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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
마이클 모퍼고 지음, 마이클 포맨 그림, 김은영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백 마흔 일곱 번째 서평
우리 집 정원에는 코끼리가 산다-마이클 모피고
함께 하는 힘.
전쟁을 소재로 한 동화 같은 이야기에 마음이 자꾸 부산스러워진다. 남편의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심심해하던 아이들에게 나는 드레스덴 마을에 사는 코끼리 이야기를 해줬다.
코끼리의 이름은 마를렌이야. 동물원에서 살다가 드레스덴 주변으로 폭격이 시작되면서 엘리자베스, 칼리 남매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지.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늘 키워왔던 엄마가 엘리자베스의 생일 선물로 코끼리를 데리고 왔단다.
전쟁은 모든 것을 깊은 수렁 그 너머로의 나락으로 가라앉힌다. 높은 건물과 다리는 물론이고,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자존감이나 무의미한 어떤 희망까지도 가장 낮은 곳으로 끝간데 없이 가라앉히는 습성을 지닌다.
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고 도시는 파괴되고 불에 타는 상처를 남기지만,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재기와 희망을 꿈꾼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생존능력 때문이 아닐까.
세계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마이클 모피고의 동화 같은 아기자기한 이 이야기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거나,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차원에서 머물지 않는다. 누구 한 사람, 어느 한 곳에서도 감정의 골로 격한 모습을 드러내보이지도 않는다.
작가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순수하게 표현하려 했다. 전쟁 그리고 사람과 코끼리. 어쩌면 이 조합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쟁으로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코끼리의 존재감은 특별하게 느껴졌던 가 보다. 적군도 아군도 어른도 아이도 코끼리를 바라보는 순간 그 눈과 마음은 순수함으로 뜨거워진다. 전쟁이 변화시켰던 사악한 인간미마저도 이 순간만큼은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함과 설레임으로 모든 사람들의 의식을 전쟁 이전의 평온함의 순간으로 데려다주곤 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코끼리 우리의 ‘마를렌’은 끝과 끝을 이어주는, 이를테면 사면으로 내몰린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안전한 곳으로 한데 모아주는 매개체로 등장하는 셈이다.
폭격을 받은 드레스덴을 뒤로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 그리고 적군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도와가며 사랑하며 위해주는 이야기는 전쟁의 시발점이 되는 그 어떤 정치적 이념 따위조차 다 떨쳐버리고 오직 존엄하고 순수한 인간 대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 순간을 선물한다.
전쟁 영화 중에 ‘쉰들러 리스트’와 ‘인생은 아름다워’ 두 작품을 두고 어느 영화 비평가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두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시대를 읽어내는 감독의 시선은 매우 다르다. 똑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표현한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어느 비평가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대목이었다.
어쩌면 마이클 모피고도 전쟁의 우회적 표현을 상기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이면 충분히 이해하고 같이 생각하며 이야기를 교감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다. 더불어 어른의 시각에서 대면하는 전쟁과 그 너머의 것들에 대한 무언가에 갈망 역시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