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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평점 :
그저 완벽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35년 만이라고 했던가. 전작 <시녀 이야기> 이후 시퀄이 우리에게 걸린 시간은. 작년 가을부터 기다려왔다.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증언들>이 번역되기만을. 사실 일반에 공개되지도 않은 책이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다는 말을 듣고,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그랬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생각은 싹 바뀌어 버렸다. 너무 당연한 귀결이었노라고.
항상 그렇지만 서설이 길다. 우리는 현대판 베르길리우스 애트우드 여사의 안내로 다시 맹신과 폭력의 저주 받은 땅 길리어드 내셔널 홈랜드로 향한다. 훌루 드라마와 전작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눈”과 수호자들이 모든 것을 감시하고 종교적 맹신으로 무장한 길리어드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나라인지. 이 땅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재생산(reproduction)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심지어 읽기와 쓰기마저 가르치지 않는다. 불임이 만연한 상황 가운데, 신정국가의 존속을 위해 시녀들을 동원해서 사령관들의 자식을 생산하는 야만을 거침없이 저지른다. 그리고 그런 파렴치한 사령관을 대표하는 저드는 어린 소녀들에게서 성적 욕망을 채우고, 어린 아내들을 지속적으로 갈아 치운다. 마치 전설에 등장하는 푸른 수염처럼.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지속될 수 있었을까? 그런 폭압적인 시스템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지난 세기에 퓨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의 광기를 보지 않았던가. 미세한 균열이 보이는 그 지점에 애트우드 여사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여성들 배치해서 어떻게 해서 철옹성 같은 길리어드의 파멸이 도래했는지에 대한 스케치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전작과 드라마에서 길리어드 창설에 있어 뛰어난 활동을 한 리디아 아주머니와 예의 시스템에서 나고 자란 십대 소녀 아그네스 제미마 그리고 길리어드의 무력한 이웃나라 캐나다의 데이지가 증언대에 오른다.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빚어내는 배신과 위선 그리고 궁극적으로 길리어드를 파멸로 인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정말 통쾌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러의 연속이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이 목적하는 일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자리에서 시시콜콜하게 소설의 디테일을 밝히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부디 <증언들>을 몸으로 느껴 보시기 바란다.
리디아 아주머니, 데이지 그리고 아그네스가 그리는 여성상은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바라는 그런 종속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니다. 각성을 통해 무언가 의미 있는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판이 뛰어든 세 명의 전사들이다.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사방에서 조여오는 의심을 피하면서 길리어드를 탈출하는 여성들을 돕는 내부 조력자의 역할을 담대하게 수행하는 캐릭터를 필두로 해서, 출생의 비밀을 안은 이부 자매라는 설정 그리고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거침없이 뛰어드는 빅토리아 아주머니 같은 캐릭터에 반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베카 혹은 임모르텔 아주머니였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그녀의 숭고한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탕이 아닐 수 없었다. 아, 그리고 보니 초중반을 휩싸는 그런 스릴 넘치는 전개에 비해 후반부는 좀 기운이 빠진 그런 느낌이랄까. 애써 애트우드 여사를 위해 변명을 해보자면 어떻게 이렇게 웅장한 소설이 달려가는 동안 내내 그런 긴장감을 유지하게 쓸 수 있단 말인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
정말 마지막까지 다 읽지 않고는 다른 어느 것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그런 어마무시하면서도 압도적인 서사에 감탄했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었다. 영화든 드라마든 좋으니 부디 <증언들>의 유려한 영상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