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찰살인 - 정조대왕 암살사건 비망록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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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라는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속표지의 <한 권으로 읽는> 시리즈의 저자라는 점을 보고는 그가 구사하는 역사소설의 킬포를 잡아낼 수가 있었다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나간 걸까. <밀찰살인>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의 상상을 불어 넣은 그런 작품이다. 다만 예전에 영화 <명량>에 대해 원균의 후손들이 소송전에 나선 것처럼, 소설에서 악역을 맡은 좌의정 심환지의 후손들도 그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소설은 지작소에서 일하는 노가 부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의 죽음은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었다. 때는 1800년 정조 이산이 조선을 다스린 마지막 해였다. 사건을 맡은 우포청 포도부장 오유진은 검시(당시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과정에서 누군가 검시 과정을 잘 아는 이의 범행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노가가 만든 종이를 분석해 보니, 은홍(수은)이 첨가된 것이라는 점이다. 지작장이는 왜 자신이 만드는 종이에 수은을 첨가한 것일까. 초반에 작가는 킬포를 삽입해 둔다.

 

다음 장면은 정조 시대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인 삼미자 선생 정약용이 등장할 차례다. 남인 출신으로 정조가 정국 운영을 위해 사망한 영의정 채제공에 이어 이가환과 더불어 남인의 영수로 꼽은 인물이라고나 할까. 소설 <밀찰살인>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애민주의와 조선에서 세종과 더불어 가장 영민한 군주로 알려진 정조 이산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어려서 광기에 사로잡힌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임오화변으로 잃은 이산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성장했다. 그는 아무도 믿을 수가 없게 되었고, 오로지 권력만이 자신의 생존을 담보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이산은 왕도정치가 아닌 패도정치에 가까운 왕권강화에 주력한다.

 

이산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역사적 사실이었던 밀찰정치였다. 조정의 중신들과 아무도 모르게 밀찰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국정을 이끌어 나갔다. 이산 즉위 초기, 행동대장으로 물불 가리지 않고 노론 벽파에 포위된 국왕을 호위했던 이는 바로 홍국영이었다. 이산의 외가 출신 홍봉한과 홍인한 세력을 제압하는데 그야말로 미친 개처럼 날뛰었던 홍국영은 이산이 선택한 신의 한수였던 것이다. 훗날 좌의정의 자리에 오르는 심환지 역시 홍국영에게 공포를 느낀 건 마찬가지였다.

 

철저한 보수주의자 이산이 국왕이 모든 걸 다스리는 나라를 원했다면, 노론 벽파로 대표되는 기득권 사대부들은 생각이 달랐다. 한 마디로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권력투쟁이 당대 권력투쟁이 핵심이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조 사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하에 모든 개혁 정치가 물거품이 된 원인 중의 하나가 개혁정치를 이끌어 나갈 신진 사대부들을 충분히 양성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뒤집어 놓고 보면 정약용 역시 미리 그 점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정조의 병후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파악한 삼미자 선생은 전력을 다해 이산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않았던가. 그의 노력은 주상의 병을 낫게 할 목적 뿐만 아니라 훗날 폐족으로 전락하게 되는 자신의 가문과 당파의 보존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밀찰살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이산을 죽이려는 세력이 있다. 그들은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또 한편에는 그들의 전횡을 막고, 이산의 죽음을 막으려는 이들이 버티고 서있다. 애민사상이니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모두 포장에 불과하고 본질은 권력투쟁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소설적 상상이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이산의 승냥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호랑이를 키운다는 설정은 주목할 만하다. 호랑이와 승냥이는 주군에게 충성하지 않고 언제라도 위치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산은 밀찰이라는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을 이용했다. 모든 권력은 전제군주로부터 나온다는 신념을 가진 이산이나, 정의를 위해 싸운다는 심환지나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밀찰은 궁극적으로 이산의 명을 단축시키는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던가. 영명한 군주 이산의 자신감이야말로 자신의 치세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밀찰살인>은 짧지만 강렬한 소설이었다. 문득 역사소설의 한계는 어디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핵심인 정조 이산 독살설은 과연 사실일까? 귀납적 구성이라기 보다, 정조의 죽음이 수은중독에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한 전개는 자못 흥미진진하다. 삼미자 선생이 걱정했던 대로, 이산이 훙어했다고 해서 나라가 결딴나고 그런 일은 없었다. 조선이 망하려면 100년은 더 있어야 했다. 단지 나라의 주인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남인과 시파들의 기회가 사라진 것일 뿐. 하나 더 덧붙이자면, 과거 권력투쟁의 국면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파간의 싸움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두가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놓고 보면 시민의 복리와 안위 따위는 전혀 관심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다만 누가 권력을 잡았는가에 따른 차이일 뿐.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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