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의 데드히트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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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위해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구내식당에서 점심 준비가 한창인지 쌉싸름한 우엉조림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계속해서 구내식당 밥이 그냥저냥 하던데, 나가서 사먹을까 아니면 그냥 구내식당에서 먹을까. 전자는 내 돈이 들고, 후자는 공짜다. 그나저나 춘수 씨 정말 이럴 거야?

 

며칠 전부터 서가에서 얌전하게 잠자고 있던(자그마치 6년 동안이나) 춘수 씨의 단편 소설집들을 차례차례 읽고 있는 중이다. <빵가게 재습격>은 어디에 있나. 이 참에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춘수 씨가 업계의 고수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의 팬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소임을 책을 쓰고, 책쟁이는 그의 소임인 책을 읽을 뿐이다. 게다가 서가에 책이 있는데 읽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서문에 춘수 씨는 이번 소설집이 사실과 소설의 어중간한 어디라고 선언했던가. 나중에 가서는 다 구라고 또 모두가 소설이라고 하질 않나. 어쨌든 소설은 카무플라주이던 아니던 간에 듣고 쓰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실 좀 김이 샜다. 원래는 그래서 소설가들이 그렇게 글을 쓰지 않은 순간에는 산삼을 노리는 심마니처럼 이야기를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러 다닌다 뭐 그런 식의 전개를 노렸는데 말이다.

 

삼십대 초반의 춘수 씨는 자신감으로 가득한 그런 느낌이다. 뭐랄까 전형적인 일본 사람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타인의 공간에는 절대로 제 멋대로 침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허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마치 뱀파이어 같다는 느낌이랄까. 춘수 씨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어디서 들었는지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확실히 흥미롭고 짜임새가 있으며 그가 어느 소설지망가 은행원에게 말했던 것처럼 템포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삼십대의 춘수 씨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잘 들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이야기로 체화시키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일 것이다. 게다가 그 주체가 소설가라면 더더욱 필요한 기술이지 않을까. 섹스가 산불(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처럼 공짜라고 생각하는 춘수 씨는 우연히 만난 출판사 직원이 직장과 애인을 잃고 낯선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는 왜 잘 모르는 이들에게 그런 내밀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일상화된 상실과 내재화된 고독이 파편화된 개인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상대에게 자신은 얼마면 되겠냐고 대범하게 묻는 춘수 씨의 당돌한 질문 앞에 할 말을 잃는다. 물론 춘수 씨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절대로. 선을 넘지 않는 우리의 춘수 씨. 그렇게 얻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까. 그녀의 피스타치오 까는 소리가 좋았더라, 이런 건 도대체... 선밴님!

 

반바지(레더호젠) 때문에 지긋지긋한 결혼생활과 사랑하는 딸마저 인생에서 지워 버린 엄마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우리는 모두 어쩌면 삶에서 어떤 획기적인 계기가 필요했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함부르크에서 시간을 들여 방문한 레더호젠 장인들의 가게에서 그들이 그런 엄격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이혼이라는 결심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짝사랑에 빠진 동아리 청년 대학생은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관찰에 나선다. 물론 그 청년의 이야기는 도를 넘어선다. 그냥 주변에서 어정거리면 좋았을 것을,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다. 야구장 근처에 집을 세내고, 아버지에게 빌린 망원카메라 렌즈로 그녀를 훔쳐보기 시작한다. 이놈의 자식, 정말. 그렇게 도를 넘어선 스토킹은 청년의 영혼과 몸을 모두 망쳐 버린다. 자신의 본업인 공부는 뒷전이고, 씻지도 않고 오로지 망원렌즈로 그녀를 훔쳐보기에만 열중인 것이다. 방학이 되었고, 그녀는 떠났으며 대상이 없어진 청년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그런 것들도 모두 한 시절의 충동이 빚어낸 환영 뭐 그런 게 아니었을까. 간단하다, out of sight, out of mind. 다만 모든 일이 그렇 듯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소설의 어디선가 그런 서로 지워가는 시간에 대한 문구를 읽었던 것 같은데 메모를 하지 않아서인지 어쩐지 못 찾겠다. 그 땐 참 그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는데 말이지.

 

사람은 뭔가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지워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59)

 

춘수 씨 덕에 1980년대 초반 그야말로 끗발 날리던 빌리 조엘의 노래를 다시 찾아서 들어봤다. 폐쇄된 철공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노래는 <앨린타운>이었고, 베트남 노래는 <굿나잇 사이공>이더라. 모두 1982년에 발표된 그의 LP <나일런 커튼>에 수록된 곡이지. 앨범은 그다지 히트치지 못한 듯. 과연 춘수 씨는 추억을 멋들어지게 소환해내는 이야기의 주술사가 아닌가 싶다.

 

그냥 춘수 씨의 이야기와 조언을 들으니 나도 문득 이야기를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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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0-04-02 15:1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활자중독자는 외출 할 때, 혹시라도
읽게 될 지 모르니 뭐라도 들고
나서지 않으면 불안증에 시달리게
되죠.

점심 먹고 나서 카페에 가서 <반딧
불이>를 절반이나 읽었네요.

이러다가 노트와 연필로 챙길 판이네요.

서니데이 2020-04-04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계속 개정판이 나와서, 오래 전 책도 신간처럼 느껴져요.
레삭매냐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0-04-06 13:34   좋아요 0 | URL
말씀해 주신 대로 책들이 원체
다양한 판형으로 계속해서 나오다
보니 다 새롭게 느껴지네요 :>

주말 인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