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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마흔 아홉 번째 서평.
7년의 밤-정유정
어떤 선택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라는 말을 상기한다. 음식을 먹는 일에서나, 옷을 입는 일도 그렇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 직장을 구하는 일, 가정을 꾸리는 일 조차도 일정부분의 환경의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기실 이 모든 일에 관여하는 것은 오로지 선택이라는 택함에서 비롯된다고 볼 일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딴은 그렇지 않든 간에 우리는 늘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 취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무엇일까.
어쩌면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색의 밝고 어둠을 보이는 명암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아가 갖는 ‘의지의 개입’ 여부이다. 내가 의도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이지 내가 의도하지 않은 그 무엇에 의한 선택인가, 라는 명제는 작가 정유정의 최근작 ‘7년의 밤’ 속에서 쉬지 않고 부지런하게 독자에게 질문으로 다가선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답안지 한켠을 비스듬히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녀가 내보이는 답지를 인정하는 가에 대한 선택은, 물론 독자에게 남겨진 또 다른 과제일 것이다.
소설은 스케일이 큰 방면에 구성과 짜임이 조밀하게 들어차 있다. 방대한 이야기를 끌어감에 있어 구성의 탄탄함은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안정감을 주는 좋은 한 예일 것이다.
마치 일정한 구획을 나누며 일목요연하게 모양과 틀을 갖춘 거대 거미의 집을 연상케 한다. 한동안 실존주의 영향의 소설에 집착했던 나는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면서 묘하게도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져들었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인간의 심리를 심도 있게 드러내려는 데 의도는 갖추었으되, 뭐랄까 작품 속에서 등장하듯 수심 저 깊은 곳까지, 아주 깊은 그곳까지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깊이로만 들어가려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곤 했다. 작가는 현실 속에서 실존을 적당히 버무려 놓은 작품을 완성시켰다. 적당한 버무림이란 표현이 조금 걸리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게 정의를 내리는가 싶다.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치는 이미지들이 살아있는 인물들의 묘사, 사건의 흐름과 시점의 변화, 박동감이 느껴지듯 빠른 유속과 같은 서사적 흐름을 보이는 책은 강한 흡입력을 지녔다. 이를테면 눈 깜짝 할 순간에 많은 화면들이 보였다 사라지는 듯한 스릴러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하다.
책 속에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이 각자의 삶에 있어 한 두 번쯤 의도되지 않은 선택을 취하듯, 책이 선과 악이라는 흑백논리 앞에서 선도 악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로 자신을 몰아가는 인물 케릭터를 섬세하게 그려놓고 있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또한 이는 흑과 백처럼 나누어지는 것일지라도 현실적 상황에 따라 양단의 두 가지 성향을 함께 지닌 야누스적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작가적 의도를 구축한 것은 아닌가,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본다.
최현수 그는 전직 야구선수였으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남자다. 그는 우리가 획일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인 사고로 세상에 만들어놓은 선택의 경계선상에서 고통 받으며 고민하는 인물이다. 반면 또다른 주인공인 오영제는 고민할 것 없이 어둠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인물이다. 그리고 또 한명 주목해야 할 인물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이 있다.
작가는 사건과 사건을 재배치함에 있어, 그 연계성을 끌고가는 치밀함을 시종일관 잃지 않는다. 소설 ‘7년의 밤’이 갖는 장점은 말할 것도 없이 이 부분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집요함, 치밀함,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의 조합의 안전성. 하지만 어느 때 나는 약간 삐딱선의 의식을 잡곤 했다. 조금은 산만하지 않은가, 조금은 정신이 없지 않은가. 빠른 유속 밑에 깔린 안정감이 이따금 흔들리는 게 보일 때도 있었다.
결말부위에서 작가의 자세한 설명이 담긴 대목이 없다고 해도 모나지 않을 듯했다. 작가는 너무 친절한 결말을 보여준 게 아닌가 하면서도 달리 어떤 결말을 기대했던 것인가, 라는 불온한 자문자답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신바람나게 재미가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통해 작가는 작가적 고충을 토로한다. 어쩌면 책 속에서 혹 독자가 읽어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부지런히 독자에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듯한 작가의 모습이 엿보인다.
작가 정유정이 마지막에 인용한 글을 옮겨보자.
“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이쯤에서 개인적인 대답을 정리해야 할듯하다. 예스 혹은 노우.....
매순간 삶이 던지는 거룩한 선택의 기로에서, 꼬물닥거리며 주저하는 인간들 속에 껴있는 사람이 혹 내가 아닌가, 들여다보는 일은 씁쓸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