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
전김해 지음 / 지식과감성#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정확하게 열하루 전에 읽은 책의 리뷰를 기억을 더듬어 가며 적어 본다. 원래 리뷰는 책을 읽고 나서 따끈따끈할 적에 써야 모름지기 제 맛인데. 뭐 가끔은 이렇게 시간이 지난 다음에, 무당파 장삼봉 선생 앞에서 태극권을 연마하던 장무기처럼 모든 걸 다 잊은 다음에 기억을 더듬어 가며 리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멋이 아닐까.

 

<사자와 생쥐가 한 번도 생각 못 한 것들>은 내가 보기에 서양 우화와 동양 전래설화의 퓨전적인 만남이 아닐까 싶다. ,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결합이 아닐 수 없다. 며칠 전에 보르헤스 선생의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읽으며 역시나 새로운 것은 없다. 이제는 재창조가 대세구나 싶었는데, 그전에 만난 <사자와 생쥐>도 리크레이션(recreation)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사자와 생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운명적으로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은 느닷없이 바다를 보겠다고 여행을 떠났지. , 나도 바다에 가보고 싶다.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간다면 더욱 좋겠지. 그런데 녀석들은 아마도 그런 교통수단을 이용할 줄 모르니 걸어서 갔으리라. 용궁 토끼가 바다사자를 만나 보라는 말에, 생쥐와 사자는 산소통을 메고 바다를 향해 모험을 떠난다. 상상력이 마구 발휘되는 지점이 아닌가. 어떻게 사자와 생쥐가 산소통을 구했는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지. 그들이 바다 여행을 한다는 점이 내게는 중요할 뿐.

 

범고래에게 잡아먹힐 뻔한 바다사자는 생쥐/사자 조합에 합류한다. 다시 길을 떠난 그들의 목적지는 산속이다. 바다 속은 그들에게 너무 위험해서였겠지. 산속에서 나무꾼 아저씨는 만난 생쥐 일행은 이번에는 나무꾼에게 각시를 찾아 주겠다는 오지라퍼로 활동하게 된다. 아 내가 원하는 개연성은 안드로메다로? 상관 없다, <사자와 생쥐>가 포스트모더니즘 성격의 다시 쓰기 소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 싶다.

 

녀석들은 옥황상제의 막내 선녀를 납치해다시피 해서 나무꾼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어 왜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지는 거지. 이건 아닌데... 어쨌든 나무꾼과 사랑에 빠진 막내 선녀는 언니 선녀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 만남과 선택, 우리 삶에서 항상 주어지는 선택지였나 어쨌나.

 

언니 선녀는 나무꾼 동네의 강쇠를 섭외하고 사주해서 나무꾼을 타락시킨다. 어라, 이 장면은 또 성경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 등장하는 뱀돌이 스토리와 비슷하잖아. 언니 선녀의 계교에 빠진 나무꾼은 화형당할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난다. 중세를 풍미했던 마녀사냥에 대한 오마쥬려나... , 너무 다양하고 복잡스러운 이야기들이 마구 넘실거린다. 정말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짬뽕탕이라는 느낌이 든다(솔직히 맛깔스럽긴 하다, 그리고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귀결되고, 강쇠는 오늘도 노역 아닌 노역에 시달린다지. 그게 다 욕심 때문이라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무언가 거창한 썰을 풀어 보려고 했으나, 그럴 만한 능력이 안된다는 걸 잘 알기에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아마 또 열하루 전에는 또 다른 느낌이 아니었을까. 책을 뒤적거려 가며 내가 놓친 게 무엇이 있나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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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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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9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