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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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발표된 포이즌의 <폴런 에인절(Fallen Angel)>의 뮤직 비디오 생각이 났다. 작은 마을을 떠나 성공을 꿈꾸면서 LA로 떠나온 어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말이다. 작가의 두 번째 소설 <모스크바의 소설>을 읽었으니 당연히 첫 번째 소설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작가의 고급스러운 취향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보스턴에서 태어나 예일대와 스탠포드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토울스는 21년 동안 월스트리트에서 투자전문가로 활약했고 지금도 맨해튼에 살고 있다고 한다. 소설에 드러나는 그의 취향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이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데뷔작의 제목부터 젊은 조지 워싱턴이 일찍이 발표한 사교 생활을 위한 110가지 행동 규칙에서 따왔다. 그리고 <우아한 연인>에 등장하는 1930년대 맨해튼의 카튼 클럽을 비롯한 그 유명한 재즈클럽과 나이트클럽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에 대한 리서치의 결과는 정말 대단했다. 어느 비평에서는 <우아한 연인>1938년을 무대로 한 <섹스 앤 더 시티>라고 하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소설은 1966년 모마(MOMA)에서 기획한 워커 에번스의 사진전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남편과 전시회를 찾은 54세의 케이티 콘텐트는 사진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남자 팅커 그레이의 사진을 보게 된다. 그리고 기나긴 29년 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이 시작된다. 룸메이트이자 절친 이브 로스와 비서로 일하던 케이티는 1937년 퍼스트 나잇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2류 재즈 바에서 운명의 남자 팅커 그레이와 만난다.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대도시 생활을 즐기던 그녀들에게 팅커 그레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갖춘 완벽한 청년이었다. 학력이면 학력, 집안이면 집안, 훌륭한 교양까지 갖춘 팅커의 매력에 이브와 케이티 모두 빨려 들기 시작한다.

 

내러티브가 묘한 삼각관계로 진행되려던 순간, 팅커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전복사고를 당하면서 세 주인공들의 운명은 엇갈리기 시작한다. 심각한 사고 후유증을 겪고 그 아름다웠던 얼굴이 상하게 된 이브를 팅커는 그야말로 신사도를 발휘해서 보듬으려고 한다. 어쩌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시골 처녀 이브 로스 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갑자기 23각 경기에서 튕겨져 나온 화자 케이티는 나름대로의 꿈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뉴욕의 갑부라도 된 듯이 고급 의상실에 가서 멋진 드레스에 돈을 펑펑 쓰고, 홀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서 술과 식사를 즐기고, 자신을 승진시켜 주겠다는 법률사무소의 제안을 뒤로 하고 무모해 보이는 출판사 편집자 조수로서의 새로운 경력을 발진시킨다.

 

오리지널 <섹스 앤 더 시티>에 등장하는 캐리 브래드쇼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당돌한 여성 케이티의 일대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들이 작성하는 서류나 타이핑하는 일에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던 케이티의 모습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른 채 러시아를 떠나 신대륙 미국에 상륙한 케이티의 프롤레타리아 계급 아버지의 도전정신이 연상됐다.

 

그런데 이브가 올라탄 성공의 사다리는 불안정, 그 자체다. 남녀 간의 애정이라기보다 신사의 책임감에서 시작된 이브와 팅커의 관계는 미세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 관계의 종착점은 과연 어디일까? 겨울에서 시작되어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의 변화와 시간을 거치면서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난관에 빠진 이브의 연애전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티의 모험은 계속된다. 부유한 제지사업가 월러스 월코트와 만나 썸을 타기도 하고, 때마침 스페인에서 터진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월러스가 떠나자 이번에는 팅커가 월러스의 공백을 채우기도 한다. 그 와중에 미국 문학적 전통을 과시하기 위해 소로우의 <월든>에 등장하는 나만의 북극성을 찾으라는 조언도 나오고, 빗시와 약속시간에 앞서 시간 때우려고 들어간 헌책방에서 자기네 나라 국부(國父)가 청년 시절에 쓴 사교생활을 위한 행동 규칙에 대한 책을 단돈 15센트에 건지기도 하는 장면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아한 연인>의 주인공 케이티 콘텐트 양이야말로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불러야 하나. 주변에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부유한 청년들이 그야말로 줄지어 등장하질 않나, 그들의 도움으로 보통 사람 같으면 언감생심으로 보이는 상류 계급 인사들과 교류가 끊이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케이티 콘텐트는 캐리 브래드쇼의 전생 같아 보인다. 다만 400달러짜리 마놀로 샌달을 신고 50달러짜리 브런치를 즐기며, 일상의 수다와 파티에서 만난 남자 아니면 미스터 빅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시절이 다를 뿐.

 

데뷔작으로 보기에는 기대이상으로 세련되고, 스타일이나 고전들을 인용하는데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에이모 토울스의 <우아한 연인>은 나무랄 데가 없는 듯 싶다. 내러티브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관계의 묵직한 한 방도 준비되어 있다. 다만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도 그랬듯이 지나치게 귀족 취향적이고, 보통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동경이 나에게는 좀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는 피츠제럴드와 커포티의 재현이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아쉽게도 두 작가 모두 잘 읽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도 내릴 수가 없었다. 맹목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추종하는 것도 배격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그냥 쉬어 가며 읽어 보려고 폈던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다른 책들을 집을 수가 없었다. 단 두 편의 소설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에이모 토울스의 문학적 재능과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에 꼭 들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글쓰기의 정수를 맛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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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9-15 1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를 1/3쯤 읽다 덮었는데, 이 작가의 작품을 다시 도전해봐야 겠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문제가 있었나 싶네요.

레삭매냐 2019-09-15 19:38   좋아요 1 | URL
미국 고급문학의 선두 주자라고나 할까요.

고급진 개인의 취향이 아주 잘 드러나는
그런 작품들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
다.

1/3이나 읽으셨다니 아쉽습니다. 좀 더 분
발하시면 에이모 토울스 문학의 고갱이를
접수하시리라 믿슙니다 넵.

coolcat329 2019-09-15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가보네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고 너무 좋았던지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지금도 쓰고 있네요^^ 늘 좋은 소설 알려주시니 감사해요 ^^

Falstaff 2019-09-15 2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어째 이 글을 못 봤을까요.
토울스의 새 책이 나왔는데 아직도 뭉개고 있었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ㅋㅋㅋㅋ

레삭매냐 2019-09-17 16:39   좋아요 0 | URL
예전에 나온 책인데, 이번에 새단장
을 하고 출간된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 디자인으로 가는가 보네요.

stella.K 2019-09-17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스크바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을 궁금해 하던데 절판이라고 아쉬워 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쁘게 잘 나왔군요.
조지 워싱턴의 책이 미니북으로 끼어 있다는데 그걸 토대로 썼나요?
저도 고급 취향 좀 거시기하긴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모스크바 신사 첨 나왔을 때 출판사에서 한 권 보내주겠다는 걸
정중히 거절했는데 그때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ㅠ

레삭매냐 2019-09-17 17:07   좋아요 1 | URL
원래 판권이 은행나무에 있던 것을
현대문학에서 가져온 것 같습니다.

<모스크바>가 반응이 좋아서 내친
김에 데뷔작도 달린 것으로 추정됩
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는 미니북이
없어서 확인이 안되네요.

아니 그런 좋은 오퍼를 왜 왜 왜
거절하셨던 가요 ㅋㅋㅋ accept !

stella.K 2019-09-17 18:30   좋아요 1 | URL
그땐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죠.ㅠㅠ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