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 -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잔혹사
이재갑 글.사진 / 살림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예순 네번째 서평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이재갑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진실의 힘, 상처를 매만지다
제목에서부터 무게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한국사 100년이라는 수식어 자체만으로도 시간의 흐름위로 어떤 존재의 위력감이 밀려들 듯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지나간 과거 속으로 서둘러 엔진에 시동을 걸어야 할 것만 같다. 현재가 아닌 과거의 시간이 간직해온 기억이라는 틀. 한편으로는 잊혀져버린, 무너지고, 사라지고, 없어져버린 많은 기억이라는 고정된 틀 속에 잔존하는 상처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는 사진작가 이재갑의 지나긴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전역으로 다리품을 팔아가면서 일제 강정기와 태평양전쟁 시기의 아픈 과거와 함께, 때로는 감추고 싶은 현재의 상흔을 잔잔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인정받으려 함과 인정하기 싫은 것들로부터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강제징용으로 일본국에 끌려간 조선인들의 희생을 큰 모티브로 한다. 일본 전지역을 일부 지역별로 나누어 당시 조선인들의 실상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데 역사적 가치와 그 의미를 높이 사고 싶다는 개인적 소견도 덧붙이고자 한다.
이제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부터 후쿠오카, 2부 나가사키, 3부 오사카, 4부 히로시마, 5부 오키나와 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다. 지역별로 일본인 내지는 재일 한국인(재일동포)의 안내를 받아 진행되는 과정에 만난 역사적 사실을 사진과 함께 저술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작가의 개인적 심상이 곁들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의 기획의도가 역사적 관점에서 한하여 객관적 정보와 지식만을 수집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감하고 느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데 초점이 맞춰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은 탄광에서, 외딴 섬에서, 군수공장에서, 지하 동굴에서까지 강제징집에 의한 조선인의 노동력은 일본 전역으로 흩어져 혹독하리만큼 잔혹하게 착취당했음을 그 어떤 과장이나 꾸밈없이 사실에 입각해서 기록한다.
인간이하의 처우와 생매장까지 자행했던 일본국이 지금까지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하에 지켜온 많은 상처의 자리마다, 화인처럼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는 걸 이재갑의 책을 통해 새삼 알게 된 듯하다. 언젠가 야심한 밤에 “welcome to japen!” 이라는 홍보 영상을 본적이 있다. 기모노를 입고 얼굴에 분칠을 한 게이샤의 모습과 해가 지고 있는 오사카의 유명한 성이 생각난다. 그러나 그곳마저도 조선인의 분노와 치욕과 한이 서려 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오래전 이곳에서 강제 노역으로 죽어갔던 조선인의 흑백영상이 기묘하게 오버랩 되는 것을 느낀다.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 운을 떼자면 말도, 생각도 많고, 감정의 수위도 불규칙하여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자연스런 이치인지라, 굳이 감정에 휘둘릴 생각은 없다.
다만, 책을 통해 몇가지 생각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객관적 시각에서 보는 이재갑의 책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는 역사가 품고 있는 진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패전국이 된지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누구나 시간이 갖는 묘약의 힘에 익숙해버린지 오래다.
한국은 잊고 살아가고, 일본은 숨기고 살아가기 바빴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재갑 역시 글 속에서 여러 번 같은 표현을 썼던 것처럼 ‘일본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인식에 갇혀 있는 듯하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상할정도로 모순적이며 다분히 이중적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책속에 등장하는 선한 일본인, 그들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다. (우리가 봐서는 그들은 신 일본인이며, 양심적인 일본인이다.) 몇몇 소수의 양심 있는 이들의 이야기는 다수의 반대파에 의해 자주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안쓰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일본의 현 주소가 아닐까. 너무 비관적인가. 책속에 소개되는 소수의 양심 있는 이들의 가치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긍정적이면서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왔던 암울한 양국의 현실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태평양전쟁에 있어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원자폭탄의 피해자라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그들의 인식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흔한말로 하자면 저희 잘못은 모르고 아픈 곳만 내보이며 엄살을 떠는 식이 아닌가 말이다.
더욱이 역사란,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을 보자면 한국전쟁 때의 일본의 행보일 것이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것도 역사의 흐름일까.
책은 역사적 사실을 상세하게 논함에 있어 명료함과 더불어 감성이 잘 어우러져 있다. 물론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란 대부분 진실을 알고 찾아간 한 지점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이 대부분이었지만, 책을 통해 독자에게 저자가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잘 전달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 책 한권으로 든든하게 정리된 역사이야기다. 물론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감정의 골을 양극단으로 매어놓을 것이 아니라 좋은 쪽으로 방향을 모색해야 할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는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일본의 무성의를 논하기보다, 우리 자신의 무관심과 인식의 안일함에 대해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