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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 10cm 발에 갇힌 여자의 운명 ㅣ 더봄 중국문학 전집 3
펑지차이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18년 7월
평점 :

지금도 시행하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한국일보가 주관하던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의 후광은 대단했다. 한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한다는 취지 아래, 전국 각지의 미인들이 한 자리에 미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던 행사였다. 공중파에서도 중계를 했었다. 미스 코리아 출신들이 연예인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나, 아름다움을 상품화하고 선발에 있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들이 터져 나오면서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다. 지난 주말에 사서 읽기 시작한 펑지차이 작가의 <전족>에 등장하는 전족 경연대회를 보고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가 생각났다.
소설 <전족>의 원제는 <삼촌금련>이다. 금련은 전족한 발을 의미하는 것이고, 3촌은 바로 그 발의 사이즈다. 9.9cm 아기의 발도 아니고 이게 가능한 것인가? 중국 오대십국 남당 후주 이욱 이래 중국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하나의 미적 기준이 된 전족을 펑지차이는 소설로 옮겼다. 고래도 중국에서는 발이 작은 것을 미인의 척도로 삼았던 모양이다.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마치 발 페티시에라도 빠진 듯이 하나 같이 발을 칭송하고 애무한다. 그리하여 전족은 폭력적이며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어린 소녀의 발을 무참하게 꺾고 성장을 막기 위해 억지로 칭칭 감아 매는 야만적인 방식도 숨겨져 있다. 오로지 전족으로 훗날의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말로 폭력을 시행하는 것이다.
7세 소녀이자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과향련의 할머니는 손녀딸의 미래를 위해 무자비한 전족을 실행에 옮겼다. 그 과정은 정말 끔찍해서 읽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인물이 청말 천진에 살던 골동품점 양고재의 주인장 동인안이다. 자신의 직업인 골동품 감별에도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인이지만 그의 진짜 관심사는 전족이다. 네 아들을 낳고 사별한 아내도 그렇지만, 며느리들을 들이는 기준도 역시 훌륭한 발을 가지고 있는가였다. 그렇게 17세에 동가의 맏며느리로 점지된 과향련에게 운수가 트이는가 싶었지만, 신랑은 반푼이에다가 집안 전족 경연대회에서 둘째 며느리 백금보에에게 패하는 통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발로 흥한 자, 발로 망한다는 말인가.
하녀 보다 못한 신세로 추락한 향련은 반푼이 남편을 잃고 그렇게 원하던 아들 대신 딸을 낳게 되자 상심하고 비상을 풀어 딸과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이 때 짜잔 하고 등장한 인물이 바로 검은 전족의 주인공 반 이모였다. 반 이모의 지도 아래 향련은 신기의 전족에 도전하게 된다. 그전의 전족 경연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천진의 한다하는 한량들은(동인안을 포함해서) 전족에 대한 자신의 심안을 자랑하기 위해 중국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학문적 지식 뽐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천진사절입네 하면서 천진 갑부가 팔순을 맞는 노모의 불구경을 위해 백여 채의 집을 사서 불을 지르고 불을 끄기 위해 동원된 수회 요원들이 수기자(소방 도구)를 작동하는 모습에 환호작약하는 모습을 꼽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부자들의 기행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모습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끊이지 않으니 그네들의 기행은 끝은 과연 어디인지 궁금하다.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소설의 스포일러 들어간다. 과연 전족을 무기로 동가네 집에 들어간 과향련은 행복했을까? 청말 민국 초기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전통 질서가 붕괴되고 신문물이 기존의 모든 것을 대체하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온 전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선 양고재의 주인장 동인안이 결국 사망했다. 시대를 풍미한 골동품상이었지만 아들 동소화와 믿었던 모작 장인 활수가 전 재산을 들고 튄 것이다. 열강의 침략과 국내 반란으로 휘청거리던 청제국의 멸망처럼 동인안의 몰락 역시 같은 궤를 달린다. 동인안이 죽고 맏며느리 향련이 대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아버지는 손녀들에게 전족을 시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와중에 향련의 딸 연심이 실종된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가.
아름다움은 유행이다. 전족이 미적 기준이 되던 제국은 가고 이제 천족, 왕발의 시대가 왔다. 아름다움도 하나의 자산이 된 자본 제국주의 시대에 펑지차이 작가가 들려주는 전족에 대한 이야기는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전족의 유래로부터 시작해서, 동가네 전족 경연대회에 참여한 전족광들의 불꽃 튀는 신기에 가까운 대결은 천박한 자본주의 미인대회와는 그 결을 달리한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우준영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여성 천족회와 구세대 여성의 대표주자 보련여사 과향련이 이끄는 복전회의 대결도 볼만하다. 언제나 그렇듯 격변의 시대에는 가치관의 대결이 이데올로기의 그것을 압도하지 않았던가. 어느 것도 좋고, 어느 것이 그렇지 않다는 의미가 없다. 천족회와 복전회 모두 자신만의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것만 좋고 옳다는 일방적 주장은 폭력일 따름이다. 펑지차이 작가는 전족에 얽힌 비사를 들려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전족 시행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가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향련이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전족을 하는 장면은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풍습이라고 하지만 문학을 통해 이렇게 생생하게 재현해낸 펑지차이 작가의 실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가히 과향련 전족기는 한 시대를 풍미한 문화사와 인민들의 의식구조를 명민하게 탐구한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