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비용
아룬다티 로이 지음, 최인숙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아룬다티 로이의 책을 하나 읽었다. 어제 퇴근길에 뭐 읽을 책이 없나 두리번거리다 예전에 사장한테 책 치우라고 욕먹고 박스에 담아둔 책탑 위로 불쑥 솟은 아룬다티 로이의 <생존의 비용>이 보였다. 일단 얇았고, 부담 없이 보여 나의 선택을 받았다. 바로 펴서 읽기 시작했다. 아 어쩔 수 없는 활자중독자의 삶이여.

 

문동에서 새로 나온 로이 씨의 <작은 것들의 신>은 아직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고 직장에 내가 마련해둔 책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생존의 비용>을 읽고 나니 왠지 그 책이 당장에라도 읽고 싶어졌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들도 읽어야 하는데... 내가 언제 그런 독서 스케줄에 연연했던가 그냥 삘이 오면 읽는 거지. 지금이라도 살짝 꺼내서 맛이라도 봐야 하나 어쩌나 고민이다.

 

또 서설이 길어졌다. <생존의 비용>은 소설가 로이 씨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글쓰기로 인도 중부 마디아프라데시를 비롯한 3개 주를 가로 지르는 나르마다 강 유역의 나르마다 사로바르 댐건설 프로젝트의 실상을 비판한 글과 반핵운동가로 발표한 두 개의 글을 담고 있다. 댐건설과 연기폭탄(원자폭탄)의 공통점은 대량살상무기에 준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 그럼 댐건설부터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1947년 이래, 자그마치 3,300여개 정도의 댐이 건설되었다고 한다. 10억에 달하는 전 인도의 인구(이 글이 쓰여진 게 20년 전이니 인구는 더 늘었을 것이다) 중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질적 식량과 식수 부족 그리고 위생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안정적 식수를 공급하고, 홍수를 막으며 식량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악질 채무업자에 버금가는 세계은행으로부터 막대한 금액의 차관을 내어 댐건설에 나서자는 게 그동안 인도 정부의 주된 정책이었다. 그런데 댐을 건설하게 되면서 그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어떡하구? 로이 씨는 댐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5천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한국의 인구만한 사람들이 댐이 만들어지면서 조상 대대로 농사 지어오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대국답게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인도 정부의 공언대로 보다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정치적 구호일 따름이다. 그렇게 몇 푼 안 되는 돈을 받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인도 카스트 계급의 말단을 차지하는 아디바시와 달리트 계급의 사람들은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게 되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한 폭력적인 방법으로 주거지 이전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강제 퇴거 조치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 한국에서도 1971년 8월 10일부터 12일까지 광주대단지 사건으로 알려진 공권력의 폭력적 행사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세계은행의 차관으로 진행되는 댐건설 프로젝트는 수년 전에 우리가 직접 목도한 4대강 프로젝트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공공을 위한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시민들의 세금이 투입되고, 언론과 학계에 포진한 4대강 부역자들은 자연을 임의대로 평가하고 재단해서 일자리와 이러저러한 경제적 효과들이 나올 거라는 숫자로 시민들을 현혹시켰다.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비전문가가 뭘 아냐고 호통으로 대거리를 했었지 아마. 그런데 실제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수혜자는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굴지의 대형 건설사와 환경평가 혹은 조사를 맡은 컨설턴트 그리고 각종 이권개입자들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력생산을 위해 댐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불가촉천민들이었던가? 도시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두둑하게 챙긴 보너스로 고아 같은 고급 휴양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득권층이었다.

 

반면 당장 굶어 죽게 된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저항에 나섰다. 댐이 건설되면 차라리 물에 빠져 죽겠다는 이들이 나온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들은 대중조직에 나서고, 수도 델리까지 행진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에 인도 정부의 만행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다. 이에 언론도 호응해서 일단 정부와 세계은행의 댐건설 합작 프로젝트는 일시적으로 중지됐다. 하지만로이 씨에 따르면 파시즘에 가까운 형태의 폭압적인 통치를 일삼는 네루 집안이 좌지우지하는 인도 정부는 시간 끌고 버티기라는 새로운 전술을 도입했다. 그리고 보면 시간 앞에 장사는 없지 않은가. 시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고 미셸 투르니에가 말했던가. 인도의 공고한 기득권 카르텔의 파상적 공세에 맞서 싸우기 위해, 로이 씨는 연대와 투쟁을 강조한다. 우리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나르마다 사람들이 세계화에 맞서 싸우는 장면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리즘에 맞서는 투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로이 씨는 모든 종류의 전사들이 필요하다는 선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의 전사들의 기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숨 가쁘게 달렸다. 다음은 반핵운동가로 변신한 로이 씨의 글이 이어진다. 그리고 보니 우리도 핵전쟁의 위협 속에 살고 있구나. 평화와 체제보장 그리고 전쟁억지력을 위한 핵보유라니, 20년 전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핵무기 경쟁이 벌어지던 시기의 모습을 로이 씨는 절절하게 묘사한다. 그네들도 우리와 같은 모습이었을까? 북한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뉴스보다, 올 가을에는 어떤 색깔의 목도리가 어울릴까를 더 걱정하는 한국 친구들의 무덤덤함에 재한 외국인들이 기겁했다는 뉴스는 이제 새로울 것도 없다. 핵에 맞서기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탈리오 법칙으로는 아무런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보수 정치인들은 진정 모르는 걸까?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핵전쟁의 위협으로부터 그런 발언을 하는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알고 말하는지 의심스럽다.

 

힌두 축제를 자신의 소설에서 비판적으로 다룬 페루말 무루건 아저씨를 위협했던 호전적인 극우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 로이 씨 역시 대단히 불편했던 모양이다. 대단히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던 로이 씨는 연기폭탄과 비아그라를 구분하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언론에 대해서 일침을 가한다. “우리 것이 월등하게 강하고 힘도 세다.” 코카콜라가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렇다면 핵폭탄은 인도 오래된 전통이냐고 묻는 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끊임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인도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핵폭탄은, 결론적으로 인도 시민들에 대한 그들의 배신을 상징한다고 로이 씨는 냉정하게 꼬집는다.

 

아직 로이 씨의 대표작 <작은 것들의 신>을 읽어 보지 않아 그녀의 작품세계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무리겠지 싶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반핵운동에 나선 깨어 있는 지식인이자 전사 로이 씨의 거침없는 글쓰기에 그만 반해 버렸다. 소설가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그러니까 글쓰기로 사회참여에 나선 로이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국에는 왜 이런 작가가 없는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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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11-06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에 절대공감!
로이의 글들 읽으면서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작가가없는 건지... 그런 생각 많이 했네요.
<자본주의: 유령이야기> <9월이여, 오라> 두 책도 강추합니다! ^^

레삭매냐 2018-11-06 18:08   좋아요 0 | URL
소설부터 읽으려고 하는데 오늘 하필이면
로베르토 볼라뇨의 유고작이 도착하는
바람에 만사 제쳐 두고 그것부터 읽고 있네요.

게다가 조지 손더스/앨런 홀링허스트 책도
대기 중이라...

11월과 12월에는 추천해 주신 아룬다티 로이
의 책을 읽어야지 싶네요 :>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