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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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이제야 히가시노 게이고의 그 유명한 가가 교이치로 형사 시리즈에 입문하게 되었다. 히가시노 작가는 정말 다작을 하면서도 그렇게 일정한 수준의 작품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지 구궁금하다. 보통 그렇게 많은 작품을 쓰다 보면 아무래도 들쭉날쭉한 게 사실이 아닌가 말이다.

 

엔딩에 가면 가가 교이치로 형사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로맨틱하다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다. 나도 조금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예상한 비극으로 치닫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사건은 다카야나기 발레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미모의(왜 항상 미모라는 표현이 필요한지 나는 궁금하다) 발레리나 사이토 하루코가 사무실에 침입한 괴한을 화병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에 오타와 우리의 가가 형사가 투입되고, 발레에 운명을 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적나라하게 공개된다. 모든 전문 분야에서 다 그렇듯이, 발레리나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혹독한 연습과 체중 조절 그리고 심지어 사랑마저도 자제해야 한다고 한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둘 마음의 여유가 조금도 없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그들의 삶은 현실과 사뭇 달랐다. 세이부 라이온즈의 아키야마와 기요하라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80년대 말 혹은 90년 초반의 상황이지만, 발레리나들의 삶은 팍팍하지 그지없다. 발레단을 대표하는 프리마발레리나라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수많은 조연을 자처하는 발레리나들의 삶은 신산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꿈을 버리고 않고 최선을 다해 매진한다. 히가시노 작가는 바로 그 점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폐쇄적인 그네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은 자연스럽게 독자의 관심을 끌기 마련이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남자의 신원이 화가 가자마 도시유키라는 것이 밝혀지고 얼만 되지 않아 이번에는 발레 마스터 가지타가 니코틴 중독으로 살해당한다. 설상가상으로 발레 단원들의 뉴욕 행적을 밝히려던 발레 단원 야나기 역시 니코틴 중독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널 뻔한 위기를 맞기도 한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란 말인가.

 

작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리마발레리나 다카야나기 아키코와 그녀 보다는 못하지만 역시나 뛰어난 실력을 가진 미오를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대비시킨다. 무언가 실마리들이 곳곳에 있지만, 우매한 독자는 치밀하게 작가가 고안해내고 창안해낸 덫 속으로 한 발짝씩 들어갈 뿐이다. 대개의 장르 소설 전개에서 독자는 속수무책으로 작가의 설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작가보다 뛰어났다면 바로 누가 범인인가를 알아냈겠지만, 나 같은 수동적 독자에게는 기대 난망한 태스크이리라. 그저 작가가 준비한 대로, 숟가락으로 떠주면 냉큼 받아먹는 거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리인 가가 형사는 특출한 육감이나 뛰어난 추리 능력 대신 일상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을 잘 유추해서 결론으로 독자들을 몰고 간다. 테니스 공기주입기 같은 아이디어나 뉴욕 유학을 떠난 발레리나가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점도 그리고 누구나 그렇지만 십대의 체형과 성인의 체형이 달라진다는 점도 평범하지만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결국 모든 것의 배경에는 치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쩌면 가가 형사의 눈을 흐리게 만든 것도 바로 미오에 대한 가가 교이치로의 연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댄서의 순정이라고 리뷰 제목을 달고도 싶었지만 너무 신파스러운 것 같아, 소설에 나온 한 구절을 패러프레이즈해서 써봤다. 이번에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 7권이 출간되었는데, <잠자는 숲>은 그 중에 두 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선선해지면 가가 형사가 등장하는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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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29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가 시리즈 중 <붉은 손가락>만 읽어봤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이번 개정판 세트 정말(!)탐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19-07-29 20:16   좋아요 1 | URL
셋트 구성이 참말로,,, 지름신이 강림
하게 만드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책들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습니다.
여름엔 역시 장르물 -

카알벨루치 2019-07-29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게이고도 읽으시는군요 역쉬!

레삭매냐 2019-07-29 22:14   좋아요 1 | URL
그것은... 가끔 먹는 불량식품
같은 맛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희선 2019-07-30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데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서는 가가가 발레리나한테 마음이 기울기도 했어요 그래도 형사니 사건을 해결해야겠지요 첫번째는 가가가 대학생일 때 이야기예요 일곱권에서는 두 권 빼고는 다 봤는데, 일곱권 다음에 본 세 가지가 더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앞에 건 일본 추리소설을 알았을 때 본 거기도 하군요 드라마를 봐서 그런지 가가 하면 아베 히로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희선

레삭매냐 2019-07-30 10:21   좋아요 0 | URL
현대문학 7권 외에도 가가 형사
시리즈가 더 있는 모양이네요...

진화하는 캐릭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라마로도 있는 모양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