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기해년에도 부지런히 달렸다.

오늘까지 해서 모두 160권을 읽었다.

원래는 10권을 뽑고 싶었는데, 쉽지 않더라. 그리하여 올초부터 정리해둔 책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을 만한 책들 7권을 골라 봤다.




1. 바보의 알파벳 - 시베스천 폭스


가히 인생책이라 부를 만하다. 내년에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이다.

A부터 시작해서 Z에 이르는 삶의 여정 그리고 내 삶의 근원을 찾아 가는 구도의 과정에서 구원 비스무레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무언가 거창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능력 밖이지 싶다. 이 책으로 단박에 시배스턴 폭스 작가의 팬이 되어 버렸다.

 

<파리 에코> 원서도 샀지만, 어디선가 먼지를 조용하게 뒤집어 쓰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읽지도 않을 책은 왜 샀냐고 묻지 마라.


2. 보라색 히비스커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한 시절 인도가 세계 문학을 이끌어 나가리라는 전망이 있었다. 다음 주자는 검은 대륙의 나이지리가가 될 모양이다. 그런데 조국을 떠나 미국에 둥지를 튼 아디치에 작가를 나이지리아 작가로 칭해야 할지 아니면 미국 작가로 불러야 할지 고민이다.

 

먼저 소개된 <아메리카나>는 읽다 말았는데, 데뷔작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놀라운 흡입력으로 단숨에 읽어 버렸다. 아마 폭스의 <바보의 알바벳>이 아니었다면 올해 내가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아도 무방하지 않았을까 싶다.

 

포스트콜로니얼 시대 전통과 현대의 충돌, 예의 갈등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가정 문제가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서사에 그만 반해 버렸다. 정녕 이게 데뷔작이란 말인가. 그저 놀랄 뿐이었다.


3. 빅 브러더 - 라이오넬 슈라이버


이제 연락이 안되는 내 동창 친구는 술자리에서 가족이 원쑤라며 한탄을 했다. 그녀의 가족사에 얽힌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 듣고 이해가 됐다. 가족이 진짜 원쑤였다. 하지만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아직 원쑤까지는 된 것 같지 않다. 어쨌든.

 

나의 피붙이가 나에게 빌붙으려 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고 살자가 나의 삶의 모토 중의 하나인데. 재즈 피아니스트 오빠가 엄청나게 살이 찐 상태로 나를 찾아온다. 오빠 때문에 나의 결혼 생활이 위기에 빠져든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모든 사회적 출발의 원점에 해당하는 가족 문제를 예리하게 해부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탁월한 분석에 그리고 매 고비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새콤달콤 쌉싸름하기까지 하다. 오래 동안 묵혀 두었다가 읽은 보람이 있었다. 그전에 읽다만 슈라이버의 <내 아내에 대하여>도 읽어야 하는데.


4. 그리스도는 에볼리에 머물렀다 - 카를로 레비


말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반파시스트 운동에 나섰다가 시골 마을로 유배된 청년 지식인의 값진 기록이다.

 

모든 민중을 사랑하는 그리스도 마저 에볼리에서 멈출 정도라는 표현이 심금을 울린다. 신마저 민중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중앙 정부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던 진짜배기 이탈리아 민중 사이에서 지내며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취합해서 펴낸 레비의 글이 국내에 소개된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과 함께 읽어볼 것을 권한다.


5.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사람들이 애정하는 책이라면 다 이유가 있는가 보다.

인스타에 끝도 없이 올라는 피드에 떠밀리다시피 해서 읽게 된 책인데 놀라웠다.

천조국의 자연과학자는 소설도 잘쓰는가 싶었다.

 

바닷가에 아무도 없이 홀로 살게 된 카야의 고독하고 외로운 삶에 공감이 갈 수 있도록 델리아 오언스 작가는 정교하게 짜인 플롯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삶은 그렇게 무지갯빛으로 오색찬란하게 비추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진실인 것을 말이다. 진실은 정말 아프고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그것이 인정하고 싶진 않은 진실의 이면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어떤 종류의 깨달음이든지 제공해 주는 책이라면 책쟁이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6.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리처드 플래니건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어떤 책을 기를 쓰고 읽으려고 해도 안되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리처드 플래니건의 <먼 북>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책의 어딘가에 나오는 인간 존재의 한없음이야말로 작가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랑한다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백년해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사는 부대낌이 사랑의 감정을 휘발시켜 버릴 지도 모를 노릇이 아닌가. 그러기에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 더 애절하고 뭐 그런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재료에 전쟁포로로 시암에서 버마로 가는 철도 부설공사에 내몰린 오스트레일리아 전쟁포로에 대한 고통의 연대기 한 자락을 깐다. 기아, 고문, 학대 같은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은 불굴의 정신을 저자는 예리하게 짚어낸다.

