인 라스콜니코프에 이르기까지 악역은 죄다 남자들이다. 루진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돈이나 연애 따위의 감정에 휘둘린 좀스러운 차원의 악당이라면 라스콜니코프는 그들과는 좀 다른 궤도에 올라선 자신만의 논리를 지닌 빌런이다.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한 인물이 아닐까. 게다가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던 생각들을 실천에 옮기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모두 6개의 챕터로 구성된 도끼 선생의 <죄와 벌>1부에서 치밀한 범죄자 라스콜니코프의 죄를 묘사한다. 나머지 다섯 개의 챕터에서는 모두 어느 누구도 그에게 부여하지 않은 죄에 대한 처벌권을 행사한 라스콜니코프가 감당해야 했던 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무리 전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가 고리대금업으로 악행을 했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사법 시스템 아래에서의 합법적인 사업이었다. 21세기에도 고리의 대부업이 CM송의 흥겨운 리듬을 타고 방송에 횡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섬망증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치밀한 계획을 세워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살해했다.

 


자신과 같이 불운한 처지에 빠진 청년을 돈을 매개로 해서 착취하는 전당포 노파에 대한 사적 응징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리자베타까지 포함한 이중살인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리자베타 역시 자신과 같이 불우한 처지의 빈민이 아니었던가. 단지 그녀가 라스콜니코프의 살인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당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로쟈는 자신의 의도와 반대로 비뚤어진 정의의 사도에서 파렴치한 살인범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 다음부터 라스콜니코프가 아무리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는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그의 행위는 동정을 받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라스콜니코프의 독자적인 위험한 생각이다. 그는 스스로를 비범한 사람으로 분류하고, 자신이 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역사에서 나폴레옹과 마호메트와 같은 이들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이고서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니체의 위버멘쉬[overman]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이런 모든 것을 초월하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그는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 것이다. 자신의 범행 목적이 극빈한 자신의 삶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그는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금품을 탈취하지 않았던가.

 

청년 시절, 공상적 사회주의에 경도되어 사형 직전에까지 갔다가 황제의 특별사면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십년을 보낸 도끼 선생은 혁명가의 삶 대신에 고단한 민중의 삶에 눈길을 돌렸다. 그가 그렇다고 해서 민중의 삶을 바꾸기 위해 실천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구제불능의 노름꾼이었으며, 돈을 벌기 위해 매문하는 작가였다. 속기사를 고용해 소설을 쓸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시베리아에서 독실한 신자로 거듭난 도끼 선생은 인간의 힘으로 사회를 바꾸는 대신, 신에게 귀의했던 것 같다.

 

<죄와 벌>에서도 라스콜니코프의 실제적인 범죄인 살해보다도,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거의 모든 면에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그의 오만함이야말로 진짜 죄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고작 이십 몇 년을 산 청년이 세상만사를 모두 알고, 자신이야말로 보통 사람들 가운데 비범한 사람이자 정의의 사도인 체하는 모습이 얼마나 거슬리는가. 도끼 선생 자신도 청년 시절 과격한 혁명가 벨린스키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 시절의 자신을 투영한 것처럼 보이는 오만하고 자유로운 청년 라스콜니코프가 보여 주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이미지가 지향하는 지점이 어디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니 역설적으로 이런 캐릭터를 동정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묻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 점에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친구를 자처하는 라주미힌이 불쌍해 보인다. 과연 외톨이 라스콜니코프가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의 밥그릇까지 덜어 가면서 독일어 번역물을 친구에게 양보하는 라주미힌과 그를 거추장스러워 하는 로쟈의 모습은 상충적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친구 간의 건강한 교제의 모습이 아니다.

 

비범한 사람 로쟈의 씀씀이도 또한 문제다. 당장에 먹을 게 없어서 굶주리면서도 돈이 생기면 앞뒤 재지 않고 펑펑 써댄다. 어머니가 어렵게 구한 35루블을 보내오자, 라주미힌이 그의 입성을 챙기기 위해 10루블을 쓴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교통사고로 죽은 주정뱅이 소냐의 아버지 마르멜라도프의 장례식에 쓰라고 나머지 돈을 희사한 건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한단 말인가. 소설 <죄와 벌>을 읽다 보면 도대체 당대 페테르부르크에는 과연 정상적인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다. 로쟈에게 돈을 받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인을 추모하는 추모연도 중요하지만, 당장 먹고 살 걱정이 눈앞인데 또다른 비렁뱅이 로쟈의 선의에 기대어 성대한 추모연을 치르는 장면도 이해가 안되는 건 마찬가지다.

 

어쨌든 합리적인 이성주의를 대변하는 예심 판사 포르피리와의 한판 대결과 지고지순한 천사 소냐의 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극적인 터닝포인트가 기다리는 나머지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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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1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열린책들 판으로 읽었는데 첨에는 이름도 너무 길고 복잡한데다 무슨 애칭은 또 그리 많은지@_@; 머리가 뱅글뱅글 돌았었는데 말씀처럼 어느 고비를 넘기고 나니 책장이 정신없이 넘어갔던 기억이에요. 고전의 힘을 느꼈지만.. 언제쯤 다시 읽을 수 있을지는 ㅎㅎ^^; 레삭매냐님 존경합니다^^

레삭매냐 2020-06-10 13:36   좋아요 0 | URL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다른 분들 다 읽은 책을 이제
다시 읽게 되었으니 말이죠.

점심시간에 카페에 가서 밑줄
도 좍좍 긋도 메모도 하면서
읽다 보니 복귀할 시간이 되었
더라구요.

아, 다 때려 치우고 책만 읽고
싶습니다 증맬루.

2권은 6년 전에 산 열린책들 판
으로 읽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20-06-10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읽은 책의 제목을 보니 반갑네요. 이걸 읽고 도스토~가 천재라고 생각했었죠.
얼마나 흡인력이 있던지 두꺼운 책을 줄창 읽었었죠.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선했던 경험이었어요.

레삭매냐 2020-06-10 17:57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처음에 읽을 적에는 참으로 지루하다
뭐 이런 생각이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재밌네요.
다 읽고 나면 쟁여둔 도끼 선생
의 다른 책들을 만나 볼까 합니다.

페넬로페 2020-06-10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판으로 꼭 다시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0-06-11 08:04   좋아요 1 | URL
전 1권은 문동 그리고 2권은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고 있는데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열린책들 버전에서는 예심판사
포르피리가 왠지 좀 가볍게 묘
사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가독성은 확실히 문동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