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미셸 투르니에의 도발적 표지가 돋보이는 <뒷모습>을 빌렸다. 고작 98쪽 밖에 되지 않는 그런 사진 에세이였었는데, 읽지 못하고 반납했다. 오늘 올라프 스태플든의 <스타메이커>를 사러 중고서점에 들렀다가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빛바랜 사진 에세이집의 아우라는 사진을 맡은 에두아르 부바의 오래된 사진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번역을 맡은 김화영 교수님은 후기에서 사진이 담은 정직, 단순 소박함, 몰입, 너그러움, 애잔함 등의 감상들에 대해 언급해 주셨다. 나는 항상 그렇듯 사진은 되돌릴 수 없는 찰라의 시간을 잡아낸 포착의 미학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포토그래퍼라면 카메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그 순간을 잡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출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나가 버린 순간을, 그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사진의 진짜 매력은 바로 그 집요한 정지라는 점에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이다.

 

에두아르 부바가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 냈다면, 글로 감성을 녹여내는 건 미셸 투르니에의 몫이다. 아쉽게는 난 지금까지 투르니에의 글들은 하나도 읽은 게 없어서 달랑 이 사진 에세이집 하나만으로 그를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글에서 풍기는 고수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고수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사진에서도 모름지기 어떤 스토리를 뽑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바닷가에 조심스레 겉옷을 들추고 들어간 커플들의 사진에서, 부자들이라면 준비한 수영복을 혹은 아예 벌거 벗고 들어갔으리라는 추론을 도출해낸다. 연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키스하는 장면 앞에 놓인 난파된 요트를 분석하는 씨퀀스는 또 어떤가? 누군가는 해석의 과잉으로도 치부해 버릴 수 있겠지만 놀랍지 않은가. 앞으로 두 사람의 미래에 펼쳐질 눈부신 항해를 의미한다는 또 반대로 이제 곧 난파될 관계의 전조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똑같은 이미저리로 서로 상이한 관계를 다룰 수 있다는 것, 사진 해석 혹은 도상학적 분석이 주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빛나는 나신의 뒤태에 대한 평가는 또 어떤가. 궁둥이는 애정에 목마르다고 했던가. 나도 오래 전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을 때, 카메라에 담은 어느 님프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 때 찍은 사진을 아마 싸이월드 홈피에 올려 두었을 텐데, 사진 기록은 모두 사라져 버리고 어렴풋이 기억만 남게 되었구나. 그 님프의 사진을 찾아 이 리뷰에 넣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을 방문한 앙드레 지드는 나치 스타일로 뒷머리를 쳐 올린 스타일을 보고 외설스럽다고 했던가. 이어지는 표지를 장식하는 여성의 목덜미를 가로 지르는 선에 대한 상찬은 또 어떤가. 궁둥이를 강조하는 스타일로 제작된 발레스커트에 대한 분석에서는 묘한 관음증을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말에서는 어떤 연관성도 없지만 바다(mer)와 어머니(mere)을 연결하는 언어적 유희는 또 어떤가.· 어떤 경지에 도달한 대가만이 할 수 없는 언어적 유희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한 혹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도상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비밀 입문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 마구 솟구친다.

 

세상에는 참으로 읽을 책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피어 오른다. 올 하반기에는 로맹 가리의 책을 읽겠노라고 작심했는데. 일단 로맹 가리의 책들이 정리되는 대로, 미셸 투르니에의 책에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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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7-1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와 관련 없는 말인데, 《스타메이커》를 샀습니까? ㅎㅎㅎ 설마 그 자리에서 《뒷모습》을 읽느라 책을 못 산거 아니죠? ^^;;

레삭매냐 2018-07-10 20:16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우선 <스타메이커>부터 찾아서 옆에 끼고
<뒷모습>을 읽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같이 있는 것으로 검색되던
<시리우스>는 누군가 사갔더군요...

cyrus 2018-07-10 20:25   좋아요 1 | URL
잘됐어요. 《시리우스》는 저도 못 구한 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