 

하이쿠를 사랑하는 민족인 일본인들이 가해자인 전쟁에서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악을 쓰며 대드는 장면을 대표적인 피해자 민중들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 들이란 말인가. 이것 역시 하나의 폭력이 아니던가. 역사학을 전공한 작가답게 플래니건의 서사는 강렬한 진실의 힘으로 때로는 논쟁적 주제를 피하지 않는 당당함으로 독자에게 어필한다. 대단한 책이다.



7.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 실레스트 잉


좋은 책은 어떻게든 만나게 된다. 지난봄에 만났다가 <타임>이 도와줘서 지난달에 결국 읽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기시감 아니 기독감은 레알이었더라. 그리고 반가웠다.

 

이제 더 이상 하나의 나라가 아닌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들과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들로 갈려 버린 미국 사회의 오늘에 대한 정밀보고서가 아닌가 싶다.

 

1997년에서 1998년으로 넘어가는 미국 사회는 그 유명한 클린턴 스캔들로 몸살을 앓았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케네스 스타 리포트에 등장하는 포르노소설을 능가하는 슈퍼리얼리티는 진짜 끝장이었지. 당시 신문 지상에 나온 케네스 스타 리포트 전문이 실린 신문을 어디에 보관해 두었을 텐데.

 

또 한편에서는 생산수단 유무에 따라 초래된 부의 불평등은 양극화의 본질을 그대로 드러낸다. 미아 워런과 펄이 한 편이라면, 리처드슨 가족은 상위 그룹을 형성한다. 태생부터 다른 이방인인 펄과 미아가 차례로 리처드슨 가족의 삶에 개입하면서 빚어지는 인생 드라마는 정말 압권이었다.

 

21세기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의 분배문제, 인종주의, 입양문제, 십대의 섹스 이슈 등등 거의 전반을 소설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는 정면에 대고 선전포고를 날린다. 그 어떤 주제도 피해갈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실레스트 잉 작가가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닐까. 작은 불씨치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큰 불로 번질 수 있다는 게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의 알파와 오메가를 장식하는 그 무언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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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 까비 3


1.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치누아 아체베


나이지리아 출신 대가의 작품이 내뿜는 아우라는 대단했다.

대선배의 뒤를 딸 신예 치고지에 오비오마도 아마 그의 작품에서 타령을 한다지.

미지의 대륙에서 연이어 터지는 젊은 선수들의 선전을 기대해 본다.


2. 광대 샬리마르 - 살만 루슈디


이 한 편으로 집에 있는 살만 루슈디의 책들을 찾아 나서게 됐다.

여러 권 있지만 제대로 읽은 책이 없다는 게 함정.

대표작 <한 밤의 아이들>은 읽다 말았다.

카슈미르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샬리마르의 슬픈 서사.


3. 올드 스쿨 - 토바이어스 울프


오랫동안 고대해 마지않던 토바이어스 울프 쌤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말이 필요 없다. 부디 계속해서 울프 쌤의 작품들을 뽑아내 주시길.

파라오와 그의 특기라는 <단편집>을 속히 만날 수 있길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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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1-30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빨리 뽑으신 것 아닙니까?
아직 한 달이 남았는데...
그래도 책 많이 읽으시는 매냐님께서 이렇게
7권을 뽑으신 걸 보면 꽤 실하고 좋은 책인가 봅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레삭매냐 2019-12-01 19:22   좋아요 0 | URL
이런 걸 선빵이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ㅋㅋ

다른 분들의 베스트와 차별성을 강조하고나
좀 이른 시점에서 쓰게 되었네요.

참고, 감사합니다.

coolcat329 2019-11-30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7권 중 2권 읽었네요. 근데 160 권! 대단하세요. 저는 앞에 1을 빼야하는데... 다른 책들도 기억해두겠습니다. 남은 한 달 12월 책도 기대할게요.

레삭매냐 2019-12-01 19:23   좋아요 1 | URL
이달에는 그전에 벌려두고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을 정리하는 것으로...

그렇게 일년이 또 지나가 버렸네요.

120퍼센트 2019-11-30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 읽어보고싶습니다

레삭매냐 2019-12-01 19:24   좋아요 1 | URL
지극히 주관적인 독서라 다른
독자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2-07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올리시면 책추가가 어렵습니다 ㅜㅜ상품추가가 안되서~레삭매냐님 스탈^^오홋!

레삭매냐 2019-12-07 22:39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사진만 떨렁 걸 게 아니라 링크가
필요했군요.
사진에 링크를 거는 법은 없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