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마지막 어린이날이라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과 함께 서울대공원을 찾았다. 인산인해가 따로 없었다. 그 시절에는 차도 없어서 아마 대중교통 수단으로 과천까지 갔었는데 그중에서 돌고래 쇼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이렇게 자주 동물원을 찾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꼬맹이는 만날 동물원 타령을 한다. 지금은 제돌이가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바람에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5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대공원 최고의 쇼는 바로 제돌이와 친구들이 등장하는 돌고래 쇼였다.
제돌이와 친구들이 사는 풀장을 보면서, 저렇게 갇혀 있으면 참 답답할 텐데라고 혼자 생각했다. 그 넓디 넓은 바다에서 살다가 저렇게 좁은 우리가 갇혀 있으면 답답하겠지 싶었다. 하긴 어디 그게 제돌이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겠는가.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의 유물이라는 동물원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성행 중이다. 오로지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세계 각처에 사는 진귀한 동물들을 잡아다가 기후나 여러 가지 조건이 맞지 않는 친구들을 가두어 놓는 게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어쩌다가 한 번 가서 일별하면 되지만, 그 친구들은 평생을 그렇게 갇혀서 살아야 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오늘 어느 신문기사를 통해 제돌이 귀환 5주년에 대한 글을 읽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못했던 일을 용감하게 중단한 서울시와 서울동물원 그리고 그 과정에 여론형성을 도운 단체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꼬맹이는 지금도 묻곤 한다. 항상 보던 남방돌고래 제돌이 친구가 어디에 갔는지. 그러면 몇 년 전 제주도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고등어 낚시를 할 때, 바로 옆에서 뛰돌던 야생 돌고래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래 제돌이 친구들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갔노라고 설명해주곤 한다. 아직 어려서 잘 이해하지 못하는 꼬맹이는 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라며 질문 시리즈를 늘어 놓는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귀찮더라도 그 이유에 대해 조근조근 설명해 줘야지.
사실 종의 다양성을 위해서 아니 우리 인간을 위해 동물 보존을 해야 한다는 식의 어려운 이야기들은 잘 모르겠다. 동물원에 갇혀 사는 동물들이 그저 자연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꼬맹이 등쌀에 지금도 동물원을 찾지만, 모쪼록 그런 동물 친구들이 불쌍한 게 나홀로 만의 생각은 아니길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